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리 주(Julie Zhu)·셀레나 리(Selena Li)·케인 우(Kane Wu) 공동 보도
적어도 중국 기업 24곳 이상이 올해 들어 홍콩 증권거래소(HKEX)에 비공개(Confidential) 형식으로 상장 예비심사를 신청했으며, 더 많은 기업이 이 같은 절차를 준비 중이라고 투자은행 업계 관계자 2명이 밝혔다.
2025년 8월 11일, 로이터 통신 보도에 따르면, 홍콩 거래소는 5월부터 미국식 기밀 제출 제도를 도입해 초기 단계에서 사업 계획과 재무정보를 외부에 공개하지 않고 상장 심사를 진행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업계 소식통에 따르면, 자율주행 기업 Zelos Tech와 인공지능(AI) 스타트업 MiniMax를 비롯한 여러 중국 기업이 최근 이 방식으로 상장을 추진하고 있다.
대부분의 신청은 5월 개설된 Technology Enterprises Channel(TECH) 출범 이후 이뤄졌다. TECH는 바이오테크·AI·반도체 등 특정 첨단 분야 기업이 비공개로 청구서를 제출할 수 있도록 설계된 통로다.
글로벌·중국계 투자은행 고위 임원들은 “AI·반도체처럼 지정학적 리스크가 큰 산업에서 비공개 제출이 특히 매력적”이라며 “공시 부담 없이 규제 심사를 선제적으로 통과해 IPO(기업공개) 타이밍을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과거에는 이미 해외 주요 거래소에 상장돼 있거나, 거래소의 예외 승인을 받은 경우에만 기밀 제출이 가능했지만, 새 제도 도입으로 그 문턱이 크게 낮아졌다고 관계자들은 전했다.
이번 조치는 뉴욕 등 주요 상장 허브와의 경쟁 속에서 홍콩을 중국 기업의 핵심 자금 조달지로 강화하려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뉴욕에서는 여러 해 전부터 비공개 청구가 허용돼 왔다.
로이터는 지난주 “올해 미국 증시에 상장을 추진하는 중국 기업 수가 사상 최대”라고 보도했다. 미·중 관계 악화와 워싱턴의 규제 압박에도 불구하고, 중국 기업들은 여전히 뉴욕행을 노리고 있다.
이에 맞서 홍콩은 중국 기업 유입 덕분에 올해 전 세계 IPO·세컨더리 상장(재상장) 공모 규모에서 뉴욕증권거래소(NYSE)를 제치고 1위를 기록했다는 LSEG 집계가 나왔다.
현재 190건 이상의 신규 상장 예비심사(사전 청구)가 진행 중이며, 이 가운데 45%가 기술, 20%가 헬스케어 분야라고 HKEX는 밝혔다.
또한, 미국 나스닥에 상장된 로보택시 기업 Pony AI와 WeRide가 올 초 홍콩 재상장을 위한 기밀 서류를 제출했다고 사안을 잘 아는 두 명의 소식통이 전했다.
익명을 요구한 소식통들은 “언론과 이야기할 권한이 없다”며 취재원을 밝히지 않았다.
MiniMax·Pony AI·WeRide는 코멘트 요청을 거절했고, Zelos는 답변하지 않았다. 홍콩거래소 역시 비공개 신청 건수나 이번 보도와 관련해 별도 언급을 하지 않았다.
규제·심사 관문과 ‘TECH’ 면제
TECH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 기업도 거래소로부터 비공개 제출 ‘웨이버(면제)’를 받아 상장 서류를 감출 수 있다. 예컨대, 패스트패션 업체 쉬인(Shein)은 지난달 기밀 방식으로 홍콩 상장 서류를 냈다고 두 명의 직·간접 이해관계자가 확인했다.
캐피털 마켓 전문 변호사 진 티오(Jean Thio)는 “R&D 비용이 막대한 바이오 기업 입장에선 경쟁사가 알아서는 안 될 지식재산권(IP) 정보를 보호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상장 초기 단계에서 모든 데이터를 공개하면 기밀 기술이 유출돼 경쟁 우위를 잃을 수 있다는 두려움이 있다”고 덧붙였다.
홍콩 IPO는 통상 예비서류 제출부터 기관투자가 주문집(book) 구축까지 최소 6개월이 걸린다. 낮과 밤이 바뀔 정도로 시장이 급변하는 상황에서 “상장 실패라는 헤드라인을 쓰는 건 어느 기업도 원치 않는다”고, 홍콩 상장을 검토 중인 한 중국 기업 임원은 토로했다.
용어 설명 ※기자 해설
비공개(Confidential) 예심은 기업이 SEC 또는 HKEX 같은 규제기관에 사업 계획·재무제표·위험요인 등을 담은 ‘예비발행설명서(draft prospectus)’를 제출할 때, 일반 투자자가 열람하지 못하도록 하는 절차다. 서류가 완전히 검토돼 정식 본(본심사)에 돌입하기 전까지 기밀로 유지되며, 이는 전략 정보 보호와 일정 조정에 큰 이점을 제공한다.
Technology Enterprises Channel(TECH)은 홍콩 거래소가 첨단 기술기업 유치를 위해 만든 신규 상장 트랙이다. AI·반도체·바이오·첨단제조 등 전략 산업 기업이 실적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도 성장성·혁신성을 기준으로 심사받을 수 있도록 했다.
전문가 시각 記者 View
중국발 기술 탈동조화(디커플링)가 가속화되면서 중국 기업의 자본시장 전략도 다변화하고 있다. 뉴욕행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미국 규제기관의 공시·감사 투명성 강화 요구가 높아지면서 홍콩이 ‘중간 지점’으로 부상했다. 특히 기밀 제출 도입은 홍콩 거래소가 오랜 경쟁 상대인 뉴욕과 나스닥을 견제하기 위한 제도적 혁신이라 평가된다.
다만 실제 상장 성공까지 이어지려면 유동성 부족·투자 심리 악화 등 구조적 과제가 남아 있다. 향후 ‘TECH 트랙’ 내 실적 기준 완화가 밸류에이션 과열로 번질 가능성도 있어, 거래소와 규제당국의 세밀한 모니터링이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