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 트럼프-푸틴 알래스카 정상회담 기대치 낮춰

백악관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첫 대면을 앞두고 “경청(聆聽)의 자리”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결과에 대한 기대치를 크게 낮췄다. 이는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을 둘러싼 실질적 합의가 이번 회담에서 도출되기 어렵다는 점을 시사한다.

2025년 8월 13일, CNBC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이번 회담은 8월 15일(현지시간) 알래스카 앵커리지의 조인트 베이스 엘멘도프-리처드슨(JBER) 공군기지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그러나 백악관 대변인 캐롤라인 레빗은 12일 브리핑에서 “이번 만남은 대통령이 상황을 더 잘 파악하기 위한 listening exercise”라며 “실질적 당사자인 우크라이나가 자리에 없기 때문에, 전쟁 종식을 위한 구체적 해법이 즉시 나오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러시아군은 최근 우크라이나 동부 전선에서 공세를 강화하며 협상 전 유리한 고지를 점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모스크바는 ▲점령지 유지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 포기 ▲침공 지역 내 ‘새로운 선거’ 실시 등 최대치(maximalist) 조건을 고수하고 있다. 이러한 조건은 우크라이나와 유럽연합(EU)이 공통적으로 주장하는 영토 보전(territorial integrity) 원칙과 정면 충돌한다.

트럼프ㆍ푸틴

“랜드 스와핑” 발언…키이우ㆍEU 반발

트럼프 대통령은 11일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일종의 영토 교환(land swapping)이 이뤄질 수 있다”고 언급하며 논란을 키웠다. 그는 “러시아와 여러 관계자들을 통해 들은 바에 따르면, 우크라이나에 좋은 방향으로 진행될 것”이라고 덧붙였지만 구체적 대상 지역이나 방식은 밝히지 않았다.

이에 대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12일 영상 연설에서 “우크라이나 없이 우크라이나 문제를 논의할 수 없다”며 완강히 맞섰다. EU 지도자들도 즉각 성명을 내 “영토 보전 원칙은 협상의 전제”라고 거듭 강조했다.

EU 외교수장·전문가들 “사진 찍기용”

카야 칼라스 EU 외교·안보정책 고위대표는 CNBC와의 인터뷰에서 푸틴 대통령이 “실제 협상 의지가 아니라 트럼프와의 사진 한 장(photo-op)을 원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젤렌스키를 배제하는 것은 협상 의지가 없다는 증거”라며 추가 제재를 지연시키려는 전략이라고 분석했다.

컨설팅사 프리즘 전략정보(PRISM Strategic Intelligence)의 파트너 벤저민 고드윈도 13일 CNBC ‘유럽 얼리 에디션’에 출연해 “랜드 스와핑이라는 전제가 우크라이나·EU·미국 모두 받아들일 수 없는 안”이라며 “백악관이 회담 기대치를 연일 낮추는 배경”이라고 평가했다.

“이번 회담은 푸틴에게는 강력한 이미지를, 트럼프에게는 이벤트를 제공하지만 실질적 성과는 기대하기 어렵다.” — 벤저민 고드윈

용어ㆍ배경 설명

랜드 스와핑(land swapping)은 갈등 당사자 간 영토 일부를 교환해 분쟁을 해결하려는 접근법이다. 과거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수단-남수단 협상에서 거론된 바 있지만 영토적·민족적 복잡성을 이유로 실현된 사례는 드물다.

조인트 베이스 엘멘도프-리처드슨(JBER)은 알래스카 앵커리지에 위치한 미 공군·육군 합동기지다. 냉전 시기 소련과의 대치 최전선으로써 전략적 가치가 높아, 이번 회담 장소 선정 자체가 강력한 상징성을 띤다는 분석이 나온다.


전문 기자 관전 포인트

1) ‘기대 관리(expectation management)’ 전략
백악관은 회담을 ‘경청의 장’으로 규정하며 결과물이 미비하더라도 정치적 타격을 최소화하려는 의도를 보인다. 이는 미·러 간 관계 정상화 이미지와 우크라이나 지지라는 상충 목표 사이의 절충으로 해석된다.

2) 러-우 전선의 군사적 시간표
러시아가 협상 직전 동부 공세를 강화한 것은 ‘전장 우위=협상 우위’라는 전통 전략의 연장선이다. 만약 푸틴이 추가 지역 점령을 선언하면 미 회담장에서 ‘현상 유지’ 요구를 정당화할 수 있다.

3) 제3국 제재 압박 시그널
백악관은 러시아 직접 제재 대신 “러시아의 우군을 겨냥한 관세·무역 압박” 카드를 꺼내 들었다. 최근 인도산 러시아 유류를 이유로 인도에 25% 추가 관세를 부과한 것이 대표 사례다. 향후 중국·터키·걸프 산유국으로 압박이 확산될 경우 글로벌 공급망과 원자재 시장 변동성이 커질 가능성이 있다.


기자 해설: 이번 정상회담은 푸틴 대통령에게는 ‘국제 무대 복귀’ 이미지를,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분쟁 중재’ 리더십을 과시하는 장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당사자 부재, 서방 동맹의 내구성, 전장 상황 등 근본 변수들이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만큼, 실질적 평화 프로세스의 첫걸음으로 보기는 이르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