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프란시스코] 미국 의회가 최근 심의 중인 대규모 국방수권법(National Defense Authorization Act·NDAA) 개정안에 애플(AAPL)의 디스플레이 공급사인 BOE 테크놀로지 그룹을 중국 군사기업 목록에 포함할지를 미 국방부가 검토하도록 요구하는 조항이 새롭게 삽입됐다.
2025년 8월 1일, 인베스팅닷컴의 보도에 따르면 상·하원 군사위원회가 7월에 각각 가결한 이번 NDAA는 미국 국방 예산을 뒷받침하는 ‘필수 통과’ 법안으로, 연내 최종 법제화를 앞두고 있다. 개정안에는 BOE를 포함한 중국 업체들이 중국 인민해방군(PLA)을 지원하고 있는지 여부를 미 국방부(펜타곤)가 판단해, 해당 업체를 ‘중국 군사기업(CME·Chinese Military Company)’ 리스트에 등재할지를 검토하라는 신설 수정조항이 포함됐다.
현재 ‘중국 군사기업’ 목록에 오른 기업은 미국 내 사업 활동 자체가 즉각 금지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향후 몇 년 내 미 국방부 공급망 참여가 전면 차단될 수 있는 사전 단계”
라는 점에서, 글로벌 전자업계 및 투자자들은 해당 리스트의 파급력을 주시하고 있다.
BOE는 애플 ‘공식 공급업체 목록(Apple Supplier List)’에 이름을 올린 중국 최대 디스플레이 제조사다. 2023년 이후 아이폰·아이패드용 OLED/LED 패널 비중을 빠르게 확대하며, 삼성전자·LG전자 등 한국계 선두 업체와 경쟁하고 있다. 로이터 통신 원문에 따르면, 이번 개정안 채택 이후 BOE와 애플 모두 “논평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배경 및 쟁점
워싱턴 민간연구기관 ‘민주주의수호재단(FDD)’의 중국 전문가 크레이그 싱글턴은 “베이징 당국이 BOE를 포함한 패널 제조사에 수십억 달러 규모의 보조금·세제 혜택·저리 대출을 제공해 글로벌 시장 지배력을 공고히 하고 있다”면서, “단일 소스 의존도가 높아지면 미 군사작전 및 민간 공급망이 충돌·긴장 국면에서 교란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싱글턴 연구원은 이어 “단일 소스 취약성(single-source vulnerability)은 군수·통신·항공 등 미군 첨단 시스템 전반에 광범위한 리스크를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미 국방부가 중국산 핵심 부품 의존도를 단계적으로 축소하고, 다변화된 ‘안보 공급망’을 구축하려는 배경과 맥락을 공유한다.
한편, BOE America가 의뢰하고 뉴욕 소재 NERA Economic Consulting이 지난달 발표한 연구 보고서는 “디스플레이 산업은 삼성전자·LG전자 등 ‘메이저’ 한국 기업이 여전히 강력한 경쟁력을 보유한 ‘다극 경쟁’ 구도”라며, “중국 본토 업체가 단독으로 글로벌 가격이나 공급망을 좌우할 수 있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부족하다”고 반박했다.
해당 보고서는 “중국 본토 디스플레이 제조사가 공급망 교란을 일으킬 ‘신뢰할 만한 위험’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결론지었다.
보고서는 또한 삼성디스플레이·LG디스플레이의 기술력과 생산 능력, 일본·대만 업체들의 틈새 전략을 근거로 들어 “글로벌 밸류체인은 특정 국가에 집중돼 있지 않다”고 분석했다. 다만, 이 같은 반론에도 불구하고 미 의회가 국방 안보 프레임에서 사안을 접근함에 따라, BOE의 리스크 프리미엄은 적잖이 확대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중국 군사기업’ 지정 시 영향
만약 펜타곤이 BOE를 ‘중국 군사기업’으로 최종 지정할 경우, 미 정부·방산 계약에 BOE 제품을 활용한 부품·장비의 공급이 원천 차단된다. 이는 F-35 전투기 조종석 디스플레이, 군용 위성 패널, 야전 통신장치 등 민감한 방산 품목에 해당할 수 있다※ 기사 본문에 구체 품목 언급은 없으나 일반적 예시로 설명. 아울러, BOE로부터 패널을 조달하는 애플 등 민간 기업도 장기적으로 ‘공급 다변화’ 압박을 받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BOE 비즈니스 모델의 가시성, 애플 공급망 안정성, 그리고 미·중 기술 패권 경쟁이 가져올 규제 리스크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 업계 관계자는 “BOE의 아이폰 패널 점유율이 최근 급증한 가운데, 이번 지정 가능성이 현실화되면 퀄컴·스카이웍스·코보 등 다른 부품사들까지 ‘2차 피해’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했다.
용어 해설
NDAA(국방수권법)는 미국 국방 예산·정책의 뼈대를 규정하는 연례 법률이다. 통상 ‘연방 정부 폐쇄(셧다운)’ 우려와 무관하게 ‘꼭 통과해야 할(must-pass)’ 법안으로 인식된다.
중국 군사기업 목록(CME List)은 중국 인민해방군 또는 방산산업과 연계된 것으로 간주되는 기업을 지정, 미국 자본시장·공급망 접근성을 단계적으로 제한하는 제도다. 지정 단계별로 주식·채권 투자 금지, 정부 조달 배제 등 제재 수위가 높아진다.
단일 소스 취약성이란, 특정 부품·서비스를 하나의 공급자에게 과도하게 의존함으로써 공급 충격 발생 시 대체 불가 위험이 커지는 현상을 말한다.
전망 및 제언
의회와 국방부가 국가안보·공급망 리스크 관리 프레임을 강화하는 추세에서, BOE는 투명성 확보·납품선 다변화·기술 자립성 증명 같은 복합 과제를 안게 됐다. 국내외 투자자들은 애플의 공급 체계 변화와 중국 디스플레이 산업 정책의 향방을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
특히 미·중 관계가 ‘전략적 경쟁’ 국면을 넘어 구조적 디커플링(Decoupling)으로 진입할 경우, 단순 가격 경쟁력뿐 아니라 ‘안보 친화적 공급망’ 구축 여부가 기업 가치에 중대한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향후 NDAA 최종안이 법제화되고, 펜타곤이 BOE 평가 결과를 공개하면, 글로벌 IT·방산·금융시장의 반응과 파급효과가 구체화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