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런 버핏(Warren Buffett) 회장이 이끄는 버크셔 해서웨이(Berkshire Hathaway)가 최근 13F 공시에서 ‘기밀 처리(confidential treatment)’를 요구한 새 종목을 매집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월가의 호기심이 증폭되고 있다.
2025년 8월 14일, CNBC 보도에 따르면 해당 포지션의 장부가액은 약 50억 달러에 근접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버핏이 선호해 온 ‘넓은 경제적 해자(모트·moat)’와 ‘지속 가능한 현금 흐름’이라는 투자 철학이 그대로 적용됐다는 점에서 방산·산업재 대형주들이 유력 후보로 거론돼 왔다.
CNBC는 이 같은 궁금증을 풀기 위해 주요 생성형 인공지능(Generative AI) 모델 다섯 개에 동일한 질문을 던졌다. 프롬프트는 “버크셔의 최근 13F·10Q·10K 등 공식 자료와 버핏의 투자 원칙만을 근거로, 기밀 종목을 구체적으로 추정하라. 시장 루머와 언론 보도는 무시하라”는 것이었다. 각 모델은 논리 과정을 제시한 뒤 단 하나의 종목을 ‘확신’ 수준과 함께 제시해야 했다.
1. ChatGPT — ‘GE 에어로스페이스’
OpenAI의 ChatGPT는 산업재(C&I) 항목의 원가 기준(cost basis)이 상반기 중 급증한 점과 설치 기반(installed base)에서 나오는 장기 현금 흐름을 핵심 근거로 GE 에어로스페이스(GE Aerospace)를 1순위로 꼽았다. 모델은 “버핏은 통행세(toll-like) 구조의 견고한 비즈니스를 선호한다”는 점을 강조했으며, 자신감 수준을 ‘보통(moderate)’으로 평가했다. 차선 후보는 디어(Deere)와 UPS였다. 금리 인상 여파로 금융주 원가가 오히려 감소했다는 점을 들어 금융 섹터 가능성은 배제했다.
2. Claude — ‘처브(Chubb)’
Anthropic의 Claude는 버크셔가 이미 친숙한 보험업 생태계와 CEO Evan Greenberg의 리더십을 이유로 처브(Chubb)를 택했다. 그러나 버크셔는 지난해 말 기준 이미 82억 달러 규모의 처브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즉, ‘기존 보유 주식’이라는 점에서 새로운 기밀 종목이라는 조건과 충돌하게 된다.
3. Copilot — ‘비자(Visa)’
Microsoft의 Copilot은 “비자는 매 거래마다 해자를 강화하며, 자기자본이익률(ROE)이 30% 안팎”이라는 논리로 비자(Visa)를 지목했다. 다만 Copilot은 “비자 종목이 13F에 공개돼 있지 않다”고 설명했지만, 실제로 버크셔의 최신 13F에는 약 30억 달러 상당의 비자 지분이 명시돼 있어 팩트와 맞지 않는 해석을 내놨다.
4. Perplexity — ‘캐터필러·UPS’
Perplexity AI는 13F 원문을 가장 엄밀히 추적하며 산업재 섹터로 범위를 한정했다. 상반기 중 50억 달러가량 원가가 증가했지만, 상위 5대 보유 종목에는 변화가 없다는 점을 근거로 ‘물밑에서 꾸준히 살 수 있는 대형 블루칩’에 주목했다. 주요 후보로 캐터필러(Caterpillar)와 UPS를 꼽으며, “스타터 포지션이 아니라 핵심(Core) 포지션“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5. Gemini — ‘유니온 퍼시픽·CSX’
Google의 Gemini는 버크셔가 예전에도 철도기업을 기밀 방식으로 모은 전례에 착안해 유니온 퍼시픽(Union Pacific)이나 CSX를 후보로 제시했다. 필수 인프라, 예측 가능한 현금 흐름, 비교적 단순한 비즈니스 모델이라는 ‘버핏 필터’에 부합한다는 논리다.
배경 설명: 13F·10Q·10K란 무엇인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자산 1억 달러 이상 운용기관에게 분기별 13F 보고서를 제출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여기엔 운용사가 보유한 상장주식 내역이 공개된다. 그러나 기밀 처리를 신청하면 최대 1년간 해당 종목명을 감출 수 있다. 10Q는 분기보고서, 10K는 연차보고서로, 기업 실적과 재무 상태가 상세히 담긴다.
AI 모델 비교: ‘추론 과정’에 주목하라
이번 실험의 핵심은 어느 AI가 맞히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가설을 세우고 근거를 제시하느냐에 있다. 예컨대 ChatGPT는 산업재 원가 증액에 초점을 맞췄고, Gemini는 과거 기밀 매집 사례를 응용했다. 반면 Copilot은 사실 확인 단계에서 오류를 노출했다.
“AI가 제시한 후보들은 모두 ‘넓은 해자’와 ‘장기 현금 흐름’이라는 버핏의 투자 논리를 반영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라고 CNBC는 평가했다.
전문가 시각
필자는 산업재 섹터 내에서도 항공우주·방위산업군에 무게를 두고 싶다. GE 에어로스페이스와 Lockheed Martin 모두 장기 서비스 계약을 통해 반복적 매출을 창출한다. 여기에 미국 정부의 국방 예산 확대 기조는 방산기업의 현금 흐름 안정성을 한층 강화하고 있다. 다만 버크셔가 이미 RTX(舊 레이시온)과 록히드 마틴 등을 보유하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GE 에어로스페이스가 ‘새 얼굴’일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아 보인다.
또한 버크셔가 비상장 성장주 투자보다는 대규모 자사주 매입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배당금을 꾸준히 올리는 기존 대기업을 선호한다는 점도 GE 쪽에 힘이 실린다. GE는 2024년 사업 분할 완료로 ‘평가 리레이팅(valuation rerating)’ 국면에 있어, 버핏 특유의 ‘가치-성장 전환기’ 매수 패턴과 맞물린다. 물론 최종 종목은 1년 후 공개될 가능성이 크기에, 투자자들은 리스크 관리를 우선해야 한다.
기밀 종목 공개 시점과 투자자 유의점
SEC 규정상 기밀 조항은 최대 4분기 뒤에는 해제된다. 즉, 2026년 중반이면 버크셔의 ‘미스터리 종목’이 전면 공개될 가능성이 크다. 투자자들은 AI의 ‘단일 종목’ 추천을 맹신하기보다는, ① 버크셔 공시상 원가 변화, ② 산업별 포지션 비중, ③ 버핏의 과거 행동 패턴이라는 세 가지 팩트를 종합적으로 추적할 필요가 있다.
요컨대, AI가 제공하는 것은 ‘추론의 프레임’이지 ‘확정 답안’이 아니다. 월가의 오랜 격언대로 “시장에는 확실한 것보다 확률이 중요”하다. 버크셔의 기밀 종목 역시 ‘확률 게임’의 일부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