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포트】 미국 최대 자산운용사 중 하나인 블랙록(BlackRock)이 텍사스주와 12개 공화당 주(州)가 제기한 반(反)독점법 위반 소송을 각하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연방법원이 이를 대부분 기각했다. 이번 결정은 대형 자산운용사들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활동에 대한 법적 책임 범위를 가늠할 수 있는 중요 선례로 평가된다.
2025년 8월 1일, 인베스팅닷컴의 보도에 따르면, 미국 텍사스 동부지방법원 제러미 커노들(Jeremy Kernodle) 판사는 전체 21개 청구 중 단 3개 항목만 각하하고, 나머지 18개 항목에 대해선 심리를 이어가기로 결정했다. 이로써 사건은 본격적인 증거 개시 단계에 진입한다.
소송 원고는 텍사스주를 포함한 13개 공화당 주(루이지애나·오클라호마·웨스트버지니아 등)로 구성됐다. 이들은 블랙록·스테이트스트리트(State Street)·뱅가드(Vanguard) 등 대형 기관투자가들이 기후변화 대응을 명분으로 석탄 기업에 대한 투자를 의도적으로 축소하고, 결과적으로 에너지 가격 급등을 초래했다고 주장한다.
“피고들은 기후 아젠다를 앞세워 특정 산업(석탄)을 고사시키는 담합 행위를 했다” — 원고 측 소장 중에서
1. 판결 핵심 요지
커노들 판사는 ‘카르텔 형성·가격 담합·시장 지배력 남용’ 등 주요 항목을 그대로 살려 두었다. 다만 *1 ‘절차적 하자’와 관련된 일부 청구 세 건은 요건 불충족을 이유로 각하했다. 이에 대해 법원은 “원고가 제시한 주장의 상당 부분이 반(反)독점법 상의 가능성 있는 위법 행위를 시사한다”라고 판단했다.
이 결정은 모든 혐의를 확정 짓는 최종 판결은 아니며, 향후 본안 심리와 배심 재판을 통해 사실관계를 다투게 된다.
2. ESG·반독점법이란 무엇인가?
ESG는 Environment(환경)·Social(사회)·Governance(지배구조)의 머리글자로, 기업 경영이나 투자를 판단할 때 재무적 지표 외에 지속가능성 요소를 고려하자는 개념이다. 그러나 일부 보수 성향 주정부는 “ESG가 환경 규제를 우회적으로 강제하고, 화석연료 산업을 차별한다”라며 반발해 왔다.
반독점법(Antitrust Law)은 시장의 공정 경쟁을 보장하기 위해 ‘담합·부당 공동행위·시장 지배적 지위 남용’ 등을 금지하는 법이다. 미국에서는 셔먼법·클레이턴법 등이 대표적이다.
3. 사건 전개 및 시사점
이번 사건에서 블랙록 측은 “ESG는 투자자 수익 극대화를 위한 합리적 고려 사항이며, 주정부가 제기한 피해 인과관계가 불분명하다”라고 항변했다.
그러나 법원은 석탄 생산 감소와 에너지 가격 상승이라는 원고 주장에 대해 “추후 심리를 통해 충분히 다툴 여지가 있다”라고 밝혔다. 이는 민사소송에서 매우 낮은 ‘소명 기준’을 충족했다는 의미로, 정식 재판으로 넘어갈 최소 조건을 충족했다는 뜻이다.
전문가 분석에 따르면, 대형 자산운용사들은 글로벌 포트폴리오의 특성상 ‘녹색 투자’ 압박을 받고 있으며, 이를 무시할 경우 투자자와 규제기관 양측 모두로부터 평판 위험을 직면한다. 반면, 미국 보수 진영은 이를 ‘정치적 개입’이라고 규정하며 법적·행정적 대응을 강화하는 추세다.
미국 의회에서도 ESG 투자 가이드라인을 둘러싼 공방이 지속 중이다. 만일 텍사스주 등 원고가 승소하면, 기관투자가의 기후변화 전략마저 담합 행위로 규제될 가능성이 열리게 된다.
4. 향후 일정과 전망
소송은 증거 개시(Discovery) 단계로 돌입하며, 각 피고는 내부 이메일·메모·회의록 등 방대한 자료를 제출해야 한다. 통상 이 과정만 수개월에서 1년 이상 소요된다. 이후 법원은 요약판결(줄소송) 신청을 받을 수 있으며, 기각될 경우 배심 재판이 확정된다.
법률가들은 “이번 사건은 ESG 추진과 반독점 규제가 충돌한 첫 대형 사례로, 판결 결과가 투자업계 전반의 리스크 관리 체계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석탄·석유 등 전통 에너지 기업들은 원고 측 승소 시 자본 조달 비용을 낮출 기회를 얻을 수 있지만, 동시에 기후 변화 대응에서 후퇴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5. 기자의 통찰
가장 주목해야 할 점은 사법부가 ESG를 ‘선(善)으로 전제’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커노들 판사는 “ESG가 공익을 위한 것이라 할지라도, 경쟁 제한적 효과를 가져온다면 법적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취지로 판단했다.
이처럼 규제 리스크가 가시화되면, 대형 자산운용사는 ‘기후 목표’와 ‘반독점 위험’ 사이에서 균형점을 재설정해야 한다. 동시에 투자 수익률을 중시하는 고객들과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는 이해관계자 간의 갈등 관리가 더욱 복잡해질 전망이다.
결국 이번 소송은 ESG가 지속가능성을 넘어, 시장 경쟁과 법치라는 거대 프레임까지 확장됐음을 보여준다. 향후 판결이 어떠한 방향으로 흘러가든, 국내외 연기금·공제회 등 대규모 자산주들도 유사한 소송 리스크를 면밀히 모니터링할 필요가 있다.
*1) 절차적 하자: 제소 요건이나 관할 문제 등 형식적 요구사항 부족을 이유로 한 기각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