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텍사스산원유(WTI) 9월물 가격이 2.79% 하락하며 배럴당 67달러 선 아래로 밀렸다. 같은 날 9월물 RBOB 가솔린 선물도 2.54% 하락했다.
2025년 8월 3일, 나스닥닷컴 보도에 따르면, 투자자들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전격 발표한 글로벌 최저 10% 관세와 대미 흑자국에 대한 15% 이상 고율 관세가 세계 경기 둔화와 에너지 수요 감소를 초래할 것이라는 우려 속에 위험자산을 매도했다.
S&P 500지수는 2주 만에 최저치로 후퇴했으며, 이는 에너지 소비 전망을 뒷받침하는 투자심리를 약화시켰다. 동시에 발표된 7월 미국 비농업 신규고용은 7만3,000명 증가에 그쳐 시장 예상치인 10만4,000명을 크게 하회했고, 6월 수치는 종전 14만7,000명 증가에서 1만4,000명으로 대폭 하향 조정됐다.
제조업 경기 또한 부진했다. 7월 공급관리협회(ISM) 제조업지수는 48.0으로 떨어져 9개월 만에 가장 가파른 위축세를 보였다. 이는 전달 대비 1.0포인트 하락했을 뿐 아니라, 시장 컨센서스(49.5)에도 미달하는 수치다.
공급 변수도 긴장을 높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10일 안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와 휴전에 합의하지 않으면 러시아산 에너지 수출에 대한 제재를 한층 강화하겠다고 경고했다. JP모건체이스는 실제 시행될 경우 러시아 원유에 적용되는 세 자릿수 관세를 시장이 무시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OPEC이 보유한 유휴생산능력으로는 러시아 물량을 대체하기 역부족”
이라고 평가했다.
유럽연합(EU)은 최근 러시아산 석유에 대한 추가 제재 패키지를 승인해 20개 러시아 은행을 SWIFT 결제망에서 제외하고, 러시아산 원유를 재정제한 타국산 석유 제품에도 제약을 가했다. 인도 대형 정유사 한 곳이 블랙리스트에 올라섰으며, 400척이 넘는 러시아 ‘그늘선대’(제재 회피 선박) 중 새로 105척이 제재 대상이 됐다.
그러나 가격에 완충재 역할을 하는 요소도 존재한다. 블룸버그통신은 7월 10일 OPEC+가 9월 54만8,000배럴 추가 증산 이후 10월부터 증산 일정을 동결(pause)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라고 전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재고가 하루 100만 배럴 속도로 증가해 2025년 4분기에는 수요 대비 1.5% 초과 공급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OPEC+는 7월 5일 회의에서 8월 1일부로 하루 54만8,000배럴 증산을 결정했으며 이는 시장 기대치(41만1,000배럴)를 넘어서는 규모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카자흐스탄·이라크 등 쿼터 초과 생산국에 대한 경고성 의미도 있다며 “유사한 증산을 이어갈 수 있다”고 밝혔다.
시장 참여자들은 이라크 북부 쿠르드 자치지역에서 터키 지중해 파이프라인(Ceyhan)을 통한 수출 재개 가능성에도 주목한다. 쿠르드 지역정부는 수출이 재개되면 하루 23만 배럴을 공급할 수 있다고 밝혔으며, 이는 OPEC 2위 산유국인 이라크 전체 물량에 즉각적인 증가 효과를 줄 것으로 평가된다.
해상 재고도 늘었다. 해상 물류 분석업체 보텍사(Vortexa)에 따르면 7일 이상 대기 중인 유조선 적재 원유는 7월 25일 기준 전주 대비 23% 증가한 8,499만 배럴로 집계됐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는 7월 25일 주간 통계에서 미국 원유 재고가 계절평균 대비 5.6% 낮은 반면 정제제품인 가솔린과 디스틸레이트(난방유·경유) 재고는 각각 0.7%, 15.2% 부족하다고 발표했다. 같은 기간 미국 일일 원유 생산량은 1,331만4,000배럴로 사상 최고치(2024년 12월 첫째 주 1,363만1,000배럴)에 근접했다.
Baker Hughes 집계
에 따르면 8월 1일 기준 미국 내 가동 중인 원유 시추 굴착기(리그)는 410기로 전주 대비 5기 감소하며 3년 9개월 만의 최저치를 기록했다. 2022년 12월 627기를 정점으로 2년 반 동안 34% 감소한 셈이다.
주요 용어 해설
WTI: 미국 텍사스주 서부 지역에서 생산되는 경질유로,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거래되는 국제 유가의 대표적 벤치마크다.
RBOB 가솔린: Reformulated Blendstock for Oxygenate Blending의 약자로, EPA 기준에 맞춰 산소 첨가제가 들어가기 전 상태의 가솔린 선물상품을 의미한다.
OPEC+: 석유수출국기구(OPEC) 13개 회원국과 러시아·멕시코 등 10개 비회원 산유국이 포함된 협의체로, 전 세계 원유 공급량의 절반 이상을 조절한다.
SWIFT: 국제은행간통신협회(Society for Worldwide Interbank Financial Telecommunication)가 운영하는 글로벌 금융 결제망으로, 제재 대상국 은행이 퇴출될 경우 국제 결제가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기자 의견: 단기적으로는 미국 경제지표 악화와 글로벌 관세 충격이 수요 둔화 우려를 키우며 유가 하방 압력이 우세할 가능성이 크다. 다만 러시아산 원유에 대한 추가 제재가 현실화된다면 공급 차질이 가격 변동성을 증폭시킬 수 있어, 시장은 정책 변수에 예민하게 반응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