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발 — 백악관이 우크라이나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을 알래스카로 초청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알래스카에서는 다음 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간 정상회담이 예정돼 있다.
2025년 8월 9일, NBC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한 미국 고위 관료와 내부 논의에 정통한 세 명의 인사들은 “젤렌스키 대통령 초청 문제가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백악관 고위 관계자는 금요일(현지시간) 러시아 측이 우크라이나 전쟁 휴전을 위한 요구 조건 목록을 미국에 전달했으며, 미국이 우크라이나와 유럽 동맹국들의 동의를 얻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젤렌스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를 배제한 결정은 곧 평화에 반하는 결정“이라며 “그 어떤 것도 성과를 거두지 못할 것”
이라고 토요일 성명을 통해 강조했다.
러시아의 기존 요구 사항에는 푸틴 대통령이 2022년 이후 일방적으로 병합을 선언한 루한스크·도네츠크·자포리자·헤르손 4개 지역과 2014년 무력 합병한 크림반도의 영구 러시아 귀속 그리고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 영구 금지가 포함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영토 스와핑(swap)“이 공식적인 영토 양도를 의미하는지, 아니면 현 점령선 기준 철수를 뜻하는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다. 젤렌스키 대통령과 우크라이나 정부는 러시아가 불법적으로 점령한 어떤 영토도 양보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누차 밝혀 왔다. 아울러 미래 러시아 침공 억제를 위한 안전보장(security guarantees)을 협정 조건에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휴전 협상 주요 쟁점 해설
*휴전(ceasefire)은 교전 쌍방이 일정 기간 공격 행위를 중지하기로 합의하는 조치를 말한다. 법적 효력은 정전협정(armistice)보다 약하고, 평화협정과는 구별된다.
*영구적 중립(permanent neutrality)은 한 국가가 군사동맹에 가입하지 않고, 분쟁 시 중립을 유지하겠다고 국제적으로 공언하는 체제를 뜻한다.
이번 알래스카 회동은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트럼프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이 처음으로 대면하는 자리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에서 가장 치명적인 분쟁으로 꼽히는 해당 전쟁은 2022년 2월 러시아의 전면 침공으로 시작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2020~2024년 1기 집권 당시 “푸틴은 강하고 똑똑한 지도자”라며 친밀감을 과시했다. 그러나 대통령 재선 이후 “24시간 안에 전쟁을 끝내겠다”고 공언했던 기한을 연장하며 푸틴의 미온적 태도에 공개적으로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그는 금요일부터 러시아와 러시아산 수출품을 구매하는 제3국에 대규모 관세 및 제재를 부과하겠다고 위협했지만, 토요일 아침 현재 해당 제재가 실제 발동될지 여부는 불투명하다.
런던 소재 채텀하우스의 피터 왓킨스 연구원은 NBC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근본적 이해관계가 변하지 않았기 때문에 회담에서 중대한 성과가 나올지는 미지수”라면서, “러시아가 추구하는 것은 단순한 영토 확보를 넘어 우크라이나 전체에 대한 영향력“이라고 지적했다.
알래스카는 2021년 3월 조 바이든 행정부와 중국 고위급이 앙커리지에서 회담을 가진 이후, 다시 한 번 외교 안보 이슈의 중심지로 주목받고 있다.
지상전에서는 러시아군이 막대한 인명 피해를 감수하면서도 우크라이나 동부·남부로 느리지만 꾸준히 진격 중이다. 우크라이나 공군사령부에 따르면, 토요일 새벽 러시아는 드론 47기를 발사해 31기가 실제 목표 지점에 명중했다. 특히 헤르손 외곽 교외 지역에서 드론 공격으로 소형 버스가 파괴돼 2명 사망, 6명 부상이 발생했다.
미국 고위 관료와 내부 소식통들은 “젤렌스키 대통령의 알래스카 방문 일정이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며 “가능성은 열려 있다”고 전했다. 다른 관계자는 “모두가 그가 오길 바라고 있다”고 덧붙였다.
백악관은 젤렌스키 초청 여부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두 정상과의 삼자 정상회담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으나, 현재로서는 푸틴 대통령이 요청한 양자 회담 준비에 집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논평 요청에 답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8월 15일 알래스카에서 푸틴 대통령을 만나 휴전을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백악관은 당초 푸틴-젤렌스키 대면을 트럼프-푸틴 정상회담의 선결 조건으로 내세웠으나, 트럼프 대통령은 나중에 “그것은 전제 조건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소식통에 따르면 젤렌스키 대통령이 알래스카를 방문하더라도 푸틴 대통령과 같은 공간에 머물게 될지는 불투명하다. 이는 러시아 측이 젤렌스키 배석을 꺼릴 가능성을 시사한다.
외교전이 가속화되는 배경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특사 스티브 위트코프가 모스크바에서 푸틴 대통령을 만나 금요일까지 휴전 합의를 촉구한 사실이 있다.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영토 대량 유지 조건을 담아 전쟁 종식 윤곽을 제시했지만, 젤렌스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인은 침략자에게 땅을 내주지 않을 것“이라며 강경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금요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에 영토 일부 교환으로 양측이 더 나은 결과를 얻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토요일 현재 미국 행정부는 우크라이나 및 유럽 지도자들로부터 휴전안 지지 확보를 시도 중이다.
전문가 시각과 향후 전망
정치외교 전문가들은 이번 알래스카 회담을 통해 전쟁 장기화 피로감이 팽배한 국제사회가 휴전을 향한 물꼬를 틀 가능성을 주목하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의 최소 요구치와 우크라이나의 영토 보전 원칙 사이 간극이 커, 회담 결과가 부분적 진전에 그칠 것이라는 관측도 만만치 않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내년 미국 대선을 앞두고 외교적 성과를 과시하려는 정치적 동기가 있다. 반면 푸틴 대통령은 자국 내 결집 효과를 노리며 광범위한 영토 이양을 협상 초입부터 기정사실화하려는 전략을 구사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결국 이번 정상회담은 전쟁 종식의 결정적 분수령이 되기보다는, 추후 국제 다자외교와 에너지·안보 지형을 규정할 현재 위치 파악 성격이 짙다. 한국을 포함한 중견국 외교에서도 에너지 공급망, 군수‧재건 사업 참여 기회를 가늠하는 척도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알래스카발(發) 이슈가 향후 글로벌 경제·안보 지형에 미칠 파장은 적지 않을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