9월 증시 약세 우려에 대형 투자자들, 기술주 대거 매도

런던발 — 대규모 기관투자자들이 전통적으로 하락장이 반복돼 온 9월 증시를 앞두고 위험노출을 축소하기 위해 20일(현지시간) 수익이 많이 난 기술주와 고베타(high-beta) 종목을 중심으로 대거 매도에 나섰다. 이는 최근 기술주 급락이 단순한 공포가 아닌, 광범위한 위험 선호 축소에 기인했을 가능성을 보여 준다.

2025년 8월 20일, 로이터 통신 보도에 따르면 이날 나스닥 종합지수와 S&P 500 지수는 모두 급격한 낙폭을 기록했다. 특히 엔비디아(NASDAQ: NVDA)는 3.5% 하락하며 약 4개월 만에 최대 일간 낙폭을 나타냈다.

브루노 슈넬러(Erlen Capital Management 전무)는 “이번 주 기술주 매도세는 패닉보다는 위험 재배치 성격이 강하다”고 분석했다. 그는 “암호화폐, 고베타 기술주, 인공지능(AI) 수혜주가 동시에 압력을 받고 있다는 점은 투자자들이 특정 악재보다 여러 위험자산 전반에서 노출을 줄이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덧붙였다.

두 명의 헤지펀드 운용인도 모멘텀 변화가 진행 중이라고 전했다. 익명을 요구한 이들은 “헤지펀드와 자산운용사들이 그동안 수익률을 견인했던 승자 종목을 차익 실현하고 있다”며 이날 아시아 장 초반 한국 정보기술(IT) 대형주중국 바이오테크 관련주에서도 유사한 매도 패턴이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흐름은 향후 몇 주 동안 더욱 뚜렷해질 수 있다는 경고도 제기됐다.

“9월 3일 이후 S&P 500은 역사적으로 하락 전환한 사례가 많다”

고 시타델 시큐리티즈의 스콧 루브너(주식·파생 전략 부문 책임자)는 지적했다.

BUYING EVAPORATES — 9월 효과의 재현

루브너에 따르면 1928년 이후 S&P 500은 9월 3일께 고점을 형성한 뒤 대체로 하락세로 돌아섰다. 그는 “여름 내내 소매 투자자의 활발한 매수와 꾸준한 기업 자사주 매입이 시장을 떠받쳤지만, 9월 중순부터는 규제상 블랙아웃 기간으로 인해 자사주 매입이 중단된다”며 유동성 공백을 경고했다.

시타델 시큐리티즈 보고서는 “시스템 트레이더(systematic traders)와 트렌드 추종 CTA(Commodity Trading Advisor)는 이미 목표했던 주식 비중을 채웠고, 추가 매수 여력이 소진됐다”고 전했다. 루브너는 이어 “8월 마지막 주는 휴가·바비큐 시즌으로 거래량이 얇아 상승 편향(drift)이 생기지만, 이는 유동성 착시에 불과하다”고 평가했다.

대형 자산운용사들도 9월 말 분기말 결산을 앞두고 포트폴리오 리밸런싱을 시작할 예정이다. 헤지펀드 BLKBRD의 설립자 댄 이조는 “이제는 추가 매수 동력이 고갈됐다. 밸류에이션이 이미 높다는 점에서 더 오를 근거를 찾기 어렵다”고 말했다.

전문가 진단: “고베타·AI 수혜주, 동반 압박”

시장 참가자들은 이번 매도세가 단일 이벤트가 아닌 여러 복합적 요인—계절성, 밸류에이션 부담, 유동성 위축—의 결과라고 보고 있다. 특히 고베타(high-beta)는 시장 변동에 두 배 이상 민감하게 반응하는 종목을 의미한다. 주가가 많이 오른 만큼, 하락장에선 보다 가파른 조정 위험이 존재한다.

또한 CTA와 같은 시스템 트레이더는 사전에 정해진 수학적 모델에 따라 자동으로 매수·매도를 수행한다. 이들은 변동성·추세 지표가 악화될 경우 일괄적으로 포지션을 축소해 추가 매도 압력을 유발할 수 있다.

기업의 자기주식매입(share buyback)은 투자자에게 유통주식 수 감축, 주당순이익(EPS) 개선 효과를 제공해 주가 부양 요인으로 꼽힌다. 그러나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규정상 분기 실적 발표 전 ‘블랙아웃 기간’엔 매입이 제한된다. 루브너가 지적한 것처럼 9월 중순 이후 이런 공백이 발생하면 수요 축이 일부 사라진다.

9월 효과(September Effect)는 20세기 초기부터 관측돼 온 계절성 패턴으로, 학생들의 학비 지출·세금 납부 등 현금수요 증가로 개인투자자 자금이 빠져나가면서 주가가 약세를 띤다는 설명이 따라붙는다. 물론 이 패턴이 매년 반복되는 것은 아니지만, 대형 기관들은 통계적 역사 데이터에 따라 선제적으로 리스크를 축소할 때가 많다.

투자자 체크 리스트

밸류에이션 — 최근 12개월 선행 주가수익비율(PER)이 S&P 500 기준 20배 내외로 장기평균(15배)을 상회한다.
유동성 — 연준이 실시한 긴축 기조로 시중 유동성 공급이 둔화되는 가운데, 기업 자사주매입 블랙아웃이 맞물린다.
포트폴리오 분산 — 고베타·AI 수혜주 집중 편중 여부를 점검하고, 방어주·현금 비중 확대를 고민할 시점이다.

시장 참여자들은 9월 첫째 주 이후 발표될 미국 비농업고용보고서, 소비자물가지수(CPI), 그리고 연준(Fed) 9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결과가 추가 방향성을 제시할 것으로 주시하고 있다. 주요 경제지표가 예상보다 부진하거나 인플레이션 압력이 재차 높아질 경우, 이미 높아진 밸류에이션은 더욱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한편 아시아 투자자들도 이 같은 신중 모드에 돌입했다. 전일 한국 코스피 시장에서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대형 IT주는 2% 안팎 하락했고, 홍콩 항셍테크지수도 1% 넘게 밀렸다. 중국 바이오테크 ETF는 전일 대비 3%가량 하락해 위험회피 심리가 글로벌로 확산되고 있음을 방증했다.

결론적으로, 이번 기술주 조정은 단순히 단기 변동이 아닌 시즌성·밸류에이션·유동성 삼중 요인의 합작으로 풀이된다. 과거 데이터가 맞아떨어진다면, 9월 중·하순까지 변동성 확대 구간이 이어질 수 있어 투자자들의 방어적 포트폴리오 관리가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