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발 주요 속보다. 일본이 지난달 미국과 맺은 관세 협정에 따라 약 5,500억 달러 규모의 미국 내 투자·대출을 약속했으나, 실제 투자처 선정은 “일본에 실질적 이익이 되는지 여부”를 최우선 기준으로 삼겠다고 일본 측 최고 관세 교섭 대표가 밝혔다.
2025년 8월 6일, 로이터통신 보도에 따르면, 일본 재무성 관세 담당 사무차관 아카자와 료세이는 이날 워싱턴에 도착한 직후 기자들과 만나 “미국 내 공급망 구축 등 경제안보 분야에서 일본이 이익을 얻을 수 있는 프로젝트에만 협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의 발언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CNBC 인터뷰에서 일본의 투자 약속을 “야구선수가 받는 사이닝보너스와 같다”고 표현한 직후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 돈은 우리 돈이며, 우리가 원하는 대로 투자할 수 있는 자금”이라고 말해 투자 결정권이 미국에 있다는 점을 시사했다.
■ 관세 인하와 맞바꾼 5,500억 달러 투자 약속
지난 7월 양국이 타결한 미·일 관세 협정에 따르면, 미국은 일본산 자동차를 포함한 일부 제품에 대한 관세율을 15%로 인하하는 대신, 일본은 미국 내 투자·대출 패키지로 5,500억 달러를 제공하기로 했다.
아카자와 차관은 “우선적으로 일본 산업계가 공급망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첨단 기술 부문에서 공동 이익을 창출할 수 있는 분야를 검토할 것”이라며, “일본에 이득이 전혀 없는 사안에는 최소한 협조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동시에 “투자 대상은 미국 영토 내에 한정되는 만큼, 트럼프 대통령의 구상이 크게 반영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
미국 측 의사를 무시한 채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것은 용납될 수 없다
”며 양국 간 협력 구조를 재차 확인했다.
■ ‘스태킹( stacking )’ 논란과 일본의 제동
아카자와 차관은 이번 방미 기간 동안 일본산 자동차 관세 인하의 조속한 이행을 미 당국에 촉구할 계획이다. 아울러 그는 ‘스태킹’( stacking ) 문제에 대한 명확한 해명을 요구하겠다고 밝혔다.
스태킹이란 동일 물품에 대해 복수의 관세가 연속 적용되는 현상을 의미한다. 일례로, 기본 관세에 이어 반덤핑 관세나 상계 관세가 중첩돼 부과되면, 최종 소비자는 물론 수출 기업의 부담이 급증한다. 아카자와 차관은 “연방관보 부속 문서(7월 31일자 트럼프 행정명령 부속)에서 유럽연합에는 ‘노 스태킹(no stacking)’ 조건이 명시됐으나, 일본은 빠져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미국 측이 구두로 약속한 내용과 다르다”면서 “합의사항을 반드시 이행하겠다”고 강조했다.
■ 일본 정부의 세 가지 전략적 고려
1 일본 기업의 대미 투자 효율성 제고: 자동차·부품, 배터리, 반도체 등 핵심 산업 공급망에서 실익을 극대화한다.
2 미·일 안보 연계 강화: 경제안보와 군사동맹이 결합돼 협상의 지렛대로 작용할 수 있다.
3 세계 무역질서 내 입지 확보: 미국·EU 간 차별적 대우를 최소화하고, 다자간 협의 테이블에서 영향력을 유지한다.
■ 전문가 관전평
이번 발언은 겉으로는 상호 호혜를 강조하지만, 양국의 이해 득실 셈법이 팽팽하게 맞서는 구도를 반영한다. 트럼프 행정부가 ‘America First’를 전면에 내세우는 한편, 일본 정부 역시 자국 기업 경쟁력과 전략 산업 보호를 핵심 목표로 설정한 셈이다. 일본이 명시적으로 ‘스태킹 불가’를 요구하는 것은 향후 WTO 분쟁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는 의미도 있다. 또한 5,500억 달러는 단일국 투자 약속으로는 이례적으로 큰 규모이지만, 실제 집행 속도와 편성은 미국 내 규제·정책 변화에 따라 유동적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미·일 양국은 공급망 재편, 반도체·배터리 등 첨단 제조시설 유치, 관세 특혜를 둘러싼 이해관계를 집중 조율해야 한다. 이번 협정이 양국 경제·안보 파트너십을 한 단계 끌어올릴 계기가 될지, 아니면 새로운 무역 마찰의 불씨가 될지는 양국 정부의 향후 실행력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