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완성차 업계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제안한 반도체 수입 관세 100% 부과 방침의 여파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업계 전반에서는 자동차에 사용되는 칩에 이중으로 관세가 적용될지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2025년 8월 8일, 인베스팅닷컴의 보도에 따르면, 기존에 중첩 적용을 피하기 위해 도입된 일부 면제조항이 자동차용 반도체에도 적용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지만, 아직 세부 지침이 불투명해 혼선이 가중되고 있다.
바클레이즈 애널리스트들은 현행 관세·비관세 장벽 속에서 자동차 제조사가 일정 부분 보호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면서도, 관세 당국이 자동차용 반도체를 일반 전자부품으로 분류할지, 아니면 자동차 부품으로 분류할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번 정책 초안은 미국 외 지역에서 생산된 반도체에 대해 최대 100%의 징벌적 관세를 부과하는 동시에, 미국 내에서 칩을 제조하는 기업에는 예외를 허용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는 과거 차량 및 부품에 25% 관세를 부과했던 조치의 연장선으로, 최종 세부 규정은 아직 발표되지 않았다.
앞서 정부는 4월 발표를 통해, 자동차 관세가 이미 부과된 제품에는 철강·알루미늄 등 다른 원자재 관세를 중복 부과하지 않겠다고 명시했다. 업계는 이러한 ‘non-stacking’ 원칙이 완성차나 모듈에 내장된 반도체에도 그대로 적용될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그러나 모든 것은 관세청이 자동차용 반도체를 어떻게 HS 코드(국제통일상품분류)를 부여하느냐에 달려 있다. 해당 칩을 별도의 전자 부품으로 간주하면 100% 관세 대상이 되지만, 자동차 부품으로 인식하면 기존 25% 관세로 제한된다. 이는 공급망 구조와 최종 소비자 가격에 중대한 파급효과를 낳을 수 있다.
대다수 완성차 업체는 반도체를 직접 구매하지 않고 티어1(tier-one) 공급업체를 통해 모듈화된 전장 부품을 들여온다. 티어1은 완성차 기업과 1차로 거래하는 대형 부품사를 뜻하며, 전장·샤시·안전 시스템을 통합 공급한다. 이 경우 반도체가 ‘묶음 상품’으로 간주돼 25% 관세선에서 방어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업계 중론이다.
한편 텍사스 인스트루먼트(NASDAQ:TXN), NXP(NASDAQ:NXPI), 아날로그 디바이시스(NASDAQ:ADI)처럼 미국 내 생산시설을 보유한 기업은 새 관세에서 상당 부분 면제될 것으로 관측된다. 삼성전자(KS:005930)와 TSMC 역시 기존 또는 계획 중인 미국 공장을 근거로 관세 회피 가능성을 시사했다.
최종 관세 부담이 완성차 제조사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수 있으나, 칩 비중이 높은 부품을 해외에서 들여오는 2·3차 협력사는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 공급망 상단에서 발생한 비용은 결국 하단으로 전가돼 차량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란 우려도 제기된다.
전동화·자율주행 전환이 가속화되면서, 전력 구동계·ADAS(첨단 운전자 지원 시스템)·인포테인먼트 등 차량 전반이 반도체 의존도를 높이고 있다. 자동차 산업은 이제 반도체 규제의 직·간접적 영향을 필연적으로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업계 관계자는 “정책의 윤곽이 뚜렷해질 때까지 신규 발주 및 부품 재고 전략을 함부로 조정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관세의 안개(tariff fog)’라는 표현은 정책 불확실성이 시장 참여자의 의사 결정에 혼란을 주는 상황을 지칭하는 업계 용어다.
기자 해설* 글로벌 공급망이 교차하는 자동차·반도체 분야에서 100% 관세는 사실상 조달 구조의 재편을 요구하는 신호탄으로 읽힌다. 국내외 완성차 회사들은 향후 2~3년 안에 북미 현지 칩 생산·패키징 라인을 확보하지 못하면 가격 경쟁력에서 불리해질 전망이다. 동시에 바이든 행정부가 추진해온 반도체 보조금 정책과 트럼프 캠프의 고율 관세 기조가 정책 혼합(mix)을 이루면서 기업의 투자 의사결정이 한층 복잡해질 수 있다.
결국 관세율보다 중요한 것은 분류 체계와 면제 범위다. 업계는 향후 90일 이내에 관세청이 발표할 세부 지침을 기다리며, 대응 시나리오별 비용 분석 작업을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