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트뱅크의 대규모 투자, 인텔 회생에 ‘승부수’
일본 도쿄발 로이터 공동취재본에 따르면, 마사요시 손(손정의) 회장이 이끄는 소프트뱅크그룹(도쿄증권거래소: 9984)이 20억 달러 규모의 인텔(나스닥: INTC) 지분을 전격 매입했다. 이는 2022년 소프트뱅크 이사회에서 물러났던 리브-부 탄(Lip-Bu Tan)이 2025년 3월부터 인텔의 최고경영자(CEO)로 취임한 직후 단행된 투자로, 두 사람의 30년 파트너십이 다시 한 번 공고해졌음을 시사한다.
2025년 8월 19일, 인베스팅닷컴의 보도에 따르면 손 회장의 이번 결단은 ‘부진의 늪’에 빠진 인텔을 구조하기 위한 신뢰의 표시이자 전략적 지렛대로 평가된다. 금융·기술 분석기관 뉴스트리트리서치(New Street Research)의 롤프 벌크(Rolf Bulk) 애널리스트는 “이번 투자는 손 회장이 인텔의 구조조정이 수년 내 결실을 맺을 것이라는 확신을 드러낸 것”이라고 해석했다.
탄 CEO와 손 회장의 ‘두터운 신뢰’
리브-부 탄 CEO는 퇴임 당시 이사회 서한에서 “손 회장은 천재적이지만, 그에게 안전장치와 전략적 조언을 제공할 동반자가 필요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실제로 그는 소프트뱅크 비전펀드가 투자한 AI 반도체 스타트업 삼바노바(SambaNova)의 회장을 겸임하며 손 회장과의 협업을 이어왔다.
손 회장(68)은 2016년 미국 대선 직후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 당선인과 두 차례에 걸쳐 공개 회동을 연 바 있으며, AI 반도체 선두주자 엔비디아(Nvidia)의 황젠슨(젠슨 황) CEO와도 오랜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정·재계 인맥’은 소프트뱅크의 공격적 투자 전략을 뒷받침하는 핵심 자산으로 꼽힌다.
“Masa(손 회장)와 저는 수십 년간 긴밀히 협력해 왔다. 이번 투자는 인텔 재건에 대한 그의 신뢰를 보여주는 상징적 행보다.” — 리브-부 탄 CEO
인텔, AI·파운드리 경쟁력 회복 시동
인텔은 지난 10년간 인공지능(AI) 전용 GPU·가속기 시장에서 엔비디아에, 첨단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부문에서는 TSMC와 삼성전자에 뒤처져 왔다. 탄 CEO는 취임 직후 조직 슬림화, 불필요 자산 매각, 연구개발(R&D) 재배분 등 대대적 구조조정을 단행하며 ‘체질 개선’에 나섰다.
미국 워싱턴 정가 역시 인텔 지원에 발벗고 나선 모양새다. 블룸버그 보도에 따르면, 미 정부가 인텔 지분 10%를 인수하는 방안을 협의 중이다. 이는 자국 내 첨단 칩 공급망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과 맞물린다.
그러나 시장 전문가 아시메트릭어드바이저스의 아미르 안바르자데(Amir Anvarzadeh) 파트너는 “소프트뱅크의 20억 달러는 칩 업계 대규모 증설 비용(300~400억 달러)에 비해 ‘물방울’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손 회장이 트럼프 전 대통령과의 관계를 관리하려는 포석”이라고 분석했다.
소프트뱅크, ‘AI 중심’ 투자 드라이브 재가동
손 회장은 과거 위워크·그랩 등 부진한 투자로 비전펀드 실적이 악화되자 ‘일시 정지’ 버튼을 눌렀지만, 지난해부터 다시 공격적인 ‘빅딜’을 선보이고 있다. 대표 사례로는 오픈AI(챗GPT 개발사)와 함께 최대 5천억 달러 규모의 미국 데이터센터 프로젝트 ‘스타게이트(Stargate)’를 추진 중이며, 이를 위해 폭스콘이 보유했던 오하이오주 전기차 공장을 인수했다.
또한 소프트뱅크가 지배하는 영국 반도체 설계기업 Arm은 자체 서버용 칩 설계를 발표했고, 작년 말 AI 반도체 스타트업 그래프코어(Graphcore)를 인수하며 ‘반도체 밸류체인 수직계열화’에 속도를 냈다. 이러한 행보에 힘입어 최근 소프트뱅크 주가는 연초 대비 두 자릿수 상승률을 기록 중이다.
반도체 ‘빅 스케일’ 투자, 30~40억 달러가 분수령
화이트오크캐피털파트너스의 노리 치우(Nori Chiou) 투자이사는 “이번 20억 달러 투자는 재무적 목표보다는 전략적 파트너십 강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밝혔다. 그는 “최첨단 파운드리 경쟁에서 상업적 의미를 갖기 위해선 최소 300~400억 달러 대규모 증설 자금이 필요하다”며 “이번 지분 매입은 ‘길목 선점용 마중물’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 용어설명 파운드리(foundry)란 다른 기업이 설계한 반도체를 위탁생산하는 공정을 뜻한다. 글로벌 1위는 대만 TSMC, 2위는 삼성전자다. 인텔은 CPU(중앙처리장치) 고유 시장에서 출발했으나, 최근 ‘종합 반도체 기업’으로 탈바꿈하기 위해 파운드리 사업을 육성 중이다.
시장 전망과 리스크
전문가들은 “손 회장의 ‘반(反)시장’적 성향을 감안할 때, 인텔 투자 역시 역(逆)발상 베팅”이라는 데 동의한다. 뉴스트리트리서치의 벌크 애널리스트는 “인텔이 구조조정에 실패하더라도, 20억 달러는 소프트뱅크 포트폴리오 규모를 고려하면 제한적 손실”이라고 평가하며 “반대로 성공 시 Arm·SambaNova·Graphcore 등과의 시너지 효과가 극대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다만, 반도체 사이클 변동성·미중 기술 패권 경쟁·차세대 제조공정(EUV·GAA) 전환 지연 등은 인텔 회복의 최대 ‘복병’으로 꼽힌다. 업계 한 관계자는 “탄 CEO에게 주어진 시간은 길지 않다. 2026~2027년까지 실적·기술 로드맵이 개선되지 못할 경우 투자심리는 급격히 냉각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종합 평점
결국 손 회장의 20억 달러 지분 매입은 ‘상징성’과 ‘지렛대’를 동시에 노린 전략 카드라 할 수 있다. 자금 규모 자체는 반도체 시장 판도를 단숨에 바꾸진 못하지만, 소프트뱅크가 보유한 AI·데이터센터·설계·파운드리 생태계를 인텔과 연결하는 촉매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리브-부 탄 CEO의 리더십 아래 인텔이 ‘왕좌의 귀환’에 성공할지, 그리고 손 회장이 꿈꾸는 ‘AI 슈퍼컴퓨팅 제국’의 퍼즐이 맞춰질지는 2025년 이후 글로벌 반도체 업계의 최대 관전 포인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