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 메이저(슈퍼메이저)들이 액화천연가스(LNG) 시장 확대에 사활을 걸고 있다. 전문가들이 2030년 이전 ‘피크 가스(가스 수요 정점)’를 경고하는 가운데, Shell·TotalEnergies·BP·엑슨모빌·셰브런 등 글로벌 에너지 공룡들은 LNG 비중을 대폭 늘리겠다는 전략을 발표했다.
2025년 8월 18일, CNBC 뉴스 보도에 따르면, 영국계 석유기업 Shell은 ‘저탄소 전환기의 핵심 축’으로 LNG를 지목했다. 프랑스의 TotalEnergies는 2023~2030년 사이 자사가 관리하는 LNG 물량을 50% 확대하겠다고 밝혔으며, BP 역시 친환경 전략을 일부 수정해 화석연료 투자 가운데 특히 LNG 비중을 키우고 있다.
미국에서는 엑슨모빌(Exxon Mobil)이 2030년까지 LNG 포트폴리오를 두 배로 늘리려 하고, 셰브런(Chevron)은 기존 LNG 프로젝트를 확장하는 동시에 신규 설비를 추진 중이다. 서비스 기업 베이커휴스(Baker Hughes)도 최근 차트 인더스트리즈(Chart Industries)를 136억 달러(약 18조 원)에 인수하며 LNG 노출도를 높였다.
‘가교 연료’ 논쟁과 환경 우려
LNG는 천연가스를 영하 162℃로 냉각·액화한 형태로, 부피가 600분의 1로 줄어 운송·저장이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다. 업계는 LNG를 석탄·석유보다 ‘청정한 화석연료’로 소개하지만, 메탄 누출 및 연소 과정에서의 온실가스 배출 문제가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이에 따라 ‘LNG가 과연 탄소중립으로 가는 가교 연료(bridge fuel)가 될 수 있는가’를 둘러싼 논쟁이 치열하다.
에너지 싱크탱크 엠버(Ember)의 전력·데이터 애널리스트 Euan Graham은 CNBC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LNG 확대’는 매우 위험한 베팅이며 에너지전환에 역행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급성장이 LNG 수요를 약화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재생에너지 보급 속도가 게임의 판도를 완전히 바꿨다. LNG는 리스크가 크며, 특히 아시아 국가들은 호르무즈 해협 등의 지정학적 위험에 취약하다.” — Euan Graham, Ember
IEA ‘무언가는 희생될 것’…수급 불균형 경고
국제에너지기구(IEA)는 글로벌 LNG 수요가 2025년 이후 둔화돼 2030년경 정점을 찍을 것으로 전망했다. 2024년 ‘세계 에너지 전망(World Energy Outlook)’ 보고서에서 IEA는 미국·카타르 주도의 대규모 설비 증설로 수출 능력이 50% 가까이 증가하는 반면, 저소득 국가들이 높은 가격대를 감당하기 어려워 대체 연료를 선택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보고서는 “LNG 시장에서 ‘무언가는 희생될 수 있다’”며 공급 과잉 가능성을 경고했다.
IEA는 각국의 발표된 정책(APS 시나리오) 기준으로 2035년까지 LNG 수요가 연평균 2.5% 증가할 것으로 봤다. 그러나 에너지전환이 가속화되면 공급 과잉이 더 심화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Shell·TotalEnergies의 공격적 행보
Shell의 와엘 사완(Wael Sawan) 최고경영자는 7월 31일 ‘스쿼크 박스 유럽’ 인터뷰에서 “에너지전환은 선형적이지 않을 것”이라며, “Shell이 가장 두드러지게 기여할 수 있는 영역은 LNG”라고 말했다. 그는 “브라질의 가뭄, 우크라이나 전쟁 후 유럽의 수급 공백, 아시아의 혹서·혹한 등 다양한 상황에서 LNG가 유연하게 활용됐다”고 설명했다.1
Shell 내부 전망에 따르면 LNG 수요는 2040년까지 60% 늘어날 것이다. 회사는 AI 산업 성장, 아시아 경제 확대, 중공업·운송 부문의 감축 목표가 수요를 떠받칠 것으로 본다.
