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한 경제 속 ‘트리트노믹스’ 열풍… 립스틱에서 테일러 스위프트 콘서트까지

소비자 심리를 해석하는 새로운 키워드 ‘트리트노믹스(Treatonomics)’가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는 일상에서 즐기는 작은 사치부터 고가의 ‘한 번뿐인 경험’까지 포괄하는 소비 트렌드로, 불안정한 거시경제 환경 속에서도 급성장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2025년 8월 9일, CNBC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인플레이션, 고금리, 경기 둔화 우려가 지속되는 상황에서도 소비자들은 기분 전환을 위해 립스틱·향수·캔들 같은 ‘소액 보상 소비’에 지갑을 열고 있다. 심지어 고가의 한정판 장난감인 라부부(Labubu) 인형이나 유명 가수 테일러 스위프트 콘서트 티켓(한 장에 200달러 이상)에 돈을 아끼지 않는 현상이 확인된다.

이러한 경향은 경기 침체기에도 꿋꿋이 살아남는 전통적 현상 ‘립스틱 효과(Lipstick Effect)’의 확장판으로 평가된다. 립스틱 효과는 1930년대 대공황 당시 처음 포착됐고, 2001년 9·11 테러 이후 에스티 로더의 레너드 로더 전 회장이 재조명하면서 학계·산업계에 널리 알려졌다.


‘작은 사치’에서 ‘큰 경험’으로: 진화한 트리트노믹스

영국 투자은행 필 헌트(Peel Hunt)의 애널리스트 존 스티븐슨은 “경제적 압박을 받을 때 사람들은 새 옷이나 가구를 살 여력이 없지만, 값비싼 립스틱이나 쿠션, 테이블보 등은 구매할 수 있다”며 “홈웨어 카테고리가 생각보다 탄탄한 이유”라고 설명했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삶의 의미와 웰빙에 대한 재평가를 촉발하며 트리트노믹스 확산에 불을 지폈다. 소비자들은 생필품 지출을 줄이고 저가 PB(자사 상표) 제품으로 대체하면서도, 오아시스(Oasis) 재결합 투어 같은 일생일대의 공연에는 주말 동안 500~1000파운드(약 66만~133만 원)를 과감히 쓰는 이른바 ‘스플러지(한탕) 소비’를 감행한다.


왜 지금 ‘트리트노믹스’인가?

시장조사업체 칸타(Kantar)메러디스 스미스 국장은 “Z세대가 틱톡에서 부르는 ‘리틀 트리트 컬처(Little Treat Culture)’는 죄책감 없는 즐거움을 일상 속에 주입하려는 움직임”이라며 “립스틱 효과의 업그레이드판“이라고 진단했다.

“전통적 인생 이정표(결혼·주택 구입·승진·은퇴)가 희미해지면서 사람들은 ‘마일스톤’ 대신 ‘인치스톤(작은 단계)’을 축하한다.” – 메러디스 스미스, 칸타

스미스에 따르면 집을 사기 어려운 40세 미만 세대는 인테리어 소품을 구입해 자신만의 공간을 꾸미며 자존감을 높인다. 결혼이나 출산을 경험하지 않은 이들은 이별 파티·반려견 생일·웰빙 루틴 같은 새로운 이벤트에 돈과 에너지를 쏟는다. 최근 중국의 ‘퇴사 파티’, 미국·유럽의 ‘이혼 파티’처럼 비전통적 기념 행사가 확산되는 이유다.

또한 MZ세대는 ‘키덜팅(Kidulting)’—어른이 누리는 어린 시절 놀이—에 열광하며, 레고(LEGO)의 성인용 라인에 최대 1000달러를 지출하기도 한다.


소비자심리 지수와 ‘불확실성의 시대’

영국 GfK 소비자신뢰지수는 2025년 7월 -19를 기록해 전월 대비 1포인트 하락했다. 미국 컨퍼런스보드(Conference Board) 소비자신뢰지수는 같은 달 소폭 개선됐지만, 여전히 지난해 수준에는 못 미친다. 경제 불안 심리가 해소되지 않으면서,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즉각적 만족을 주는 트리트노믹스 소비가 유지된다는 해석이 나온다.

칸타가 집계한 글로벌 경제정책 불확실성 지수는 현시대를 지난 40년 중 가장 높은 ‘대불확실성(Great Uncertainty)’ 시기로 규정했다. 칸타는 “변동성과 불확실성은 최소 향후 5~8년간 계속될 것”이라며 “트리트노믹스는 앞으로 3~5년은 더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전문가 해설: 한국 시장에 주는 시사점

한국 소비자 역시 높은 물가와 주거 비용에 시달리며 ‘작은 행복’을 추구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최근 편의점 한정판 스위츠, 명품 브랜드의 미니 사이즈 향수, K-팝 기획사의 팬미팅 패키지 판매 호조가 대표적이다. 트리트노믹스가 장기화할 경우, 국내 리테일·콘텐츠 업계는 가격 접근성과 차별화된 경험을 동시에 제공하는 상품 전략이 관건이 될 전망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마이크로 세분화된 욕구’를 실시간 파악해 제품 라인을 빠르게 조정할 수 있는 애자일(Agile) 운영이 핵심 경쟁력이 된다. 예컨대, 화장품 브랜드는 1만 원대 미니 립스틱과 10만 원대 컬렉터블 한정판을 동시에 론칭해 다양한 소비 심리를 자극할 수 있다.

한편 학계에서는 트리트노믹스를 ‘행동경제학 관점의 자연 실험’으로 보고, 소득·심리 요인이 결합한 소비 패턴 변화를 연구 중이다. 이는 정책 당국이 가계부채, 소비세율 조정 등 거시 정책을 설계할 때도 참고 지표가 될 수 있다.


용어 풀이

립스틱 효과: 경기 침체 시 고가 내구재 대신 저렴한 사치재(립스틱 등) 판매가 늘어나는 현상. 2001년 레너드 로더 발언 이후 대중화.

키덜팅: Kid(어린이)+Adult(성인)의 합성어로, 성인이 어린 시절 놀이·취미를 재현하며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소비 행동.

트리트노믹스: Treat(보상/간식)+Economics의 합성어. 일상의 작은 사치 소비부터 고가 경험 소비까지 포괄하는 경제·문화 현상.


결론 및 전망

불확실성의 터널이 길어질수록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찾는 소비는 더욱 다양하고 세분화될 것이다. 브랜드에는 위기 속 기회, 투자자에게는 비필수 소비재·엔터테인먼트 섹터의 잠재 성장성, 정책 입안자에게는 취약 계층 보호와 소비 촉진의 균형이라는 과제가 주어졌다. 트리트노믹스가 단순 유행인지, 새로운 ‘뉴노멀’ 소비 구조로 안착할지는 앞으로 3~5년간의 거시경제 흐름과 밀접히 연결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