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홍콩발 – 중국 기업들이 미국 증시에 몰려가고 있다. 까다로운 본토 상장 요건과 상대적으로 높은 밸류에이션을 기대할 수 있다는 판단이 맞물리면서, 미·중 관계의 변동성과 미국 의회의 엄격한 감독 요구에도 불구하고 사상 최대 규모의 상장을 추진하는 분위기다.
2025년 8월 5일, 인베스팅닷컴의 보도에 따르면 법무법인 K&L 게이츠(K&L Gates)는 올 상반기(1~6월) 36개의 중국 기업이 미국에서 상장했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해(2024년) 64개로 이미 사상 최대치를 기록한 데 이어 또 한 번의 기록 행진이 예고된 셈이다.
주로 중소형 기업이 미국행을 택하고 있으며 상당수는 SPAC(기업인수목적회사) 합병 방식을 활용했다. SPAC은 본래 껍데기 회사가 먼저 상장한 뒤, 추후 스타트업을 인수하면서 피인수 기업을 우회‧신속 상장시키는 구조다. 본래 IPO 절차 대비 시간과 비용을 절감할 수 있어 빠른 자금 조달을 원하는 스타트업의 수요가 크다.
중국 기업의 미국 증시 열풍은 현재진행형이다. 중국 공시 자료에 따르면 모바일 광고 서비스 업체와 전통 한약(중의약) 제조사를 포함해 40개 이상의 기업이 나스닥 상장을 대기 중이다자료: K&L 게이츠. 기밀(Confidential) 상태로 제출된 서류를 제외한 수치이므로 실제 상장 건수는 이보다 많아질 가능성이 크다.
“올해 중국 기업 IPO 시장이 견조하다. 기록적 수준이거나 그에 근접할 것”
— 데이비드 바츠(K&L 게이츠 파트너)
2023년 중국 정부가 본토 IPO 심사 기준을 강화한 뒤, 국내 기업들은 더 깊은 자본 풀과 유동성을 보유한 미국 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바츠 파트너는 자신이 담당한 중국 고객사 파이프라인이 “탄탄하다”고 표현했다.
“미국 시장은 세계에서 가장 크고 유동성이 풍부해 자금 조달이 용이하다”며, 내년 공개를 목표로 나스닥 SPAC(UY Scuti)과 예비 합병 계약을 체결한 레이싱카 제조사 싱후이카 테크놀로지(Xinghui Car Technology)의 쑹원팡(宋文芳) 회장은 6월 상하이 한 호텔에서 건배를 올렸다.
흥미롭게도 싱후이의 축하 자리 이후 미국 증시는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이는 시장이 미·중 무역 협상 재개를 ‘불확실성 해소의 신호탄’으로 해석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중국 증권감독관리위원회(CSRC)는 해외 증권 발행을 감독하지만, 이번 건에 대한 로이터의 논평 요청에는 답하지 않았다.
1) SPAC 상장 러시
미국에 상장된 중국 기업은 알리바바(NYSE:BABA), 징둥닷컴(JD.com), 바이두(NASDAQ:BIDU)를 포함해 100여 개에 달한다. 미·중 경제안보검토위원회(USCC) 자료에 따르면 이들 시가총액 합계는 3월 기준 약 1조 달러다.
올해 최대 규모 중국 기업 IPO 사례로는 차지(茶集·Chagee)가 있다. 4월 나스닥에 입성하며 4억1100만 달러를 조달했다.
Alliance Global Partners의 무카런(Mu Karen) 전무이사는 “적자거나 매출 전 단계의 프리리브(pre-revenue) 스타트업들이 SPAC을 통한 조기 상장을 도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SPACInsider 집계에 따르면 SPAC 합병을 통한 미국 상장은 2023년 57건에서 올해(8월 5일 기준) 76건으로 증가했다.
그러나 이런 흐름은 미 의회의 레이더망에도 포착됐다. 미국 의원들은 5월 국가안보를 이유로 중국 기업의 퇴출(Delisting)을 요구하며 압박 수위를 높였다. 이어 6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중국을 특정 언급하며 IPO 신청기업의 공시 기준을 상향하겠다고 밝혔다.
SEC 대변인은 외국 기업 상장 통계를 모두 모니터링한다는 원론적 입장만 내놨다. 뉴욕증권거래소(NYSE)와 나스닥(Nasdaq) 역시 별도 논평을 거부했다.
2) 중국 본토 상장의 ‘높은 벽’
중국 내 상장 문턱은 크게 두 가지다. 메인보드에 입성하려면 일정 규모와 수익성을 충족해야 하고, 과학혁신판(科创板) 등 기술 특화 보드에 들어가려면 정부의 ‘자주 혁신(자립)’ 기조에 부합하거나 생산성 지표를 달성해야 한다.
에리온 캐피털(Aerion Capital)의 스티브 마크샤이드(Steve Markscheid) 대표는 “미국은 규정이 객관적이기만 하면 상장이 가능하지만, 중국은 당국이 기업이 ‘좋은지 나쁜지’를 주관적으로 판단한다”고 짚었다.
메릿츠앤트리(Merits & Tree) 로펌 분석에 따르면 중국 IPO 승인까지 평균 9~12개월이 소요된다. 홍콩(6~9개월)과 뉴욕(4~6개월)보다 느리다. 상장 주간사(Shuang Ronald, Balloch Holding)는 “스타트업이 중국에서 상장하기는 ‘불가능한 미션’에 가깝다”고 평가한다.
3) 전문 기자 시각 및 전망
기자는 다음 세 가지 측면에서 향후 동향을 주목한다.
첫째, 정치 리스크와 자본의 인력(引力) 사이 줄다리기는 계속될 전망이다. 미국 의회가 회계 투명성과 데이터 보안을 명분 삼아 규제를 강화할수록, 중국 기업은 홍콩·런던 등 대안 시장으로 분산할 가능성도 있다.
둘째, SPAC 시장의 거품 논란이다. SEC가 공시 요건을 높이면서 미실현 수익 전망치를 과장한 기업은 투자자 소송에 직면할 수 있다. 이는 SPAC 합병에 대한 기관투자자의 실사를 강화시키고, 궁극적으로는 건전한 선별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셋째, 중국 당국의 대응이다. 본토 기업의 ‘해외 유출’을 우려한 규제 강화가 다시 나올 경우, 일부 대기 기업은 상장 계획을 재고할 여지가 있다. 그러나 중국 경제의 성장 동력이 스타트업과 민간 부문에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자본 시장 개방은 중장기적으로 불가피한 흐름으로 평가된다.
결국 올해 중국 기업의 미국 상장 건수는 신기록 달성 가능성이 높다. 다만 지정학적 리스크가 ‘검은 백조’로 작용할 경우, 밸류에이션 할인‧상장 연기 등 부작용이 동반될 수 있다는 점도 투자자들의 유의 사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