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뉴욕발 — 백악관이 정치적 이유에 따른 ‘디뱅킹(계좌 해지)’ 의혹을 조사·제재하도록 규제 당국에 지시하는 행정명령(E.O.)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조치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JP모건체이스와 뱅크오브아메리카(BoA)가 자신과 지지자들에 대해 차별을 했다고 주장한 이후 급물살을 탔다.
2025년 8월 6일, 로이터통신 보도에 따르면, 해당 행정명령 초안은 금융 규제기관들로 하여금 ‘정치화되었거나 불법적인 계좌 해지’ 사례를 점검하도록 지시하며, 위반 시 금전적 벌금 또는 기타 징계 조치를 부과할 수 있도록 명시하고 있다. 업계 소식통 두 명은 명령이 빠르면 이번 주 내 공표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백악관은 해당 사안에 대한 즉각적인 논평을 내놓지 않았다. 그러나 트럼프 전 대통령의 공개 비판이 미국 최대 은행들에 가중 압박을 더하는 동시에, 대통령의 개인적 이해관계가 행정부 정책에 반영된다는 이해 상충 논란도 재점화되고 있다. 트럼프 일가의 광범위한 사업체는 신탁에 편입돼 있으나, 궁극적 소유자는 여전히 트럼프 전 대통령이다.
“다른 정책(예: 관세)은 그의 경제적 판단이 반영됐다면, 이번 조치는 개인적 감정이 투영된 결과로 보인다.”
— 피터 리큐티 툴레인대 프리먼경영대학원 교수
리큐티 교수는 “지목된 은행들에 대한 보복성 조치가 현실화될 경우 금융시장의 또 다른 불확실성을 야기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6일 장중 BoA 주가는 보합, JP모건 주가는 0.4% 하락해 전일 각각 0.6%, 1% 내린 흐름을 이어갔다.
트럼프의 구체적 주장
트럼프 전 대통령은 5일(현지시간) CNBC 인터뷰에서 “JP모건이 1기 임기 후 내 예금 수백만 달러를 20일 이내에 빼가라며 거부했다”고 밝혔다. 그는 “바이든 행정부가 규제 당국을 부추겨 나를 ‘파괴’하려 했다”고 주장했으나, 구체적 증거는 제시하지 않았다.
그는 BoA에도 자금을 예치하려 했으나 거절당했다고 덧붙이며 “결국 소규모 지방은행 여러 곳에 1,000만 달러, 500만 달러씩 쪼개 넣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JP모건은 성명에서 “정치적 이유로 계좌를 닫는 일은 없다”며 “트럼프 전 대통령과 같은 시각으로 규제 개혁이 시급하다고 본다”고 밝혔다. BoA도 트럼프의 구체적 주장에 답하지는 않았으나 “규제 프레임워크 개선을 위해 행정부·의회와 협력하겠다”고 전했다.
‘평판 리스크(Reputational Risk)’란?
평판 리스크는 부정적 여론이 은행 사업에 타격을 주거나 소송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의미한다. 바이든 행정부 시절 감독당국은 평판 리스크를 근거로 은행 의사결정을 면밀히 들여다볼 수 있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직면했던 각종 형사·민사 소송이 은행 입장에서 해당 리스크를 높였다는 설명이 업계에서 나온다.
그러나 2024년 6월 미 연방준비제도(Fed)는 검사들이 은행을 점검할 때 평판 리스크를 고려하지 말라고 지침을 변경했다. 은행들은 이를 두고 “과도한 규제와 감독 재량이 문제였다”고 호소해 왔다.
업계·전문가 반응
웰스파고의 은행 분석가 마이크 메이오는 “백악관은 은행들이 정상적 여신 심사를 통해 거래를 거절할 수는 있지만, 규제나 평판 리스크를 핑계 삼지 말라는 메시지를 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업계 로비단체 은행정책연구소(BPI) 역시 “핵심 문제는 규제권 남용과 감독 자의성”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은행권은 이번 행정명령과 별도로 자금세탁방지(AML) 법 개정을 기대하고 있다. 현재의 AML 규정이 시대착오적·과도한 부담이라는 게 이들의 시각이다.
전문가 시각 및 전망*
*이 단락은 기자의 분석 의견이다.
만약 행정명령이 원안대로 시행돼 대형 은행들이 제재를 받는다면,미 금융시장은 단기적으로 변동성이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은행주뿐 아니라 금융 규제 리스크가 부각되는 모든 섹터가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반면, 중소 은행권에는 트럼프 사례처럼 고액 예금 유입이라는 반사이익이 발생할 수도 있다. 궁극적으로는 정치 성향에 따른 금융 접근성 논란이 미 대선을 앞두고 주요 이슈로 부상할 전망이다.
용어 정리
- 디뱅킹(debanking) : 은행이 고객 계좌를 일방적으로 해지하거나 신규 거래를 거부하는 행위.
- 행정명령(Executive Order) : 미국 대통령이 의회 승인 없이 발령하는 명령으로, 연방정부 기관의 정책 방향을 즉각 변경할 수 있다.
- 평판 리스크(Reputational Risk) : 기업 또는 금융기관이 부정적 이미지로 인해 겪을 수 있는 재무·법적 손실 위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