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압박에도 방위비·대중국 전략에서 독자 노선 고수하는 스페인

【마드리드】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와 대립각을 세우는 스페인 정부의 독특한 외교·방위 전략이 국제사회의 이목을 끌고 있다. 마이너리티 좌파 연립정부가 주도하는 이 국가는 F-35 스텔스 전투기 구입 포기NATO 국내총생산(GDP) 대비 5% 국방비 목표 거부, 그리고 중국과의 경제 협력 확대라는 세 가지 고위험 선택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심기를 거스르고 있다.

2025년 8월 12일, CNBC 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스페인은 그간 제기된 미국산 무기 도입·방위비 증액 압력을 공개적으로 일축했으며, 동시에 베이징과의 통상 관계를 강화하며 ‘전략적 여지’를 넓히고 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유럽 회원국 가운데 공개적으로 트럼프의 노여움을 감수한 드문 사례”라고 평가한다.

Pedro Sanchez press conference

1. 방위비 5% 목표 거부와 F-35 철회 배경

스페인 국방부는 8월 6일 로이터 통신을 통해 미 록히드마틴사의 F-35 도입 계획을 전면 철회한다고 밝혔다. 대신 자국·EU가 공동개발 중인 유로파이터 타이푼 또는 FCAS(미래전투항공체계)로 노후 전력을 교체할 예정이다. 이는 6월 25일 네덜란드 헤이그 NATO 정상회의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스페인이 2035년까지 GDP 5%를 국방에 쓰지 않으면 스페인 경제를 ‘날려버릴’ 조치가 가능하다”라고 경고한 직후 나온 결정이다.

“마드리드는 국방에서 무임승차하려 한다.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 — 도널드 트럼프, 2025년 6월 25일 NATO 정상회의 중

그러나 스페인은 EU 집단 교섭권으로 관세 보복을 어느 정도 상쇄하고 있다. 7월 27일 체결된 미국-EU 프레임워크 무역협정에 따라 EU 전체 수출품엔 15% 관세가 일괄 적용돼, 비EU국인 스위스가 39% 고율 관세를 부과받은 것과 대비된다.

2. 정치적 동기와 국내 상황

페드로 산체스 총리는 부패 스캔들·사법 조사 등 연이은 악재에도 2027년 총선 재출마를 선언한 상태다. 유라시아그룹의 남유럽 담당 수석 애널리스트 페데리코 산티는 “국내 의석이 취약한 산체스 총리가 대형 외교 이슈를 전면에 내세워 지지율 하락을 상쇄하려 한다”고 분석했다.

엘카노왕립연구소의 이그나시오 몰리나 선임연구원은 “스페인은 1898년 미·스페인 전쟁 이후 대서양주의보다 유럽주의 성향이 강하다”며 “지리적으로 러시아와 멀리 떨어져 있어 NATO 의존도가 낮다”고 설명했다.

3. 대중(對中) 접근과 안보 우려

Xi Jinping meets Pedro Sanchez

마드리드는 4월 11일 베이징에서 시진핑 국가주석과 회담해 첨단 기술·재생에너지·관광 분야 협력 확대를 약속했다. 특히 화웨이가 스페인 사법기관 감청 시스템 프로젝트를 수주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워싱턴과 브뤼셀은 “안보 리스크”라며 우려를 표명했다.

독일마셜재단(GMF)의 크리스티나 카우쉬 선임연구원은 “스페인이 EU 내부에서도 가장 친중(親中) 성향 가운데 하나”라고 지적하며, “EU가 강조하는 상호주의 원칙을 위협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4. ‘작은 나라’ 보호막과 잠재 리스크

전문가들은 현재까지 스페인이 실질적 보복을 피한 이유로 두 가지를 꼽는다. 첫째, EU 단일시장·관세동맹이 방어막이 돼 트럼프의 직접적인 고관세 폭탄이 힘을 잃었다. 둘째,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 레이더에서 스페인의 전략적 비중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점이다.

다만 ‘무풍지대’는 영구적이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카우쉬 연구원은 “스페인은 유럽 내부의 불만을 대변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산체스 개인·스페인·EU 모두에게 부메랑이 될 가능성을 안고 있다”고 경고했다.

5. 용어 해설

NATO 국방비 5% 목표 : 2025년 NATO 정상회의에서 제안된 신규 지침으로, 2035년까지 회원국이 GDP의 5%를 국방비로 지출하도록 권고한다. 기존 2% 목표보다 훨씬 높은 수치다.

F-35 라이트닝 II : 미국 록히드마틴이 제작한 5세대 스텔스 다목적 전투기로, 높은 가격과 유지비에도 불구하고 NATO 회원국 상당수가 운용·도입 중이다.

FCAS : 프랑스·독일·스페인이 공동 개발 중인 차세대 전투기 및 시스템 프로그램으로, 2040년대 초 실전 배치를 목표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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