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무역기구(WTO)는 중국 정부가 캐나다의 철강·알루미늄 제품에 대한 부과금(surtax)과 관세율 할당제(tariff-rate quota) 조치를 문제 삼아 분쟁 협의를 공식 요청했다고 21일(한국시간) 밝혔다.
2025년 8월 20일, 인베스팅닷컴 보도에 따르면 중국이 제출한 이번 협의 요청서(request for consultations)는 캐나다가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지 않은 국가, 특히 중국산 철강을 대상으로 시행 중인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 조치를 집중적으로 겨냥한다.
중국 측은 먼저 캐나다가 세이프가드 관세율 할당(TRQ)을 통해 특정 철강 품목에 15% 내외의 추가 관세를 적용하고, 수입 물량을 일정 한도 내로 묶는 쿼터를 설정한 점을 지목했다. 이러한 조치는 캐나다와 FTA가 없는 국가의 철강·알루미늄에만 적용돼 중국 기업이 가장 큰 타격을 입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어 중국은 캐나다가 중국산 소재가 포함된 가공제품에도 별도의 부과금(surtax)을 매기고 있다며, 이는 WTO 협정 전반에 명시된 비차별 원칙 및 내국민대우 원칙을 위반한다고 지적했다. 중국 상무부는 “캐나다 조치는 보호무역적 성격이 강하며 정당화될 근거가 부족하다”고 강조했다.
WTO 분쟁 해결 절차는 협의 요청이 접수된 날부터 통상 30일 이내 당사국 간 협상이 시작되며, 60일 내 합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패널을 설치해 정식 재판 절차에 돌입한다1.
용어 설명
• 관세율 할당제(TRQ): 일정 물량까지는 비교적 낮은 세율을 적용하고, 그 한도를 넘어서는 수입분에는 훨씬 높은 관세를 부과하는 제도다. 해당 제도는 주로 농산물·철강 등 민감 품목의 급격한 수입 증가를 억제하기 위해 사용된다.
• 부과금(surtax): 통상 관세 이외에 추가적으로 부과되는 세금으로, 긴급 수입 제한 조치 또는 특정 대외 정책 목적을 위해 일시적으로 도입된다.
분쟁이 불러올 외교·경제적 파장
전문가들은 중국과 캐나다의 철강·알루미늄 교역 규모 자체는 미국·EU 시장에 비해 크지 않지만, 이번 분쟁이 미·중 무역 갈등의 ‘2차 전선’으로 확산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철강과 알루미늄은 전기차·풍력발전·인프라 건설 등 신흥 산업에 필수적인 재료이기 때문에, 공급망 안정성 측면에서 긴장감이 높아질 수 있다는 전망이다.
캐나다 정부는 2018년 미국이 무역확장법 232조를 근거로 철강(25%), 알루미늄(10%) 고율 관세를 부과하자, 자국 시장으로 몰릴 수입품을 방어한다는 이유로 세이프가드 조치를 도입했다. 이 조치는 WTO 규범상 ‘예외적 상황’에서 4년까지 허용되지만, 중국은 “필요 최소한 범위를 넘어섰다”고 비판한다.
중국 상무부 대변인은 “캐나다가 자국 이해를 명분으로 다자무역 규범을 훼손한다면, 세계 공급망 불확실성이 확대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반면 캐나다 공정무역부(Global Affairs Canada)는 “해당 조치는 국내 산업 보호를 위한 합법적 대응”이라며 WTO 절차에 성실히 임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향후 시나리오
① 60일 내 양국이 상호 합의에 도달할 경우, 분쟁은 조기 종료될 수 있다.
② 합의 실패 시 패널 심리→상소 기구(AB) 단계로 이어지며, 최종 판정까지 최장 2~3년이 걸릴 수 있다.
③ 캐나다가 패소하더라도 시정 기간(Reasonable Period of Time)을 활용해 정책을 조정할 수 있고, 미이행 시 중국은 보복 관세를 승인받을 가능성이 있다.
과거 사례를 보면, 2002년 미국이 철강 세이프가드로 WTO 패널에서 패소한 뒤 연 20억 달러 규모의 EU 보복 관세를 앞두고 조치를 철회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캐나다 역시 WTO 패널 결과를 주시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시장 반응
20일 글로벌 원자재 시장에서 열연 코일(HRC) 선물가격은 전일 대비 1.1% 하락했고, 알루미늄 3개월 선물(LME 기준)도 0.8% 약세로 마감했다. 다만 캐나다·중국 간 직거래 물량이 전체 거래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낮아 단기 가격 영향은 제한적이라는 평가다.
전문가 진단과 전망
무역경제연구원 윤지훈 연구위원은 “단순히 관세율 몇 %가 아니라, 공급망 리스크 관리 관점에서 규범과 현실 간 균형점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또 “캐나다가 미국의 232조 관세를 그대로 ‘미러링’할 경우, 다른 국가들도 보복성 관세를 확대 적용하면서 다자무역 체제가 더욱 약화될 위험이 있다”고 덧붙였다.
반면 일부 분석가들은 “중국이 WTO에서 연달아 제소를 진행하면서, 자국 기업과 투자자에게 법적 보호망을 강화한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며 이번 조치가 정치·외교적 메시지를 겸하고 있다고 해석한다. 실제로 중국은 지난 5년간 EU·미국·호주·캐나다를 상대로 10건 이상의 철강·금속 관련 분쟁을 제기했다.
결국 분쟁 해결 시점과 결과는 캐나다의 정책 조정폭, 중국의 협상 전략, 그리고 WTO 상소기구 공석 문제 등 복합 요인에 달려 있다는 분석이다. 다자무역 질서와 국제 공급망 안정의 시험대가 될 이번 사안을 시장과 정책 당국 모두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