TotalEnergies도 2030년까지 LNG 포트폴리오 50% 확대 계획을 공표했다. 그 뒤에는 모질라베(모잠비크)·카타르 노스필드 등의 메가 프로젝트가 있다.
미국 슈퍼메이저와 서비스 업체의 ‘물량 공세’
엑슨모빌은 골든패스(Golden Pass)·파푸아뉴기니(PNG LNG) 지분 확대로 2030년까지 LNG 판매량을 두 배로 늘리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셰브런은 호주 고곤(Gorgon)·위트스톤(Wheatstone) 확장과 함께 멕시코만 연안 신규 터미널을 추진 중이다.
장비·서비스 회사 베이커휴스는 차트 인더스트리즈를 136억 달러에 인수하며 저장 탱크·열교환기 등 핵심 장비 수직 계열화를 꾀했다. 업계는 이를 ‘LNG 밸류체인 장악’으로 평가한다.
LNG 프로젝트의 경제성과 ‘자본 배분 원칙’
자산운용사 퀼터 체비엇(Quilter Cheviot)의 애널리스트 마우리치오 카룰리(Maurizio Carulli)는 CNBC 인터뷰에서 “Shell의 LNG 중점 전략은 수십 년 전 사업을 제로에서 키워온 연속성”이라며 “경쟁사 대비 핵심 경쟁우위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LNG 시설은 수명 30~40년을 가정하고 설계되므로, 2040년 이후 수요 둔화에도 경제성이 유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슈퍼메이저들은 엄격한 자본예산(Capital Discipline) 프로세스를 통해 다른 연료 대비 가격 경쟁력을 검증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전문가 해설: ‘피크 가스’와 ‘스트레이츠 오브 호르무즈’
피크 가스(Peak Gas)는 전 세계 천연가스 수요가 정점에 도달한 뒤 감소세로 전환되는 시점을 뜻한다. IEA·블룸버그NEF 등은 재생에너지·전기차·에너지 효율 개선이 가속화될 경우 2030년 이전 피크가스를 예상한다.
호르무즈 해협(Strait of Hormuz)은 페르시아만과 오만만을 잇는 39km 폭의 해상 요충지로, 전 세계 해상 원유·LNG의 20% 이상이 통과한다. 지정학적 충돌 시 공급 차질 우려가 높아 일본·한국·중국·인도 등 아시아 수입국들이 예의주시하고 있다.
기자 견해 및 전망
에너지전환이 가속화되는 가운데 슈퍼메이저의 LNG 확장 전략은 리스크와 기회가 공존한다. 태양광·배터리·수소 등 대체 솔루션이 성장하면서 장기 수요 불확실성이 커지는 반면, ‘에너지 안보·수급 유연성’ 측면에서 LNG의 매력도 역시 높아지고 있다. 아시아 수요, AI 전력 소비, 중공업 탈탄소라는 3대 변수는 2030년 이후 시장 균형을 결정지을 핵심 요인으로 보인다.
결국 슈퍼메이저들은 고성능·저비용 프로젝트에 집중해 비용 곡선을 낮추고, 동시에 메탄 누출 저감·CCUS(탄소 포집·저장) 솔루션을 통합해야 장기 생존력을 확보할 것이다.
IEA가 경고한 “무언가는 희생된다”는 메시지는 가격·수익성·환경성 세 축을 치열하게 재검증하라는 의미다. LNG가 ‘브리지’에서 ‘포일(foil)’로 전락할지, 아니면 ‘지속가능한 유연 연료’로 자리매김할지는 향후 10년간의 정책·기술·자본 흐름이 결정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