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론 │ “반도체보다 전기가 먼저다”
미국 IT 인프라 시장에 전례 없는 전력 위기가 닥치고 있다. 생성형 인공지능(AI) 모델 학습과 대규모 언어모델(LLM) 서비스 확산으로 1 ㎿급 이상 고밀도 데이터센터 수요가 폭발하고 있지만, 현행 전력망으로는 24시간·365일 탄소중립·무정전 조건을 맞추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이퀴닉스(Equinix)가 잇달아 체결한 ‘1 GW 고도 원자력 전력 구매 계약(PPA)’은 향후 10년 글로벌 전력 지형, 원전 산업, 자본시장 밸류체인 전반을 뒤흔들 중대한 분기점으로 평가된다.
■ 1. 배경 │ AI → 전력 수요 → 원전 부활
1) 숫자로 보는 AI 전력 쇼크
- 전 세계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 2020년 200 TWh → 2023년 260 TWh(IEA)
- 미국 데이터센터 신규 허가 대기 물량: 30 GW 이상(S&P Global)
- 1조 파라미터 LLM 1회 학습 전력: 5~7 GWh(OpenAI‧스탠퍼드 공동 연구)
이는 중형 원전 1기 연간 발전량에 맞먹는다. 문제는 태양광‧풍력 같은 간헐성 재생에너지로는 이런 베이스로드 + 무탄소 + 고밀도
3조건을 동시에 충족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2) 고도(高度) 원자력: SMR·마이크로리액터
소형모듈원전(SMR, ≤ 300 MW)과 마이크로리액터(≤ 20 MW)는 모듈화·수동냉각·지하 설계를 통해 건설 기간·비용·안전성을 기존 대형 원전 대비 획기적으로 개선했다. 美 에너지부(DOE)는 2030년까지 50 기 실증 목표를 제시했고, IRA(인플레이션 감축법)·CHIPS법 등 인센티브가 민간 수요를 촉진하고 있다.
■ 2. 계약 구조 │ 이퀴닉스 1 GW PPA의 의미
구분 | 내용 |
---|---|
공급사 | Oklo(500 MW), Radiant Nuclear(마이크로리액터 20기·200 MW), 기타 유럽 SMR 3사(합산 300 MW) |
PPA 기간 | 최장 20년 + 옵션 10년 |
단가(레인지) | 45~55 $/MWh(추정) – 현행 가스 복합발전 LCOE 대비 5~10 $ 저렴 |
착공·가동 목표 | 2027 EPC, 2030~2032 상업운전(COD) 순차적 |
단일 데이터센터 업체가 기획 단계 SMR 1 GW를 선점(de-risk)한 것은 전례가 없다. 이는 ① 장기 전력비 확정, ② ESG 점수 개선, ③ 탄소배출권 비용 회피를 동시에 달성하려는 전략이다.
■ 3. 장기적 파급효과 5대 축
① 에너지 믹스 변화 & 원전 르네상스
2023년 기준 美 전력 믹스에서 원전 비중은 18.2 %(EIA). SMR 본격 상용화 시 2040년 25% 이상 재확대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수 있다. 이는 천연가스 의존도를 낮추고, 배출권 가격 급등 리스크를 헤지한다.
② 전력 인프라 CAPEX 재편
전통 가스복합발전 대비 GW당 건설비는 높지만 모듈 공장 대량생산으로 학습효과가 발생한다. BNEF는 2035년 SMR CAPEX가 3,500 $/kW → 2,000 $/kW로 하락할 것으로 예측한다. 전통 전력 유틸리티·EPC·모듈 제작 밸류체인에 구조적 수주가 이어질 전망이다.
③ 데이터센터 부동산·리츠(Reit) 가치 상승
AI 수요 → 전력 확보 능력 → 리츠 밸류에이션으로 연결. 사례: 이퀴닉스 발표 다음 날 EQIX +4.7%, DLR +3.1%. 고정 장기 PPA는 현금흐름 가시성을 높여 Cap Rate를 20~30 bp 낮추는 효과가 있다.
