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유 가격, 미국 경기 우려로 급락

서부텍사스산중질유(WTI) 9월물(코드: CLU25)은 1일(현지시간) -1.93달러(-2.79%) 하락한 채 마감했으며, 같은 달 만기 RBOB 휘발유(코드: RBU25)도 -0.0553달러(-2.54%) 떨어졌다.

2025년 8월 4일, 나스닥닷컴의 보도에 따르면 이날 원유·휘발유 가격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전격적인 관세 인상 공약미국 경기 지표 부진이 겹치며 동반 급락했다. 특히 7월 비농업부문 신규 고용(Nonfarm Payrolls)이 7만 3,000명 증가에 그치며 시장 예상치(10만 4,000명)를 크게 하회했고, 7월 ISM 제조업 지수 역시 48.0으로 9개월 만의 최대 위축을 나타냈다.

미 증시도 영향을 받았다. S&P 500 지수는 2주 만의 최저치로 밀려나며 위험자산 선호 심리를 냉각시켰다. 에너지 수요는 경기 전망에 민감하게 반응하는데, 주가지수 하락은 소비·투자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키웠다.


트럼프式 관세 공세, 글로벌 수요 둔화 우려

전날 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무역흑자국에는 최소 15% 관세를, 전 세계에는 10%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선언했다. 8월 7일 0시부터 발효될 가능성이 거론되면서 교역 둔화→성장률 하향→에너지 수요 위축이라는 연쇄 반응이 시장에 즉각 반영됐다.

러시아 제재 시한 압박…공급 쇼크 가능성

한편 원유 가격의 하단을 지지하는 재료도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러시아·우크라이나 휴전 협상에 10일 기한을 부여하고, 불응 시 “러시아산 에너지 수출에 세 자릿수(100% 이상) 관세를 물리겠다”고 경고했다. JP모간체이스는

“러시아 수출 물량 규모와 OPEC 여유 생산 능력을 고려하면 시장은 공급 쇼크를 외면하기 어려울 것

이라고 평가했다.

EU도 러시아를 겨냥한 대러 신규 제재를 단행했다. 20개 러시아 은행을 국제결제망 SWIFT에서 추가 퇴출하고, 제3국에서 재정제한된 러시아산 정유 제품 수입도 막았다. 인도 국영 정유사와 러시아 Rosneft PJSC가 합작한 대형 정유시설도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더불어 러시아 ‘그늘 선단(Shadow Fleet)’ 소속 유조선 105척을 제재 목록에 포함하며 총 400척 이상이 제재 대상이 됐다.


OPEC+ 증산 전략, ‘과잉공급’ 그림자

OPEC+는 9월 54만 8,000배럴(bpd) 증산 후 10월부터 증산 일시 중단을 논의 중인 것으로 블룸버그가 7월 10일 보도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재고가 하루 100만 배럴씩 쌓이며 2025년 4분기에는 소비 대비 1.5% 초과 공급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동 기구는 유가 급락 시 중동 산유국이 다시 감산 카드를 꺼낼 여지도 있다고 내다봤다.

실제로 OPEC+는 7월 5일 예상보다 큰 폭인 54만 8,000bpd 증산을 결정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추가 증산을 통해 과잉 생산국에 ‘가격 징벌’을 가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는 카자흐스탄·이라크 등 쿼터를 초과 생산한 회원국을 압박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이라크-쿠르드 수송 재개, 추가 공급 변수

이라크 정부는 2023년 3월부터 중단된 쿠르드 자치구 원유 수출 재개 방안을 승인했다. 이라크-터키 파이프라인을 이용해 하루 23만 배럴이 시장에 복귀할 수 있다. 이라크는 OPEC 내 두 번째 산유국으로, 전체 공급에 상당한 파급력을 지닌다.

유조선 해상 재고 급증

시장조사 업체 Vortexa에 따르면 7월 25일 기준 7일 이상 정박한 유조선에 적재된 원유가 8,499만 배럴전주 대비 23% 급증했다. 유조선 상 재고 증가는 물리적 저장 공간이 포화 상태에 가까워졌음을 시사하며 유가에 하방 압력을 가한다.

미국 에너지 지표: 재고·리그·생산 현황

EIA(미 에너지정보청) 주간 보고서(7월 25일 기준)에 따르면 ▲미국 원유 재고5년 평균 대비 5.6% 낮은 수준으로 타이트한 편이며 ▲가솔린 재고는 0.7% 아래, ▲증류유 재고는 15.2% 아래에 머물러 있다. 주간 미국 원유 생산은 1,331만 4,000bpd로 사상 최고치(1,363만 1,000bpd, 2024년 12월 6일)보다는 소폭 적다.

석유 서비스사 Baker Hughes는 8월 1일 주간 미국 가동 원유 시추기가 5기 감소해 410기로, 3년 9개월 만의 최저치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이는 2022년 12월 627기 대비 34.6% 감소한 수치다.


전문가 관점: 단기 변동성 확대 불가피

기자는 이번 가격 급락의 배경이 수요 둔화 공포공급 제약 위험이 뒤섞인 ‘쌍방향 리스크’에 있다고 본다. 관세 충격은 경기·수요 하방 요인인 반면, 러시아발 공급 리스크는 상방 요인이다. 양자가 동시에 부상하면서 유가는 단기 급등·급락이 반복되는 롤러코스터 장세를 지속할 가능성이 높다.

투자자 관점에서 국제 벤치마크 유가가 70달러선 아래로 밀릴 경우, 러시아·OPEC 일부 회원국은 재정수지 방어를 위해 감산을 재검토할 수 있다. 반대로 90달러선을 상회할 때는 미 셰일 업계가 생산을 확대하며 상단을 제어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70~90달러 박스권이 당분간 유지될 수 있다.


용어 설명

WTI: 미국 텍사스주 커싱에서 인도되는 경질·저유황 원유로, 국제유가 대표 벤치마크다.
RBOB 가솔린: Reformulated Blendstock for Oxygenate Blending의 약자로, 배출가스 저감을 위해 첨가제가 들어간 휘발유 선물이다.
SWIFT: Society for Worldwide Interbank Financial Telecommunication, 국제 은행 간 결제·통신망.
Shadow Fleet: 제재 회피를 목적으로 운항 정보를 숨기고 운항하는 선박 무리를 의미한다.
OPEC+: OPEC 13개 회원국과 러시아·카자흐스탄 등 10개 비OPEC 산유국의 연대체.
Vortexa: 실시간 해상 물류·원유 흐름 데이터를 제공하는 영국 기반 시장조사 회사.
Baker Hughes Rig Count: 북미 원유·가스 시추기 가동 대수를 집계해 업황을 가늠하는 대표적 선행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