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가 유럽연합(EU)에 대한 비판적 메시지를 강화하며 동시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관계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2025년 8월 15일, CNBC 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메르츠 총리는 전통적으로 친(親)EU 노선을 걸어온 정치인이지만, 최근에는 EU의 예산 확대안과 브뤼셀 관료주의를 공개적으로 겨냥하며 “EU가 지나치게 규제 중심적이고 반응 속도가 느리다”는 쓴소리를 내놓고 있다.
메르츠 총리는 과거 유럽의회 의원으로 활동하며 유럽 통합을 적극 지지해 온 인물이지만, 이번에는 EU의 장기 예산 증액 반대, EU-미국 간 무역합의 비판 등 구체적 현안에 대해 잇달아 이의를 제기했다. 독일은 최근 EU-미국 무역 협정에서도 가장 큰 반대 목소리를 낸 국가 가운데 하나다.
“메르츠 총리가 예전과 달라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는 본래 친유럽적이면서도 재정 보수주의와 작은 정부라는 전통적 보수 가치를 중시해 왔다.”
― 욘 플렉, 애틀랜틱 카운슬 유럽센터 선임국장
플렉 국장은 애틀랜틱 카운슬(Atlantic Council)을 인용해, 메르츠 총리의 EU 비판은 국내 정치적 압박과 보수적 가치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나온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특히 독일 산업계가 요구하는 “브뤼셀식 규제 완화”를 반영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평가했다.
수다 데이비드-윌프 독일마셜펀드(GMF) 부사장도 “메르츠 총리는 자국 산업 리더들의 목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복잡한 EU 규제 절차가 기업 활동을 제약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메르츠 총리는 2025년 7월 기자회견에서 EU가 “규제 집약적이고 때로는 대응이 너무 느리다“고 지적했다. 이는 EU 자체에 대한 근본적 불신이 아니라, 속도와 효율성을 높이자는 취지라는 게 전문가들의 해석이다.
헤닝 뵈펠 유럽정책네트워크(CEP) 대표는 독일 유권자에 대해 “EU에 근본적으로 비판적이진 않지만 보수적 성향이 뚜렷하다”고 짚었다.
새로운 독일식 리더십 시도
전문가들은 메르츠 총리가 전임 올라프 숄츠보다 더 적극적이고 “선명한 목소리”를 내면서 독일의 EU 내 위상을 재조정하려 한다고 본다. 뵈펠 대표는 “이전 정부가 중요한 유럽 정책에서 종종 기권(俗稱 독일표)으로 불렸다면, 메르츠는 독일의 리더십을 되찾겠다는 의지가 강하다”고 설명했다.
플렉 국장은 “메르츠 총리는 EU 재정 계획 등 독일 국내 정치에 즉각적 영향을 미칠 의제에서 원칙을 지키려 한다”며 “대부분의 유럽 파트너들은 그의 명확한 커뮤니케이션을 환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메르츠 정부의 실질적 EU 정책이 근본적으로 변한 것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메르츠 내각 구성,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 EU 집행위원장과의 긴밀한 대화 등을 볼 때, 유럽 통합을 지지하는 기본 노선은 유지된다는 분석이다.
트럼프와의 전략적 접근
또 다른 관측 포인트는 메르츠 총리가 EU 비판을 통해 미국 트럼프 행정부와의 관계에 우호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려 한다는 점이다. 뵈펠 대표는 “EU를 경계하는 트럼프 대통령이 보기에도, 메르츠의 비판적 태도는 호감 요인이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메르츠와 트럼프는 6월 백악관 오벌오피스 회동 이후 양호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메르츠는 최근 러시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정상회담에 앞서, 미-EU 사전 협의를 주도한 주요 인물로 꼽힌다.
“독일과 유럽은 미국과의 원활한 협력이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트랜스애틀랜틱 관계를 건설적으로 유지하는 것이 메르츠 총리의 최우선 과제다.”
― 수다 데이비드-윌프, GMF 부사장
플렉 국장도 “메르츠 총리는 친EU와 친미(親美) 노선을 별개의 선택지로 보지 않는다”며 “핵심 사안에서는 원칙을 지키되, 불필요한 말싸움으로 번지지 않도록 절제된 외교술을 구사한다”고 평가했다.
용어 및 기관 설명
애틀랜틱 카운슬(Atlantic Council)은 미국 워싱턴 D.C.에 본부를 둔 초당적 싱크탱크로, 국제 안보·정책 연구를 수행한다. 독일마셜펀드(German Marshall Fund of the United States)는 미국과 유럽 간 협력을 연구·지원하는 비영리재단이다. 이들 기관은 독일-EU-미국 관계를 분석하는 데 있어 영향력 있는 연구 결과와 전문가 의견을 제공한다.
또한 브뤼셀 관료주의는 EU 집행기관이 위치한 벨기에 브뤼셀의 복잡한 정책결정 및 규제 과정을 지칭하는 표현이다. 기업과 일부 회원국은 이를 경제성장의 장애로 바라보며 완화 또는 개혁을 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