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자본, 몸값 치솟는 유럽 축구 빅클럽으로 대거 유입

유럽 축구 시장이 사상 최대 규모로 성장하면서 미국계 투자자들이 잇달아 영국 프리미어리그(Premier League) 등 유럽 5대 리그 클럽의 지분을 사들이고 있다. 2023-2024시즌 유럽 5대 리그(잉글랜드·스페인·독일·이탈리아·프랑스) 클럽이 올린 총수입은 204억 유로(약 237억 달러)에 달했다.

2025년 8월 19일, CNBC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미국 자본이 이미 프리미어리그 구단의 과반을 완전 혹은 부분적으로 소유하고 있으며, 그중에서도 ‘빅 식스’로 불리는 6개 전통 강호 가운데 첼시·리버풀·맨체스터 유나이티드·아스널 네 곳이 미국 투자금을 끌어들였다.

프리미어리그가 출범한 1996-1997시즌 당시 5대 리그 전체 매출은 25억 유로에 불과했다. 불과 27년 만에 750% 급증한 것이다. 수입 증가 그래프


▶ 몸값 폭등하는 빅클럽

가파른 매출 상승은 구단 가치도 끌어올렸다. 글레이저(Glazer) 가족은 2005년 7억9000만 파운드(약 10억7000만 달러)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인수했는데, 2024년 억만장자 짐 래트클리프(Jim Ratcliffe·INEOS 회장)에게 일부 지분을 매각하면서 구단 가치를 약 50억 파운드로 평가받았다. 이는 현재 세계 축구 클럽 가운데 최고 수준이다.

“사실상 선택지가 뻔하다. 헬리콥터나 슈퍼요트를 몇 대나 소유할 수 있겠나.”
— 키어런 머과이어(Kieran Maguire) 리버풀대 축구재무학 부교수

머과이어 부교수는 미국 내 부의 집중이 유럽 축구 투자 증가의 직접적 동인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NFL·NBA 등 미국 프로스포츠 구단 몸값이 폭등하면서, 수십억 달러가 필요한 지분 인수가 여의치 않은 투자자들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유럽 축구로 눈길을 돌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 사모펀드·벤처캐피털의 활발한 진출

M&A 증가 그래프리서치 업체 피치북(PitchBook)에 따르면, 현재 5대 리그 클럽 36곳 이상이 사모펀드(Private Equity)·벤처캐피털(VC)·프라이빗데트(Private Debt) 자본을 받아들였다. M&A 거래 규모는 2018년 66.7 백만 유로에서 2024년 22억 유로로 급증했다.

사모펀드들은 이른바 ‘멀티 클럽 오너십’(Multi-Club Ownership) 전략을 채택해 여러 구단을 동시에 보유하면서 마케팅·재무 시너지를 꾀하고 있다. 피치북의 니콜라스 모우라(Nicolas Moura) 수석 애널리스트는 “다양한 클럽을 포트폴리오처럼 구축하려는 미국 투자자가 많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모델은 규제당국의 견제를 받고 있다. 유럽축구연맹(UEFA)은 같은 소유주가 여러 구단을 보유할 경우, 두 팀 이상이 동시에 UEFA 주관 대회에 출전하지 못하도록 규정한다. 2024-2025시즌에는 잉글랜드 크리스털 팰리스가 해당 규정 위반으로 유로파리그 출전이 금지됐는데, 이는 구단 지분을 보유한 미국 사업가 존 텍스터(John Textor)가 프랑스 올랭피크 리옹 지분도 함께 보유했기 때문이다. 관련 규제는 앞으로 더욱 강화될 전망이다.


▶ 성장률 둔화와 수익원 다각화

델로이트는 2025-2026시즌 유럽 축구 수입이 정체 국면에 들어설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중계권 가치 상승 속도가 둔화되면서 상업 수입(스폰서 계약·스타디움 활용)이 핵심 동력으로 부상했다고 분석했다. 2023-2024시즌 상업 수입은 전년 대비 6% 증가했다.

모우라 애널리스트는 “많은 미국 사모펀드가 방송수익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구단 자체 시설—예컨대 관중석 스탠드 전체나 스타디움—에 투자하려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경기장 콘서트, e스포츠 대회, 컨벤션 유치 등 ‘논축구(non-soccer)’ 이벤트가 팬 경험을 확장하고 있다.


▶ ‘해외 정규리그’ 실험 본격화

스페인 라리가(Liga) 는 올 시즌 역사상 처음으로 정규리그 경기를 해외에서 치른다. 바르셀로나비야레알이 미국 마이애미에서 맞붙을 예정이며, 이탈리아 세리에A 역시 호주에서의 경기 개최를 검토 중이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현재 국내 리그 경기를 타국에서 치를 수 있도록 규정 개정을 논의하고 있다.

머과이어 부교수는 “결국 프리미어리그도 경쟁 리그와 맞서려면 해외 경기 개최를 추진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수익 규모가 워낙 커 ‘기정사실화’ 형태로 팬들에게 제시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리처드 마스터스(Richard Masters) 프리미어리그 최고경영자(CEO)는 CNBC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미국 리그들과 매우 다르다”며 정규리그 해외 개최 아이디어를 공식적으로 논의한 바 없다고 선을 그었다.


■ 용어 한눈에 보기

프리미어리그: 1992년 출범한 잉글랜드 1부 프로축구 리그. 세계에서 가장 상업적·글로벌화된 리그로 평가받는다.

UEFA: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유로파리그 등 유럽 대항전을 주관하며, 구단 재정·소유 구조 규제를 담당한다.

사모펀드(Private Equity): 비공개적으로 자금을 모아 기업·자산을 인수한 뒤 가치 제고 후 매각해 수익을 창출하는 투자 방식. 최근 스포츠 구단 인수에 적극적이다.


▶ 기자 관전평

이번 보도는 글로벌 자본 흐름이 전통 스포츠 산업의 구조를 어떻게 재편하는지 생생히 보여준다. 특히 미국 투자자가 영국 구단을 ‘포트폴리오 자산’으로 인식하며 대체투자 전략을 구사한다는 점이 흥미롭다. 중계권 성장 한계가 노출되자 구단들은 스타디움 다목적화·해외 경기 등 새로운 수익원을 모색하고 있다. 결국 ‘축구의 국경’이 희미해지는 흐름은 팬 문화, 규제, 시장 질서 전반에 파급효과를 낳을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