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소득국, 민간 채권자 부채 상환액이 중국보다 3배…복잡해진 채권 구도 드러나

저소득 및 신흥국이 민간 채권자에게 지불하는 대외부채 상환액이 중국에 대한 상환액의 세 배에 달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이는 개발도상국들이 교육·보건·인프라 등 필수 지출과 부채 의무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는 데 얼마나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여실히 드러낸다.

2025년 8월 11일, 로이터 통신(Reuters) 보도에 따르면 국제 NGO Debt Justice UK가 세계은행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2020~2025년 사이 88개 저소득국 및 소규모 도서개도국이 민간 채권자에게 지급한 외화 부채 상환액은 총 3,540억 달러로, 전체 상환액의 39%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중국(공·사적 금융기관 포함)에 대한 상환액 비중은 13%에 그쳤다.

이는 특히 채권구조가 다층화된 개발도상국에게 민간 금융사의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를 부각한다.

Debt Justice의 정책 담당 책임자 팀 존스(Tim Jones)는 “상환 부담이 과도할 경우, 모든 외부 채권자는 자신들이 부과한 금리 수준에 비례해 채무를 탕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연구 세부 결과1에 따르면, 같은 기간 다자개발은행·국제기구 등 멀티랄(multilateral) 채권자에 대한 상환 비중은 34%, 중국을 제외한 양자(bilateral) 정부 간 대출 상환 비중은 14%로 집계됐다. 특히 32개국이 ‘상환 부담 상위 그룹’으로 분류됐는데, 이 중 21개국이 전체 상환액의 30% 이상을 민간 채권자에게 지급했다.

반면 중국계 채권자에 30% 이상을 지불한 국가는 앙골라·카메룬·콩고공화국·지부티·라오스·잠비아 등 6개국뿐이었다. 이는 최근 국제 여론이 ‘중국발 부채 함정’을 과도하게 부각해 온 것과 달리, 실제 고금리 상업성 자금이 더 큰 구조적 위험 요인임을 시사한다.

Debt Justice는 또 멀티랄 기관에 대한 상환액이 2020년 300억 달러에서 2025년 700억 달러로 급증할 것으로 전망했다. 존스 국장은 “2019년 이후 다자기관 대출이 급격히 늘었고, 팬데믹 기간 이를 통해 유동성을 조달한 국가들의 상환 만기가 본격화하고 있다”며, 변동금리 대출은 글로벌 금리 인상기 동안 이자 코스트가 급팽창했다고 설명했다.

부채 재조정 협상 난항

에티오피아는 국채 투자자들과 헤어컷(원금 축소) 여부를 놓고 맞서는 중이며, 가나·잠비아도 일부 민간 채권단과 재협상을 지속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최근 말라위가 아프렉심은행(Afreximbank) 4억3,900만 달러, 무역개발은행(TDB) 4억6,400만 달러 대출을 연체했다고 밝혔다.

용어 설명헤어컷(haircut)은 채무 재조정 과정에서 채권자가 원금 일부를 포기하거나 이자율을 낮추는 방식으로 손실을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멀티랄 채권자란 세계은행, IMF, 아프리카개발은행 등 다자개발금융기관을 가리키며, 금리는 비교적 낮은 편이지만 상환 일정이 경직적일 수 있다.

전문가 분석 및 전망

기존 연구가 중국발 차입 확대에 경고음을 울려 왔던 것과 달리, 이번 데이터는 국채·회사채·상업성 대출민간 자본 시장이 가져오는 고금리 리스크를 재조명한다. 본지 취재에 응한 국내 공공·개발금융학계 관계자들은 “금리 변동에 취약한 구조상, 민간 채권 중심의 부채 포트폴리오는 글로벌 긴축 국면에서 조정 충격이 훨씬 크다”고 입을 모았다.

또한 신흥국의 지불능력 악화는 기후 재원(climate finance) 마련에도 부정적이다. 기후 적응·감축 사업에 필요한 재정 여력을 채무 부담이 잠식해, 인프라·보건·교육 투자가 뒷전으로 밀릴 가능성이 커진다.


기자 의견 국제 채무구조 논의에서는 ‘공정성’이 핵심이다. 채무국이 단기 유동성 위기에 직면했을 때, 고이윤을 추구한 민간 채권자가 먼저 손실을 분담해야 한다는 원칙이 강화돼야 한다. 동시에 다자기관 역시 팬데믹 기간 늘린 지원 자금을 변동금리 구조로 설계했는지, 그리고 이러한 설계가 실제로 상환 리스크를 악화시키지 않았는지에 대한 재평가가 필요하다. 결국 투명한 채권 데이터 공개가 선행돼야만 공정한 부채 조정 메커니즘이 구축될 수 있다.

나아가 국내 금융시장 참여자들은 신흥국 채권 투자 시, 단순 수익률뿐 아니라 부채 지속가능성 지표(Debt Sustainability Indicator)를 정례적으로 점검할 필요가 있다. 이는 글로벌 자본이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흐르고, 부채가 빈곤·불평등을 심화시키지 않도록 하는 최소한의 투자윤리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