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슬라 칩·도조 슈퍼컴퓨터 개발 책임자 피트 배넌, 전격 퇴사

미국 전기차 기업 테슬라(Tesla)하드웨어 설계 엔지니어링 부문 부사장이자 도조(Dojo) 슈퍼컴퓨터 개발 총괄이었던 피트 배넌(Pete Bannon)이 회사를 떠난다.

2025년 8월 7일(현지시간), CNBC 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배넌 부사장은 2016년 애플(Apple)에서 테슬라로 영입된 뒤 칩 기술과 슈퍼컴퓨터 개발을 이끌어 왔으나 최근 사임 의사를 표명했다. 그동안 배넌은 일론 머스크(Elon Musk) 최고경영자에게 직접 보고해 왔으며, 이번 퇴사와 동시에 그의 팀도 사실상 해체돼 엔지니어들은 다른 프로젝트로 재배치된 것으로 전해졌다.

테슬라는 이번 인사와 관련해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블룸버그 통신이 최초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머스크 CEO가 직접 도조 팀의 해산을 지시했으며, 이는 회사의 인공지능(AI) 전략에 적지 않은 파장을 미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Tesla Diner Image ▲ 테슬라가 최근 로스앤젤레스에 선보인 체험형 다이너 전경

머스크는 지난해 초부터 주주들에게 “테슬라는 단순 전기차 회사가 아니라 AI·로봇 공학 중심 기업으로 변모할 것”이라고 강조해 왔다. 이를 위한 핵심 축 가운데 하나가 바로 도조 슈퍼컴퓨터였다. 도조는 차량 센서가 수집한 대용량 영상·주행 데이터를 기반으로 AI 학습(트레이닝) 속도를 획기적으로 높이기 위해 특별 설계된 시스템이다.

테슬라는 도조 외에도 코텍스(Cortex)라 불리는 별도 컴퓨팅 클러스터를 운용해 첨단 운전자 보조 시스템(ADAS) 성능을 높여 왔다. 이들 프로젝트는 머스크가 공언한 ‘로보택시(robotaxi)’ 사업, 즉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만으로 기존 테슬라 차량을 완전 자율주행 택시로 전환하겠다는 비전을 실현하기 위한 기반으로 평가된다.

“가장 최신 버전의 도조 시스템은 내년 중 연산 규모가 H-100 GPU 10만 개 수준에 도달할 것” — 일론 머스크, 2025년 7월 실적발표 컨퍼런스콜 중

여기서 H-100은 엔비디아(Nvidia)의 차세대 AI 전용 칩으로, 고성능·고효율을 동시에 구현해 업계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는 점에서 ‘H-100 상당(equivalent)’이란 표현은 슈퍼컴퓨터 성능을 가늠하는 지표로 쓰인다.

테슬라는 또 다른 칩 독립 전략도 병행한다. 최근 삼성전자와 165억 달러(약 22조 원) 규모의 계약을 체결해 자체 설계한 A16 칩 생산 물량을 미국 내에서 확대하기로 했다. 이는 공급망 다변화와 AI 전용 하드웨어 내재화 전략의 일환이다.


용어 해설: 도조(Dojo)와 AGI

도조는 일본 무술 도장에서 따온 이름으로, ‘AI를 단련하는 훈련장’이라는 의미를 담았다. 테슬라 엔지니어들은 GPU 대신 맞춤형 ASIC(Application-Specific Integrated Circuit) 기반 시스템을 채택해 연산 효율을 높였다고 설명한다. 반면 AGI(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는 특정 작업이 아닌 인간 수준의 범용 지능을 뜻하는 용어로, 머스크가 새로 설립한 xAI가 추구하는 방향이다.

현재 테슬라는 텍사스 오스틴에서 ‘테스트 로보택시’ 서비스를,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에서는 드라이버 동승형 호출 서비스를 한정 운영하고 있다. 오스틴 시범 서비스는 조수석에 안전 요원이 탑승해 돌발 상황에 대비하며, 샌프란시스코 서비스는 전 과정에 사람이 운전하지만 이용자들은 ‘Tesla Robotaxi’ 앱으로 차량을 호출할 수 있다.

지난 7월 실적발표 자리에서 머스크는 테슬라와 xAI가 인재 확보 측면에서 ‘경쟁 관계’라는 지적에 대해 “서로 다른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고 답했다. 그는 “xAI는 테라바이트(TB)~멀티 테라바이트 규모 모델을 다루지만, 테슬라는 100배 작은 모델을 활용해 실세계 AI(real-world AI)에 집중한다”고 설명했다.

머스크는 일부 엔지니어들이 “AGI 연구를 하고 싶다”는 이유로 테슬라 합류를 주저했다고 밝히며, 그것이 xAI를 따로 설립한 배경임을 시사했다.


잇단 핵심 인재 이탈…테슬라 AI·로봇 로드맵 ‘경고등’

올해 들어 테슬라는 대규모 구조조정과 자진 사임이 연이어 발생해 인력 유출 부담이 커지고 있다. 최적화 로봇 ‘옵티머스(Optimus)’ 엔지니어링 총책이던 밀란 코바치(Milan Kovac), 소프트웨어 부사장 데이비드 라우(David Lau), 머스크의 전 비서실장이던 오미드 애프샤르(Omead Afshar) 등이 잇따라 회사를 떠났다.

배넌의 퇴사는 그중에서도 상징성이 크다. 그가 추진한 맞춤형 칩과 슈퍼컴퓨팅 아키텍처는 테슬라가 외부 칩 공급 의존도를 낮추면서 자율주행 기술 우위를 확보하는 핵심 성장 동력이었기 때문이다.

시장 전문가들은 “머스크가 AI·로봇 비전을 유지하려면 핵심 인재를 결집할 새로운 인센티브 체계와 실질적 진척을 곧 보여줘야 할 것”이라며 “도조 해체가 로보택시 시간표를 지연시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전망한다.

다만, 텔사는 여전히 막대한 주행 데이터와 대규모 하드웨어 투자를 기반으로 완전 자율주행(FSD) 상용화를 지속 추진 중이다. 실제 FSD 베타 소프트웨어의 글로벌 누적 주행 거리가 5억 마일을 넘어서는 등 데이터 장벽은 여타 경쟁사 대비 확실한 우위 요인으로 꼽힌다.


전문가 시각과 향후 과제

본지 취재진이 접촉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수년간 막대한 자본과 인력을 투입한 도조 프로젝트가 변곡점을 맞은 만큼, 테슬라는 상·하위 계층 하드웨어 로드맵을 전면 재검토할 것”이라며 “삼성과의 대규모 칩 위탁생산 계약이 이 같은 공백을 메우는 ‘플랜 B’ 성격일 가능성이 높다”고 해석했다.

또 다른 AI 연구원은 “AGI와 실세계 AI는 요구되는 데이터·연산 구조가 다르다”면서 “xAI와 테슬라가 명확한 역할 분담을 못 하면 핵심 인재가 어느 한쪽으로 쏠리는 이탈 현상이 가속화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결국 테슬라가 지속 가능한 AI 생태계를 구축하려면, 맞춤형 칩 내재화 전략소프트웨어·데이터 경쟁력을 동시에 강화하는 균형 잡힌 접근이 필요하다는 분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