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중앙은행(BoE·Bank of England)이 5대4의 한 표 차로 기준금리를 4.25%에서 4.00%로 인하했다. 그러나 네 명의 통화정책위원(MPC)들은 치솟는 물가를 이유로 동결을 주장해, 내부 갈등이 극명하게 드러났다.
2025년 8월 7일, 로이터 통신 보도에 따르면 이번 결정은 MPC 역사상 처음으로 두 차례 표결 끝에 내려졌다. 1차 투표에서 위원 4명은 동결, 4명은 0.25%p 인하, 외부위원 앨런 테일러(Alan Taylor)가 0.50%p 인하를 주장해 4–4–1로 갈렸다. 2차 투표에서 테일러가 0.25%p 인하 쪽으로 입장을 조정하면서 최종적으로 5명이 인하에 손을 들었다.
인하에 동참한 인사는 앤드루 베일리(총재), 벤 브로드벤트(부총재), 존 컨리프, 캐서린 만, 그리고 테일러였다. 반면 클레어 롬바르델리(통화정책 담당 부총재)와 휴 필(수석 이코노미스트) 등 네 명은 ‘물가가 이미 목표치의 두 배로 치솟을 것’이라며 동결을 고수했다. 롬바르델리가 다수 의견에서 이탈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통화정책의 제약성은 기준금리 인하로 다소 완화됐다.”
— 영란은행 통화정책위원회 회의록 중
회의록은 ‘긴축적 상태’라는 표현을 삭제하며 추가 인하가 끝나갈 수도 있음을 시사했다. 다만 ‘정해진 경로는 없다’는 문구를 유지해 시장과의 전략적 모호성은 이어갔다.
정치적 파장도 크다. 레이첼 리브스 재무장관과 키어 스타머 총리는 경기 부양을 공약했으나, 금리 인하 행진이 멈출 경우 성장률 제고 약속이 흔들릴 수 있다. 베일리 총재는 성명에서 “매우 미세한 균형 끝에 다섯 번째 인하를 단행했지만, 앞으로는 ‘점진적·신중한(careful)’ 속도로 움직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경기 둔화 vs. 인플레이션 ‘엇갈린 신호’
최근 영국 고용시장은 둔화 조짐을 보인다. 정부가 고용주 부과 세금을 인상한 데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무역갈등 여파가 겹쳤다는 분석이다. 그럼에도 9월 소비자물가 상승률 정점 전망치가 4%로 상향 조정돼 물가 압력은 거세다. 특히 식료품 가격 급등이 임금인상 요구와 장기 기대물가에 번질 위험이 커졌다고 MPC는 평가했다.
위원회는 물가가 목표치 2%로 복귀할 시점을 2027년 2분기로 세 달 늦췄다. 반면 유럽중앙은행(ECB)은 유로존 인플레이션을 2% 아래로 통제할 것으로 전망하며, 작년 6월 이후 여덟 차례 금리를 낮춰 BoE보다 세 번 더 인하했다.
성장률·시장 기대
BoE는 3분기(7~9월) 성장률을 0.3%로, 직전 분기의 0.1% 대비 소폭 상향했다. 그러나 중장기 전망은 연 1% 안팎의 저성장 구조가 고착될 것이라는 기존 시각을 유지했다. 채권시장 참가자들은 이번 인하 전까지 11월 한 차례 추가 인하를 내다봤으나, 오늘 회의 이후 2026년까지 1~2차례 인하 가능성만 반영하고 있다.
기준금리란? 한국어로 흔히 ‘은행 간 초단기 자금 거래에 적용되는 금리’를 일컫는다. 영란은행이 이를 조정하면 상업은행 대출·예금 금리뿐 아니라 주담대·기업대출, 채권 가격 등 광범위한 금융지표에 연쇄 효과가 발생한다.
전문가 시각
기자가 취재한 복수의 런던 자산운용사들은 “정책 불확실성이 확대돼 파운드화 변동성이 커질 것”이라며 국채 듀레이션 축소를 조언했다. 특히 결정문에서 ‘제약성 완화’ 표현을 삭제한 대목은 추가 인하 사이클 종료의 신호로 읽힌다. 그러나 실질금리(명목금리-물가) 기준으로는 여전히 긴축적이어서, 경기방어가 필요할 경우 연내 최소 한 차례 추가 인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이 나온다.
베일리 총재와 수석 정책 결정자들은 그리니치표준시(GMT) 11시 30분부터 기자회견을 열어 이번 결정 배경과 향후 통화정책 경로를 설명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