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석 칼럼 — 기후위기는 더 이상 환경 이슈를 넘어 금융·거시경제 시스템의 내구성을 시험하는 단계로 진입했다. 독일계 재보험사 알리안츠, 스위스 보험그룹 취리히, 뮌헨재보험 등이 잇달아 “머지않아 북미 일부 지역이 사실상 보험에 가입할 수 없는 지대로 바뀔 것”이라고 경고한 것은 단순 수사(修辭)가 아니다. ‘보험 불가(uninsurable) 현상’이 현실화될 경우 미국 주택·채권·지방재정·은행권의 복합 스트레스는 최소 10년 이상 누적될 전망이다.
1. 통계로 본 ‘보호 공백(Protection Gap)’
• 2024년 자연재해로 인한 전 세계 경제 손실은 3,800억 달러.
• 보험으로 보전된 금액은 약 1,350억 달러(커버율 35%).
• 미국 단일국 손실은 1,760억 달러로 집계됐는데, 보험 커버 비율은 42%에 그쳤다.
자료: Swiss Re Institute, 2025 재난연보
위 수치는 ‘보호 공백’이 매해 확대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 인플레이션을 반영한 연평균 보험손실 증가율 5.9%는 같은 기간 명목 GDP 성장률(2.7%)을 두 배 이상 웃돈다. 위험이 경제 성장 속도를 앞질러 달리고 있다는 뜻이다.
2. 왜 보험사가 떠나는가
① 리스크 모델 디스카운트
기존 카타스트로피(cat) 모델은 30~50년 과거 데이터를 기반으로 손실 확률을 계산한다. 그러나 2020년 이후 ‘백 시그너(Black Sig na)’급 이상고(異常高) 기후 사건이 매년 발생하며 히스토리컬 프레임 자체가 무력화됐다.
② 자본비용 급등
연준·ECB의 긴축 사이클이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보험사는 재보험·채권 발행 비용이 동시에 뛰는 이중 압박을 받는다.
③ 정책·규제 리스크
주(州) 정부는 주택담보대출·소상공인 대출 확대를 위해 보험료 상한선을 설정해 왔다. 가격 전가가 막히자 캘리포니아·플로리다·루이지애나 대형 보험사는 사업권 자체를 반납하고 철수하는 길을 택했다.
3. ‘보험 불가’가 경제에 미칠 파급
3-1 주택·모기지 시장
미 모기지은행협회(MBA)에 따르면 주택담보대출 잔액 13조 달러 가운데 약 9%가량이 고위험 기후벨트(걸프 연안·서부 산불지대) 내 부동산이다. 보험 부재—혹은 보험료 폭등—는 LTV(Loan-to-Value) 비율을 순식간에 악화시켜 대출자·은행 모두 실질 담보가치 하락을 경험하게 된다.
3-2 지방정부 재정
보험사가 떠난 공백은 결국 FEMA·지방채권으로 메워진다. 이미 2024년 플로리다 Citizens Property Insurance Corp. 적립금 부족분 60억 달러는 주정부 일반회계에서 충당됐다. 지방채 스프레드는 같은 해 45bp → 67bp(AAA 대비)로 벌어졌다.
3-3 은행·보험 연계 충격
캘리포니아 산불 피해 지역에 대출 포트폴리오 익스포저가 컸던 Bank of the West는 2024년 Tier1 자본비율이 150bp 급락했다. 보험회사가 위험을 옮겨 주지 못하면 은행권 대손충당금·리스크 가중자산(RWA)이 폭증, Basel Ⅲ Endgame 체제와 충돌할 수 있다.
4. 자본시장의 대응: CAT 본드 붐과 한계
CAT 본드 발행 잔액은 2020년 230억 달러 → 2025년 400억 달러로 75% 증가했다. 하지만 ① 리스크 편중(北美 허리케인 · 산불 사건 집중), ② 유동성 위험, ③ 트리거 불확실성 탓에 실질 보호 효과에는 한계가 존재한다.
5. 시나리오별 장기 전망
구분 | 핵심 변수 | 거시·시장 영향 |
---|---|---|
Baseline ( 온난화 +2.0℃ 억제 ) | • 탄소가격 톤당 75달러 • 보험료 연 +4% 상승 |
• 모기지 시장 연착륙 • 지방채 스프레드 +20bp 안착 |
High Risk ( +3.0℃ → 보험 불가 지역 10% ) | • CAT 손실 연 5,000억 달러 • 보험커버율 25%로 하락 |
• 미 주택가격 실질 -12% • 지방채 연쇄 신용등급 강등 |
Disorderly Transition | • 급격한 기후세·탄소국경조정 도입 • 재생에너지 CAPEX 급등 |
• 단기 인플레 +1.3%p • 보험사는 투자수익률 ↑ but 언더라이팅 손실 지속 |
6. 투자전략 & 정책 제언
6-1 투자자
- 보험섹터 내 핀포인트 : 전통 P&C→모델링 솔루션·데이터브로커로 피벗한 Verisk Analytics, Duck Creek 등은 장기 수혜.
- 그린 인프라 채권 : 주(州) 그린본드 캐시플로는 연방 매칭펀드가 붙어 보험 불가 리스크를 상대적으로 완충.
- 리츠(REITs)·MBS 스크리닝 : 보험료 × GDP 대비 ≥ 6% 지역(루이지애나·플로리다 Panhandle)은 포트폴리오 비중 축소.
6-2 정책 당국
- 연방 ‘보험 유동성 기금(ILF)’ 설립: FHA·FDIC 방식으로 CAT 시즌 손실을 탄력 보전.
- 탄소 회피 조치를 포함한 가격책정 모델 R&D : 보험업계 — 국토안보부 — 연준이 공동 출자.
- 기후 적응 인프라 채권 20년물 발행 통해 지방 CAPEX 선투입.
7. 결론: ‘보이지 않는 안전망’이 찢어질 때
보험은 시장경제의 윤활유다. 리스크를 가격에 녹여 경제활동을 가능케 하는 사회적 안전망이지만, 기후변화는 이 안전망의 스티치(바늘땀)를 서서히 뜯어내고 있다. 보험 불가 지대가 확산되면 금융기관·지방정부·가계 모두 리스크를 직접 떠안는 구조로 전환될 수밖에 없다.
지금은 ‘손실을 누가 부담할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다. 리스크 총량이 실물경제와 자산시장 전체를 압도할 수 있느냐의 문제다. 기후 적응·탄소 감축이 늦어질수록 경제의 체력은 착실히 소진된다. 보험업계의 경고는 결국 시장과 정책 모두에게 던지는 조기경보 시스템이다. 귀를 닫을지, 방향타를 고칠지는 이제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 2025 이중석 / 미국경제 칼럼니스트·데이터분석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