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시장 진단] 미국 주택시장이 중립 기어에 걸린 듯 멈춰 서 있다. 기존주택 판매가 제자리걸음을 하는 동시에 신규 주택 착공은 급격히 둔화되고 있다. 그 결과 젊은 세대와 중·저소득층 가구는 첫 주택 구입을 미루거나 포기하고 있으며, 전반적인 주택 구매 여력(affordability)은 사상 최악 수준에 근접했다.
2025년 8월 9일, 인베스팅닷컴의 보도에 따르면 워싱턴 정가 역시 손을 놓고 있지는 않다. 약 10여 년 만에 최대 규모의 연방 주택 정책 패키지로 평가받는 ‘ROAD to Housing Act’가 의회를 통과할 조짐을 보이면서, 공급 부족으로 인한 가격 경직성을 완화할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야데니리서치(Yardeni Research)는 최근 보고서에서 “추가적인 저렴한 주택 공급이 시장의 균형을 되찾는 열쇠가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야데니리서치는 “가계 재무 건전성은 양호하지만 주택 부담 능력(affordability)은 잘못된 방식으로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2030세대와 중·저소득층 잠재 구매자가 적극적으로 시장에 진입하지 못하고 있고, 새로운 가구 형성(new household formation) 역시 정체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 자산은 늘었지만 구매는 멈췄다
올해 1분기 기준 미국 가계 순자산은 169조3,000억 달러로 집계됐다. 이는 주택 가격 상승과 주식시장 강세가 동시에 작용한 결과다. 가처분소득 역시 고점 부근을 유지하고 있으며, 모기지·주택담보대출(HELOC·Home Equity Line of Credit) 연체율은 다른 대출 유형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다.
그러나 이처럼 ‘기초체력’이 양호함에도 불구하고, 실제 구매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 기존주택 계약지수(Pending Existing Home Sales Index)는 횡보 중이고, 신규주택시장지수(New Housing Market Index)는 하락세다. 전문가들은 “모기지 금리 인하 혹은 주택 가격 조정, 이상적인 경우 두 가지 요인이 동시 작용해야 매수 심리가 회복될 것”이라고 내다본다.
■ ‘주택 부담 비율’ 30% 초과 가구 2,030만… 임차인은 더 심각
약 2,030만 가구(전체 주택 소유 가구의 24%)가 주택·공공요금 지출로 소득의 30% 이상을 쓰는 ‘비용 부담(cost burdened)’ 상태다. 특히 임차 가구의 절반가량이 이 기준을 넘어서며 새로운 기록을 세웠다.
6월 기준 기존 단독주택 중위가격은 41만5,000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같은 기간 30년 만기 고정금리 모기지는 6.7% 수준으로, 팬데믹 초기의 초저금리 국면과 비교하면 배 이상 높다. 하버드대 주택연구센터(Harvard JCHS)의 다니엘 매큐(Daniel McCue)는 “한때 접근 가능하던 대도시에서 이제는 중산층까지 주택·임대 모두 진입 장벽에 부딪히고 있다”고 평가했다.
■ 매도자는 ‘울트라 저금리’ 포기 못 해… 재고 부족 고착화
잠재적 판매자 상당수는 과거에 확보한 초저금리 모기지를 지키기 위해 매물을 내놓지 않고 있다. 기존주택 재고는 140만 채로 소폭 늘었지만, 팬데믹 이전 평균을 여전히 크게 밑돈다.
연율 기준 기존주택 판매는 6월 390만 건으로 2009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에 머물렀다. 공급 부족과 고금리가 맞물리며 거래 절벽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 건설사도 ‘급브레이크’… 비용 상승·수요 부진 이중고
공급 측 응답 역시 늦어지고 있다. 6월 신규주택 재고는 약 10개월 분량으로 늘어났지만, 이는 판매 둔화로 인한 상대적 과잉을 의미한다. 신규주택 판매는 전년 대비 6.6% 감소했고, 현장 방문객(buyer traffic)도 부진한 흐름이다.
건설사들은 노동력 부족, 자재비 상승, 관세 부담 등 마진 압박을 이유로 착공을 줄이고 있다. 결과적으로 신규 주택 착공(Starts)은 전년 대비 0.5% 감소, 단독주택만 보면 최근 12개월 저점까지 밀렸다.
■ 2030세대 ‘출구 봉쇄’… 가구 형성 자체가 둔화
센서스국 자료에 따르면 25~34세 인구의 30.2%가 여전히 부모와 동거 중이다. 결혼·출산·독립 등 ‘가구 형성’을 촉발하는 이벤트가 지연되면서 주택 수요가 추가로 억제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 ROAD to Housing Act — ‘주택판 칩스법’ 될까?
10년 넘게 본격적인 연방 차원의 주택 개혁이 없었던 가운데, 초당적 지지를 받은 ROAD to Housing Act가 상원을 만장일치로 통과했다. 이 법안은 용적률·토지이용 규제 완화 등 조닝(Zoning) 개혁과 모듈러 주택(modular housing) 확대를 위한 인센티브를 담고 있다.
블룸버그는 “현재 교착 상태에 빠진 매수자와 건설사 모두에게 ‘한 줄기 빛’이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 용어 풀이 ① HELOC: 주택 순자산을 담보로 한 대출 한도로서, 신용카드처럼 자유롭게 인출·상환이 가능하다.
※ 용어 풀이 ② Pending Home Sales Index: 계약은 체결됐지만 완결되지 않은 기존주택 구매 건수를 지수화, 향후 1~2개월 뒤 실제 거래량을 예측하는 선행 지표다.
※ 용어 풀이 ③ Modular Housing: 공장에서 제작한 주택 모듈을 현장에서 조립하는 방식으로, 전통적 건설보다 시간·비용 효율이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 전망 및 분석
전문가들은 단기적으로 모기지 금리가 5%대 초·중반까지 내려오지 않는 한 수요 회복은 제한적일 것으로 본다. 다만 ROAD to Housing Act가 하위 규정 마련과 주·지방 정부의 협조를 전제로 순조롭게 시행될 경우, 최소 12~18개월 이후부터는 저가·중가 주택 공급이 확대돼 거래량 회복의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결국 공급 확대와 금리 안정이 맞물려야만 시장 정상화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연방정부·연준·건설업계·지방자치단체 간 ‘4자 협력’이 최대 변수로 부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