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내부에서 기조 변화가 포착되고 있다. 최근 연준 고위 인사들이 잇따라 노동시장 위험을 강조하며 9월 금리 인하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올해 내내 금리 인하를 압박해 온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반가운 소식이지만, 그 배경에 깔린 노동시장 약화 신호는 그가 주장해 온 ‘견고한 고용’ 담론과 배치된다.
2025년 8월 8일(현지시간), 로이터 통신 보도에 따르면, 지난 7월 연준이 기준금리를 연 4.25∼4.50%로 동결한 직후 일부 위원들은 즉각 우려를 표시했다. 특히 크리스토퍼 월러(Christopher Waller) 이사와 미셸 보우먼(Michelle Bowman) 부의장통화정책 담당은 노동시장 둔화를 이유로 동결 결정에 반대 의견을 냈다. 당시 의결은 9대 2로 동결이 채택됐지만, 다수 의견서에는 ‘고용 여건이 견고하다’는 표현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불과 며칠 뒤 발표된 고용지표는 상황을 뒤바꿨다. 5·6월 비농업 고용은 대폭 하향 조정돼 경기침체 수준으로 축소됐고, 7월 신규 고용도 시장 예상치를 크게 밑돌았다. 실업률은 4.2%로 소폭 상승했다. 이에 대해 리사 쿡(Lisa Cook) 연준 이사는 “우려스러운(recessionary) 조정”이라며 비둘기적 목소리를 높였다.
애틀랜타 연은의 라파엘 보스틱(Raphael Bostic) 총재 역시 “고용 측면의 위험이 한층 높아졌다. 데이터를 예의주시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여전히 2025년에 한 차례 정도의 인하가 적절하다는 입장이지만, 이번 지표가 ‘전체 그림’을 바꾸지는 않았다는 매파(More hawkish) 위원도 존재한다.
“책임은 이중적(mandate)이다. 양쪽 모두 위험이 존재할 때는 균형 잡힌 접근이 필요하다.” — 알베르토 무살렘 세인트루이스 연은 총재
무살렘 총재는 그간 ‘물가 안정 우선’을 강조해 왔으나, 이날 발언은 고용도 동일한 수준으로 고려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프란시스코 연은의 메리 데일리(Mary Daly) 총재도 “7월 결정은 타당하지만 동일 결정을 반복하기는 갈수록 불편해진다”고 토로했다.
향후 관전 포인트
다음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는 9월 16~17일 열린다. 그 사이 소비자물가지수(CPI)가 공개돼 새로운 관점을 제공할 예정이다. 시장에선 트럼프 행정부의 대중(對中) 관세 인상이 지속적 인플레이션을 유발할지, 일시적 충격에 그칠지가 최대 관건으로 꼽힌다.
금융시장은 이미 연말까지 최소 0.50%p 인하를 반영하고 있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선물 시장 기반 확률 지표에서는 50bp 인하 가능성이 과반을 웃돌고 있다.
전문가 시각과 용어 설명
연준 위원을 두고 흔히 ‘비둘기파(dove)’와 ‘매파(hawk)’라는 표현을 쓴다. 비둘기파는 경기 둔화와 고용 부진을 중시해 완화적 통화정책, 즉 금리 인하에 우호적이다. 반면 매파는 인플레이션 억제를 최우선으로 삼아 금리 인상·동결에 무게를 둔다.
연준의 이중책무(dual mandate)는 물가 안정과 완전 고용 달성을 뜻한다. 따라서 양쪽 지표가 상충할 때는 ‘균형적 접근’이 필수적이다.
이번 고용지표 하향 조정은 경기 사이클의 단순 조정인지, 보다 심각한 침체 신호인지를 두고 논쟁이 뜨겁다. 일부 이코노미스트는 제조업과 물류업 부진이 서비스 업종으로 번지는 것을 경고한다. 반면 일시적 데이터 왜곡 가능성을 지적하는 진영도 존재한다.
정치적 파장도 만만치 않다. 트럼프 대통령은 연초부터 “연준이 고의로 경기 회복을 억제한다”며 ‘금리 인하’를 공개 요구해 왔다. 금리 인하가 현실화될 경우, 그는 이를 자신의 경제정책 성과로 내세울 여지가 크다. 그러나 ‘조작됐다(rigged)’고 비판해 온 노동시장 통계가 약세를 보인다면, 그의 ‘호황 담론’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점에서 딜레마다.
결론적으로, 9월 FOMC 전까지 발표될 경기 선행지표, 소비자·생산자물가, 임금 인상률 등을 통해 매파·비둘기파 간 힘겨루기가 다시 달궈질 전망이다. 현 시점에서 연준의 공식적 컨센서스는 ‘인내(patience)’지만, 노동시장 불안이 심화될 경우 비둘기파 우위로 금리가 조기 인하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