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D.C. — 백악관이 스미스소니언 협회(Smithsonian Institution) 산하 주요 국립박물관들을 대상으로 전시·교육 자료를 전면 재검토하라고 공식 요구했다. 이번 조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강조해 온 ‘아메리칸 엑셉셔널리즘’(American exceptionalism·미국 예외주의)의 관점을 박물관 콘텐츠에 반영하기 위한 것으로 알려졌다.
2025년 8월 12일, CNBC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백악관은 이날 스미스소니언 협회 로니 번치(Lonnie Bunch) 총장에게 공문을 보내 8개 국립박물관에 대한 포괄적 내부심사(comprehensive review)를 30일 이내에 개시하고, 120일 이내에 ‘필요한 콘텐츠 수정’을 시작하라고 명령했다.
공문은 “우리 建國 250주년(2026년)을 앞두고 국가적 통합, 진보, 변함없는 가치를 보여 주는 전시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면서, △250주년 기념 전시 △기존 상설·기획전 △교육 프로그램 등과 관련된 모든 자료를 우선 제출하라고 적시했다. 해당 문서에는 “대통령의 지침에 부합하도록 분열적·정파적 서사를 제거하고, 국민이 문화기관에 품은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돼 있다.
전시물 검토 범위·시한
백악관이 지정한 심사 1단계(Phase Ⅰ) 대상 박물관은 다음과 같다.
▪ 국립 미국역사박물관(National Museum of American History)
▪ 국립 자연사박물관(National Museum of Natural History)
▪ 국립 아프리카계 미국인 역사문화박물관(National Museum of African American History and Culture)
▪ 국립 아메리카 원주민 박물관(National Museum of the American Indian)
▪ 국립 항공우주박물관(National Air and Space Museum)
▪ 스미스소니언 아메리칸 아트 뮤지엄(Smithsonian American Art Museum)
▪ 국립 초상화 미술관(National Portrait Gallery)
▪ 허쉬혼 미술관·조각 정원(Hirshhorn Museum and Sculpture Garden)
백악관은 “Phase II에서 추가 박물관을 검토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공문에는 린지 해리건(Lindsey Halligan) 대통령 특별보좌관, 빈스 헤일리(Vince Haley) 백악관 국내정책위원회(DPC) 국장, 러셀 보트(Russell Vought) 예산관리국(OMB) 국장이 공동 서명했다.
“우리 국립박물관이 국가의 통합과 진보, 그리고 영속적 가치를 제대로 반영하고 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 백악관 공문 중
스미스소니언 협회는 CNBC의 논평 요청에 즉각 응답하지 않았다. 이번 소식을 최초 보도한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일부 박물관은 최근 트럼프 대통령 명시를 삭제하거나 전시 설명을 수정한 사례가 있어 향후 ‘검열’ 논란이 재점화될 가능성이 있다.
‘아메리칸 엑셉셔널리즘’이란?
용어상 ‘미국 예외주의’는 미국이 다른 국가와 구별되는 독특한 역사·정치·문화적 사명을 지녔다는 믿음을 가리킨다. 19세기 알렉시스 드 토크빌이 언급한 이후 보수·진보 진영 모두에서 자주 인용됐으나, 최근에는 정파적 가치관 대립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전문가 관전포인트
문화행정·역사학계에서는 이번 지시가 연방 자금에 크게 의존하는 국립박물관의 운영 자율성에 미칠 파장을 주목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250주년 기조가 ‘통합’이라는 명분 아래 검열·재서술로 귀결될 경우, 표현의 자유·학문적 독립성 논쟁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반면 보수 진영은 “세금으로 운영되는 기관은 국민적 자긍심을 고양해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우며 환영 입장을 밝혔다.
또 다른 쟁점은 예산 및 일정이다. 120일이라는 촉박한 수정 기한은 대규모 큐레이션·디자인 작업을 요구하는 국립박물관에 상당한 행정 부담을 지울 전망이다. 박물관계 관계자들은 “물리적·재정적 지원책이 병행되지 않으면 상징적 조치에 그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향후 일정·시사점
스미스소니언 측이 30일 이내 자료를 제출한 뒤 추가 지침이 내려오면, 백악관은 2026년 7월 4일로 예정된 건국 250주년 공식행사에서 ‘수정 완료’ 결과물을 선보일 것으로 보인다. 향후 대통령 선거·정당 정치와 맞물려, 국립문화기관이 정치적 ‘프레임 전쟁’의 전장으로 확대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번 사안은 박물관학(museology)과 정치 커뮤니케이션이 교차하는 대표적 사례로 기록될 가능성이 크다. 전문가들은 “공적 기억(public memory)이 어떻게 형성·소통되는지 보여주는 생생한 단초”라며, 관련 연구·정책 논의가 한층 활기를 띨 것으로 예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