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얼(Haier)이 소유한 GE어플라이언스(GE Appliances)가 향후 5년 동안 미국 제조 시설과 인력에 30억 달러(약 4조원) 이상을 투자할 계획이라고 13일(현지시간) 밝혔다.
2025년 8월 13일, 로이터 통신의 보도에 따르면 이번 투자 계획은 도널드 트럼프 전 행정부가 추진한 자국 내 제조업 진흥 관세 정책 이후 다국적 기업들이 미국 사업을 확대하는 흐름과 맥을 같이한다.
기업 측은 이번 투자로 5개 주에서 총 1,000개의 신규 일자리를 창출하고, 에어컨·온수기 등 핵심 제품군을 확장하는 한편, 미국 내 11개 생산시설을 자동화 설비와 최신 자본 장비로 현대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투자·고용 규모 및 지역별 효과
GE어플라이언스는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루이빌(Louisville)을 포함한 5개 주에 걸쳐 약 1,000명의 직접 고용을 늘릴 예정이다. 각 주별 구체적 고용 규모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전체 프로젝트의 3분의 1 이상이 켄터키주 루이빌 본사 캠퍼스에 집중될 것으로 관측된다. 루이빌은 1950년대부터 GE어플라이언스의 플래그십 ‘어플라이언스 파크’가 자리 잡은 지역으로, 이번 투자는 기존 생산라인의 자동화율을 높이고 연구·개발 역량을 강화하는 데 투입된다.
아울러 회사는 공조(HVAC)·급탕(Boiler & Water Heater) 포트폴리오를 확대해 미국 남부 및 서부 주택시장 수요에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GE어플라이언스는 “기존 냉장고·세탁기 중심 사업을 넘어 냉난방·급탕 솔루션을 포괄하는 ‘홈 솔루션 풀 라인업’을 구축해 1) 소비자 선택지를 넓히고 2) 에너지 효율 기준을 선도하겠다”라고 밝혔다.
트럼프 행정부 관세 정책의 파급력
트럼프 행정부는 2018년부터 세탁기·철강·알루미늄 등 주요 품목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며 ‘미국 내 생산 회귀(Reshoring)’를 공개적으로 압박했다. GE어플라이언스가 속한 가전 업계는 당시 세탁기 긴급수입제한조치(세이프가드)에 직접 영향을 받은 대표적 산업이다. 관세로 인해 해외생산·역외조립 비용이 상승하면서, 기업들은 장기적으로 국내 공장 증설 또는 자동화 투자를 통해 원가 구조를 재편할 필요성을 체감했다.
GE어플라이언스의 투자 발표는 이러한 ‘정책 드라이브 → 기업 투자 확대’라는 연쇄 반응을 다시 한 번 확인해준다. 특히, 동일 업종의 캐리어 글로벌(Carrier Global)이 올해 초 “미국 현지에 10억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밝힌 것과 비교해볼 때, 제조업 전반에서 ‘현지화·기술 고도화’ 트렌드가 뚜렷해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GE어플라이언스 관계자 발언
“이번 투자는 신제품 개발 속도를 높이고, 근로자에게 고부가가치 기술 교육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미국 제조업의 장기 경쟁력 회복에 기여할 것이다.”
2016년 하이얼 인수 이후 누적 투자 65억 달러 돌파
GE어플라이언스는 2016년 중국 가전 대기업 하이얼이 제너럴일렉트릭(GE)으로부터 54억 달러에 인수한 이후, 미국 생산 거점을 공격적으로 확장해왔다. 회사에 따르면 이번 계획이 완료되면 2016년 이후 미국 제조 및 물류 네트워크에 투입된 누적 투자액은 65억 달러에 달하게 된다. 이는 인수 금액을 웃도는 수준으로, 하이얼이 북미 시장을 전략적 거점으로 삼고 있다는 방증이다.
하이얼은 1984년 창업 이후 ‘글로벌 100년 브랜드’ 비전을 내세워 냉장고·세탁기·TV·스마트홈 솔루션으로 사업을 확장해왔다. GE어플라이언스는 하이얼의 북미 전략을 실현하는 핵심 자회사로, 브랜드 독립성을 유지하면서도 연구개발(R&D)·공급망·디지털 플랫폼을 공유한다는 특징이 있다.
산업·지역 경제 파급효과 분석
1,000개의 신규 일자리는 통계적으로 약 2~3배의 간접 고용 효과(부품·물류·서비스 연관 산업)를 유발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켄터키, 앨라배마, 조지아 등 남동부 제조벨트 주(州)에서는 중소 부품업체 매출 증가, 숙련기술 교육 프로그램 확대 등 지역 경제 활성화가 기대된다. 에너지 고효율 공조·급탕 장비 생산 증가로 관련 기술 표준이 상향될 가능성도 있다.
특히, 자동화·로보틱스 설비 도입이 대규모로 이루어질 경우, 기계·IT 인프라 유지보수 인력 수요가 동반 상승한다. 이를 위해 GE어플라이언스와 현지 직업교육기관이 산학 협력 프로그램을 확대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전망 및 전문가 평가
업계 애널리스트들은 “미중 무역 갈등이 장기화되는 상황에서, 하이얼이 북미 생산·물류 체인을 강화하는 전략은 리스크 헤지(위험 분산) 차원에서 합리적”이라고 평가한다. 또한 “에어컨·온수기 등 에너지 사용량이 높은 가전 부문에서 현지 규제·친환경 기준을 맞추기 위해서는, 연구개발과 제조 단계를 물리적으로 인접시켜야 한다”고 지적한다.
정부 정책 측면에서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반도체법(CHIPS Act) 등 최근 통과된 산업지원 법안과 연계해, 에너지 효율 인증을 취득한 가전제품에 세액공제(타당 시)나 연구개발 비용 공제 혜택이 적용될 가능성도 거론된다. 다만, “자본투자 규모 대비 고용 창출 효과가 크지 않다”는 노동계의 우려도 제기된다.
또 다른 변수는 대선주기다. 2024년 대선에서 행정부가 교체될 경우 관세 정책·인센티브 구조가 일부 변동될 가능성이 있어, 기업들은 ‘지속 가능한 로컬 공급망 구축’을 위해 각 주 정부와 긴밀히 협력할 필요가 있다.
알아두면 좋은 용어
관세(Tariff): 국가가 수입품에 부과하는 세금. 보호무역 또는 재정 확보 목적.
세이프가드(Safeguard): 특정 품목 수입 급증으로 자국 산업 피해가 우려될 때 취하는 임시수입제한 조치.
Reshoring: 해외로 이전한 생산 활동을 본국으로 다시 이전하는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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