④ 탄소중립·에너지안보 정책 촉진
- IRA 세액공제: SMR 45Y(최대 1.5 ¢/kWh) + 48E(ITC 30%) 이중 적용 가능
- 州 RPS(재생에너지 의무)·ZEC(무탄소 크레딧)에 원전 포함 움직임 가속
- 상무부 ‘데이터센터 전력 공급망 특별법(가칭)’ 초안 검토
정책 레버리지가 뒷받침될 경우 그리드 연결 승인 프로세스가 단축, 금융 조달금리(SOFR 스프레드)도 50 bp 내외 우대가 예상된다.
⑤ 자본시장 테마 확장 – ‘뉴클레어 + AI 인프라’ ETF
글로벌 ETF 운용사들은 원전·데이터센터 복합 테마 상품 출시를 준비 중이다. 현재 Global X Uranium ETF(URA)·Invesco Alerian AI Infrastructures ETF(AIPI) 등 기존 테마가 통폐합·재편될 가능성이 있다.
■ 4. 리스크 요인
- 규제 & 인허가 지연 – NRC(미 원자력규제위)의 설계 인증 평균 3~5년. 정치·지역 커뮤니티 반발 시 COD 연기.
- 사용후 핵연료 관리 – Yucca Mountain 프로젝트 표류 상태. SMR도 저장·재처리 해법 필요.
- 원전 CapEx 인플레 – 원자재(니켈·스테인리스)·모듈 용접 인력 부족.
- AI 사이클 변동성 – AI 수요 둔화 시 PPA Take-or-Pay 의무가 재무 레버리지로 전가.
■ 5. 투자 전략 │ “픽 앤 쇼블 2.0” 로드맵
섹터별 잠재 수혜주 리스트
- SMR 제작·모듈화 : Nuscale Power, BWX Technologies
- 데이터센터 리츠 : Equinix, Digital Realty, Iron Mountain
- 고효율 냉각·변전 : Schneider Electric, Eaton, Vertiv
- 우라늄 생산·서비스 : Cameco, NexGen Energy
- 건설·EPC : Aecom, Fluor
장기 펀더멘털에 집중한다면 ① 리츠 + ② 원전 Tier-1 + ③ 전력 장비를 결합한 바벨 전략이 유효하다. 금리 하락 국면에서는 리츠 β가, 경기 회복 국면에서는 원전·EPC β가 상대 초과수익을 낼 수 있다.
■ 6. 정책·산업 전망 시나리오
베이스라인(확률 55%) : 2030년 美 SMR 누적 15 GW, 데이터센터 전력의 18% 커버. – WACC 하락, REIT Cap Rate 추가 25 bp 축소.
상향(25%) : NRC 패스트트랙·IRA 연장 → 2030년 25 GW 달성. – 우라늄 가격 30% 상승, SMR 밸류체인 고성장.
하향(20%) : 규제 지연·LCOE 상향 → 2030년 10 GW 미만. – 데이터센터 기업 PPA 리프라이싱, 가스발전 의존 지속.
■ 결론 │ “전력 없는 AI는 허상…SMR은 선택 아닌 필수”
인공지능은 4차 산업혁명의 엔진이지만, 그 엔진을 돌릴 ‘연료’는 안정적‧무탄소 전기다. 이퀴닉스의 1 GW PPA는 단순한 기업 간 계약을 넘어, AI 시대 전력 패러다임이 어떻게 변모해야 하는지 방향성을 제시한 선언적 사건이다. 2030년 이후 전세계 데이터센터가 요구하는 전력이 최소 500 TWh(IEA 추정)로 불어나는 상황에서, 메가스케일 SMR 클러스터는 더 이상 ‘선택지’가 아니다.
투자자는 지금이 바로 원전-AI 인프라 융합 밸류체인의 초입 구간임을 인식하고, 정책·기술·자본 흐름을 입체적으로 점검해야 한다. “픽 앤 쇼블 2.0” 전략이 유효한 이유다.
— 2025년 8월 | 경제칼럼니스트 이중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