잭슨홀 연설 앞둔 파월 의장, 물가 억제와 고용 방어 사이에서 ‘줄타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제롬 파월 의장이 23일(현지시간) 와이오밍주 잭슨홀에서 열리는 연례 경제정책 심포지엄(이하 ‘잭슨홀 회의’)에서 임기 마지막 기조연설을 한다. 그는 2022년에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인플레이션을 잡겠다”는 강경 메시지를, 2023년에는 “고용시장을 지키기 위해 금리를 인하할 준비가 돼 있다”는 유연한 메시지를 던진 바 있다. 올해 연설은 물가와 고용이라는 양대 목표가 상충하는 상황에서 새로운 균형점을 제시해야 하는 최대 난제로 평가된다.

2025년 8월 18일, 인베스팅닷컴의 보도에 따르면, FOMC 내부에서도 ‘물가 상승 위험’과 ‘실업률 상승 위험’ 중 어느 쪽이 더 큰 위협인지 의견이 갈리는 것으로 파악된다. 금융시장과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모두 9월 회의에서 기준금리 인하를 기정사실화하고 있으나, 실제 인하 여부보다 중요한 것은 파월 의장이 ‘향후 정책 경로’를 어떻게 프레이밍할지라는 점이다.

현재 정책금리는 4.25~4.50%로, Fed 안팎에서는 이를 실물경제를 제약하는 수준으로 본다. 파월 의장이 알란 그린스펀 전 의장의 ‘선제적 완화’ 정신을 차용해 정책금리를 ‘중립 수준’으로 여겨지는 3% 부근까지 인하할 가능성에 관심이 쏠린다. 반대로 보수적 위원들은 여전히 목표 인플레이션 2%를 확고히 회복하기 전까지는 신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잭슨홀 회의란 무엇인가?

잭슨홀 회의는 캔자스시티연방준비은행이 매년 8월 소규모 초청 방식으로 개최하는 국제 경제정책 심포지엄이다. 초청 대상은 전 세계 중앙은행 총재, 재무장관, 학자 등 100여 명에 불과하지만, 이 자리에서 나온 발언은 글로벌 통화·금융시장에 즉각적인 파급효과를 낸다. 2010년 벤 버냉키 전 의장이 2차 양적완화(QE2)를 시사했고, 2022년 파월 의장은 ‘볼커 정신’을 소환해 공격적 긴축을 예고했다.

‘데이터 의존’ 접근법의 딜레마

파월 의장은 재임 초기부터 ‘데이터 의존(data-dependent)’ 원칙을 강조해왔다. 즉, 실물·물가·금융시장 지표가 실제로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방향을 결정한다는 뜻이다. 문제는 정책 시차통계 수정 탓에 과거 데이터에 매여 있으면 대응이 늦을 수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미 노동통계국(BLS)이 최근 5~6월 일자리 증가분을 대폭 하향 조정하면서 고용시장 상황이 생각보다 약화됐다는 신호가 뒤늦게 확인됐다.

전 부의장이자 현재는 핌코(Pimco) 글로벌 경제고문으로 활동 중인 리처드 클래리다는 “9월에 금리를 내린다 해도 그것이 단발성인지, 연속적 인하의 시작인지가 더 큰 커뮤니케이션 과제”라고 지적했다.

행정부와 Fed의 미묘한 온도차

트럼프 행정부는 ‘규제 완화와 생산성 향상’을 근거로 구조적인 인플레 위험이 미미하다고 주장한다. 재무장관 스콧 베센트는 그린스펀식 ‘앞서가는 통화정책’이 필요하다고 보며 “Fed가 지나치게 확인적 태도를 보이면 인플레이션이 사라질 기회를 놓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반면 Fed 내부 매파들은 높아진 관세와 공급망 차질이 물가 상승 압력을 재점화할 수 있다는 논리를 고수한다.

크리스토퍼 월러, ‘차기 의장 후보’의 시각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차기 Fed 의장 후보로 거론한 크리스토퍼 월러 이사는 “타격받은 고용을 살리기 위해 즉각적인 금리 인하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내비쳐왔다. 그러나 그는 최근 “만약 인플레이션이 예상보다 더 고착적이거나 고용 둔화가 생각보다 덜하다면 몇 차례 회의 동안 금리를 동결할 여지도 있다”고 언급, 일정 부분 후퇴한 모양새다.


안개가 걷히고 있다.” — 토머스 바킨 리치먼드 연은 총재

바킨 총재는 “최근 경제 데이터가 방향성을 좀 더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구체적인 진단으로 “1% 안팎으로 둔화된 GDP 성장률과 여전히 견조한 실업률, 그리고 완만하지만 되살아나는 물가”를 열거하며, Fed가 아직 충분한 시간을 갖고 판단할 여지가 있다고 강조했다.

왜 ‘중립 금리(Neutral Rate)’가 중요한가?

중립 금리는 경기를 과도하게 자극하지도 억누르지도 않는 이론적 기준금리다. Fed 내부 추정은 2.5~3.0% 수준이다. 경제가 둔화 국면에 들어가면 중립 금리 위에 위치한 현행 정책금리는 긴축 효과를 일으킨다. 따라서 월러·베센트 등 완화파는 적어도 정책금리를 중립 수준까지는 내려야 한다고 보는 반면, 매파들은 “물가 기대가 완전히 안정될 때까지 긴축 기조를 유지해야 한다”는 태도를 고수한다.

시장 반응 및 전망

채권시장에서는 9월 25bp(0.25%포인트) 인하 가능성을 70% 수준으로 가격에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점도표’(FOMC 위원별 금리 전망 도표)가 연내 3~4회 인하를 시사할지, ‘한 번 인하 후 관망’ 시그널을 줄지가 불투명해 불확실성이 증폭된다. 주식시장은 이미 S&P500 지수가 사상 최고치에 근접해 있어, 파월 연설이 ‘비둘기파적’이면 추가 랠리, ‘매파적’이면 단기 조정을 유발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전문가 시각

필자는 잭슨홀 회의에서 파월 의장이 대규모 완화를 예고할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실업률(3.9%)이 여전히 팬데믹 이전 평균과 유사하며 급격한 노동시장 훼손 증거가 부족하다. 둘째, PCE 근원 인플레이션이 3% 내외로 목표치(2%)를 상당폭 상회한다. 셋째,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공세가 물가에 미칠 2차 파급효과가 아직 통계에 온전히 반영되지 않았다. 따라서 파월 의장은 “한 차례 시험적 인하 후 데이터 점검”이라는 절충점을 제시할 가능성이 높다.

다만 중장기적으로는 Fed가 ‘뉴 노멀’ 시대에 맞춰 정책 체계를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 고령화·기술혁신·지정학 리스크 등이 중립 금리 추정치와 통화정책 전 transmission mechanism를 재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향후 파월 후임 의장은 이러한 구조적 변수까지 염두에 둔 새로운 정책 틀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결국 파월 의장의 이번 잭슨홀 연설은 ‘통화정책의 다음 챕터’를 여는 서곡이 될 전망이다. 시장, 행정부, 의회, 국제사회 등 이해관계자가 첨예하게 얽힌 만큼, 한 문장 한 단어가 글로벌 금융시장을 뒤흔들 수 있다. 투자자·기업·가계 모두 파월의 언어를 면밀히 해독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