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버코어 ISI “트럼프, 파월 해임보다 연준 인사 재편이 더 큰 위험”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의 독립성이 차기 대통령의 인사권 행사로 크게 훼손될 수 있다는 경고가 제기됐다. 투자은행 에버코어 ISI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복귀 가능성을 전제로, “파월 의장을 조기 해임하는 시도 자체보다 새 인사 임명을 통한 ‘트럼프화(化)’가 연준의 정책 반응 함수에 장기적 변화를 가져올 위험이 더 크다”고 지적했다.

2025년 8월 4일, 인베스팅닷컴의 보도에 따르면, 에버코어 ISI 부회장이자 글로벌 정책·중앙은행 전략 책임자인 크리슈나 구하(Krishna Guha)는 투자자 노트에서 “향후 2026년까지 연준의 독립성 침식이 가속화될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구하는 “우리가 진정으로 우려하는 부분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임기 중반에 제롬 파월 의장을 해임하려 들 가능성이 아니라, 새로운 이사진 임명을 통해 연준의 의사 결정 구조 자체를 바꾸는 일”이라고 언급했다. 그는 이를 ‘트럼프화(Trumpification)’로 표현하며, “결국 2026년까지 연준의 정책 반응 함수가 급선회(lurch)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Federal Reserve Building 트럼프 전 대통령은 최근 사임 의사를 밝힌 피터슨 구글러(Adriana Kugler) 이사의 공석을 통해 파월 의장 후임 카드를 조기 검토할 기회를 얻게 된다. 구하는 “상원 인준 절차가 여전히 남아 있지만, 모든 지명자에 대해 상원이 일관되게 방파제 역할을 할 것이라 확신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후보군으로는 외부 인사 케빈 워시(Kevin Warsh)케빈 해싯(Kevin Hassett)이, 내부 승진안으로는 토머스 월러(Thomas Waller) 이사가 거론됐다. 반면 데이브 베선트(Dave Bessent)는 복잡한 인준 절차로 인해 가능성이 낮아졌다는 분석이다.

에버코어 ISI는 두 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① ‘온건 시나리오’에서는 극소수 인사 교체만 이뤄지며, 트럼프 지명 의장이 취임하더라도 기존 연준 내부 관행 내에서 ‘구조적 협의(structured negotiation)’가 유지될 것으로 전망했다. ② ‘격변 시나리오’는 2026년 다수 이사가 동시 교체돼 “연준의 정책 반응 함수가 급변하고, 채권·통화시장에서 폭동(riot)이 일어날 위험”을 경고했다.

구하는 특히 “인플레이션 위험 프리미엄 급등, 채권시장 붕괴, 실물경제 충격”을 격변 시나리오의 결과로 지목했다. 그는 “제프 제퍼슨(Jefferson) 부의장, 마이클 바(Barr) 감독 부의장, 리사 쿡(Cook) 이사, 그리고 파월 의장 본인이 동반 사임할 경우 ‘모든 연준 이사가 트럼프 지명자’라는 전례 없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

“지역 연방준비은행 총재들이 균형추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도 섣부르다. 차기 의장이 예산·인력 권한을 활용해 ‘말 안 듣는’ 총재들을 길들이려 할 수 있기 때문이다.” — 크리슈나 구하

연준 구조상 통화정책 결정기구인 FOMC(연방공개시장위원회)는 이사회(Board of Governors)와 12개 지역 연준 총재로 구성된다. 하지만 경기 완화대책(예: 대출창구 조건 완화) 등 일부 수단은 이사회 단독 권한에 속해, 의장이 원하면 FOMC를 우회할 여지도 있다는 설명이다.

에버코어 ISI는 “2026년 경기 둔화나 물가 상승 압력 완화가 실제로 관측될 경우 금리 인하가 정당화될 수도 있다”면서도, “문제는 데이터가 아닌 정치적 의도에 근거한 ‘선(先) 과도(過度) 인하’가 단행될 가능성”이라고 우려했다.

알아두면 좋은 용어

• 반응 함수(Reaction Function): 중앙은행이 물가·고용·금융안정 지표 변화에 어떻게 기준금리를 조정할지를 나타내는 행동 규칙.
• FOMC: 연준의 통화정책 목표(금리·자산매입 등)를 결정하는 기구. 8명의 이사와 12개 지역 총재 중 일부가 의결권을 가진다.
• Board of Governors: 미국 대통령 지명·상원 인준을 거치는 7명의 연준 이사회. 임기는 14년으로 정치적 중립성이 핵심이다.

Bond Market

기자 해설 : 본 지적은 한국 투자자에게도 중요한 함의를 제공한다. 만약 2026년 이후 미국 국채금리가 정치적 요인으로 급변한다면 원‧달러 환율, 국내 금리 스프레드, 나아가 KOSPI의 밸류에이션까지 동반 변동할 수 있다. 특히 기관투자가가 흔히 활용하는 장기 듀레이션 채권·ETF 포트폴리오에는 변동성 확대 리스크가 잠재돼 있다.

또한, 미 연준 독립성 약화에 따른 ‘글로벌 달러 리스크 프리미엄’ 확대는 신흥국 외환시장에서 자본 유출 압력을 높일 수 있다. 한국은행 역시 “기축통화국 통화정책이 정치적 변수에 노출될 경우의 시나리오 플래닝”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금융권 안팎에서 커지고 있다.

결론적으로, 에버코어 ISI의 보고서는 단순한 인사 이벤트를 넘어 통화정책 프레임 자체가 바뀔 가능성을 상기시킨다. 시장 참여자들은 2025~2026년 연준 인사·의사록·지역 총재 발언 등을 면밀히 추적하며, “정책 결정 속도·규모·의사소통이 정치적 목적에 좌우되는지 여부”를 가늠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