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vidia(나스닥 종목코드: NVDA)의 인공지능(AI) 훈련·추론용 H20 그래픽처리장치(GPU)가 중국 시장에 다시 공급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새로운 경쟁 구도와 규제 변수로 인해 예전만큼 뜨거운 환영을 받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본다.
2025년 8월 4일, CNBC 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달 Nvidia 측에 H20 칩 판매 재개를 허가하겠다고 확약했고, 동시에 중국 규제에 ‘완전 준수(fully compliant)’하는 신형 칩을 별도로 설계했다고 밝혔다. 이는 2025년 4월 수출 사실상 금지 조치 이후 약 석 달 만에 나온 결정이다.
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Nvidia가 수십억 달러 규모의 잠재적 손실을 만회할 ‘대형 호재’로 평가한다. 다만, H20 공급이 재개되더라도 시장 점유율을 이전 수준으로 회복하기는 쉽지 않다는 경계의 목소리가 높다.
1. 중국 내 AI 칩 경쟁 심화
글로벌 브로커리지사 번스타인(Bernstein)은 최근 보고서에서 2025년 Nvidia의 중국 AI 칩 시장 점유율이 54%로 하락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는 1년 전 예상치인 66%에서 12%포인트 축소된 수치다.
보고서는 “미국의 수출 통제가 중국 업체들에게 독자 생태계를 구축할 절호의 기회를 제공했다”면서 화웨이, 캠브리콘, 하이곤 등 토종 기업들이 빠르게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중국 AI 칩 시장의 국산화율(localization ratio)이 2023년 17%에서 2027년 55%로 급등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세계 최고 수준의 미국산 제품과 정면 승부해야 했던 장벽이 사라지자, 중국 업체들이 급격히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 – 번스타인 보고서 중
※ 참고 Localization ratio는 특정 시장에서 자국 업체가 공급하는 제품 비중을 의미한다. 비율이 높을수록 해외 의존도가 낮아진다는 뜻이다.
2. 규제 완화(Export Control Easing) 시나리오
Nvidia의 공동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 젠슨 황(Jensen Huang)은 그동안 “과도한 수출 통제가 미국 기술 리더십을 약화시킨다”고 공개적으로 로비 활동을 펼쳐왔다. 트럼프 행정부 측은 이번 규제 철회가 ‘무역 협상 카드’라고 설명했지만, 시장 전문가들은 미국 기술이 중국 시장에 계속 남아 있어야 지정학적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논리를 더 설득력 있게 본다.
뤼포디움 그룹(Rhodium Group)의 이사 레이바 구존(Reva Goujon)은 CNBC 인터뷰에서 “미국 업체를 중국 게임에 남겨둬야 미국이 전략적 레버리지를 확보할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녀가 속한 싱크탱크는 최근 보고서에서 ‘슬라이딩 스케일(sliding scale)’ 방식, 즉 중국 업체 기술 수준이 높아질수록 단계적으로 규제를 완화하는 모델을 제안했다.
3. 베이징의 새로운 감시
그러나 중국 정부 역시 외산 칩 의존도를 낮추려는 행보를 멈출 생각이 없다. 중국 국가인터넷정보판공실(CAC)은 최근 Nvidia를 불러 H20 칩의 ‘백도어(backdoor)’ 의혹—미국 측이 원격 제어 혹은 데이터 접근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해 조사했다. Nvidia는 “어떠한 백도어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부인했다.
이 같은 조사는 미국 의회가 AI 칩 보안 메커니즘·위치 검증 의무화를 담은 신규 법안을 추진하는 것에 대한 ‘맞불’ 성격이 짙다는 평가다. 퓨처럼 그룹(Futurum Group)의 CEO 다니엘 뉴먼(Daniel Newman)은 “베이징은 국산 기술 경쟁력이 충분히 올라올 때를 대비해 외산 칩 수요를 탄력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장치를 확보하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중국은 언제든 외산 AI 칩을 제한할 수 있는 ‘레버’를 남겨두려 한다.” – 다니엘 뉴먼, 퓨처럼 그룹 CEO
4. 과거 사례와 향후 전망
미·중 기술 갈등이 격화될 때마다 중국은 외국 반도체 기업에 제동을 걸어왔다. 예컨대 마이크론 테크놀로지는 2023년 사이버보안 심사를 통과하지 못해 중국 핵심 IT 인프라 시장에서 사실상 퇴출당했다.
뉴먼은 “협상이 이어지는 과정에서 기술·무역 갈등이 다시 복잡해지면 Nvidia도 추가 변수를 피하기 어렵다”고 경고했다. 특히 고객사가 중국 대체 칩 사용으로 성능·비용 측면에서 만족을 얻었다면 Nvidia 점유율이 더 빨리 붕괴될 수도 있다.
5. 전문가 시각 및 기자 해설
필자는 다음 세 가지 포인트를 주목한다. 첫째, H20 칩의 물리적 성능이 경쟁사 대비 여전히 우위에 있지만, 지속 가능한 생태계는 규제와 공급망 리스크에 크게 좌우된다. 둘째, 중국 정부가 ‘국산화율 70%’라는 장기 목표를 제시한 상황에서, Nvidia는 가격·고객 맞춤형 설계·소프트웨어 최적화 등 복합 전략을 구사해야만 방어가 가능하다. 셋째, 미·중 정치 일정—특히 2026년 미국 중간선거와 2027년 중국 당 대회—이 시장 변동성의 불확실성을 더욱 증폭시킬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요컨대, H20의 중국 복귀는 단기 실적 개선에는 도움이 되더라도, 중장기 경쟁력은 국산 대체재 성장 속도와 미·중 관계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다. 투자자들은 단순 판매 재개를 넘어서 시장 점유율 방어 전략과 정책 리스크 관리를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