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반도체 업계의 상징적 기업인 인텔(Intel)이 제조 조직의 핵심 리더 3명을 동시 은퇴시키며 새 경영진 체제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번 인사 조치는 립부 탄(Lip-Bu Tan) 신임 최고경영자(CEO)가 취임 직후 단행한 첫 대규모 조직 재편이라는 점에서 반도체 업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2025년 8월 1일, 인베스팅닷컴의 보도에 따르면 인텔은 사내 공지를 통해 카이자드 미스트리(Kaizad Mistry), 라이언 러셀(Ryan Russell) 두 기술개발그룹(Technology Development Group) 부사장과, 인텔 디자인 테크놀로지 플랫폼(Design Technology Platform)을 이끌어온 게리 패튼(Gary Patton) 부사장의 은퇴 계획을 공식 발표했다. 세 임원 모두 제조 및 공정 기술 분야에서 수십 년간 경력을 쌓아온 핵심 인물로, 이번 동시 은퇴는 조직 체질 개선과 비용 구조 최적화를 노리는 인텔의 강력한 의지를 보여주는 듯하다.
인텔은 기술개발그룹(TDG) 개편안도 함께 제시했다. 구체적으로는 제조 공정 연구·개발을 통괄하던 TDG 산하에서 제조 용량 계획팀(Manufacturing Capacity Planning Team)의 인력 규모를 축소하고, 일부 엔지니어링 조직을 재배치하거나 분리·흡수합병하는 방안이 포함됐다. 이는 지나치게 복잡해진 공정 로드맵과 중복 업무를 정리해 연구개발(R&D) 비용을 절감하고, 파운드리(위탁생산) 사업과의 시너지를 극대화하려는 의도라는 분석이다.
제조 용량 계획(Manufacturing Capacity Planning)이란?
제조 용량 계획은 공장(팹)의 설비·인력·재고를 어떻게 배분할지 미리 계산해 최적의 생산 효율을 달성하는 활동을 뜻한다. 반도체 산업처럼 수십억 달러 규모의 설비 투자가 필요한 분야에서는, 잘못된 용량 예측이 곧바로 재무 리스크로 이어지므로 전문 조직을 두고 정밀하게 관리한다. 이번 구조조정으로 인텔은 용량 계획팀을 축소함으로써 의사 결정 단계를 줄이고, 빠른 시장 대응이라는 ‘애자일(agile)’ 방식을 도입하겠다는 입장이다.
주가·시장 반응
은퇴 소식이 전해진 8월 1일 프리마켓(정규장 시작 전)에서 인텔 주가는 1.8% 하락했다. 이는 리더십 공백에 대한 단기 우려와 구조조정 비용 부담 심리가 맞물린 결과로 풀이된다. 그러나 일부 애널리스트는 “장기적으로는 인력 재배치와 간소화된 의사 결정 구조가 공정 전환 속도를 높여, 경쟁사 대비 수율 경쟁력을 회복할 수 있다”는 시각을 내놓고 있다.
CEO 립부 탄의 행보와 전략적 배경
립부 탄은 투자회사 월든 인터내셔널(Walden International)과 반도체 설계 플랫폼 업체 캐던스(Cadence Design Systems)를 이끈 경험을 바탕으로 올 6월 인텔 최고경영자에 취임했다. 그는 취임 직후 ‘혁신 복원(Bring Back Innovation)’을 핵심 슬로건으로 제시하며 공정 성능·고객 신뢰 회복을 최우선 과제로 선언한 바 있다.
립부 탄 CEO 발언
“인텔은 다시 설계 혁신과 제조 우위를 모두 갖춘 기업으로 거듭날 것”이라고 강조하며, “필요하다면 과거의 성공 방정식조차 과감히 버리겠다”고 밝혔다.
실제로 그는 3나노미터(㎚) 이하 초미세 공정 개발 일정 가속, 외부 파운드리 활용 확대, 그리고 내부 파운드리 사업 ‘IFS(Intel Foundry Services)’의 고객 다변화 등 다층적 전략을 병행하고 있다. 이번 임원 은퇴·조직 개편 역시 “속도 중심 구조”를 위한 선제적 인적·구조적 정비로 해석된다.
업계 파급 효과와 전문가 시각
반도체 공급망 재편 국면에서 인텔의 선택은 글로벌 경쟁 구도에도 파장을 일으킬 전망이다. 특히 TSMC·삼성전자 등 파운드리 2강이 미세 공정 시장을 선점한 상황에서, 인텔이 설계·제조 동시 내재화(IDM) 모델을 고수할지, 혹은 TSMC와 같은 ‘순수 파운드리’ 비즈니스 비중을 키울지가 관전 포인트다.
시장조사기관 트렌드포스(TrendForce)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전 세계 파운드리 시장점유율은 TSMC 61%, 삼성전자 15%, 인텔 IFS 1% 미만으로 추정된다. 인텔이 점유율을 2026년까지 10%로 끌어올리겠다는 로드맵을 공식화한 만큼, 공정 전환 속도와 고객 확보가 성패를 가를 핵심 변수로 꼽힌다.
프린스턴대학교 전자공학과 잭 리(Lee) 교수는 “공정 난이도가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질수록, 설계·제조·패키징·용량 계획을 총괄하던 기존 인텔식 대형 조직은 기민성을 잃기 쉽다”고 지적했다. 그는 “조직 슬림화로 의사결정 속도를 높이고, 외부 파트너 생태계를 확장하면 탄 CEO 체제에서 재도약 가능성도 충분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향후 관전 포인트
① 후임 인선 – 인텔은 TDG와 DTP(Design Technology Platform) 수장을 내부 승진 또는 외부 영입으로 채울 방침이나, 아직 명단을 공개하지 않았다. 과거 IBM·애플·엔비디아 출신 인재가 영입 리스트에 올랐다는 관측도 있다.
② 3㎚ 이하 공정 로드맵 – 2025년 하반기 ‘Intel 3’를 양산한다는 기존 계획을 유지할지, 혹은 2㎚(Intel 20A)로 직행해 시장을 선점할지가 관심사다.
③ 원가 구조 – 제조 용량 축소와 설비 투자 최적화가 매출총이익률(Gross Margin)을 얼마나 개선할지 주주들의 이목이 집중된다.
결론 및 기자 관전평
이번 고위급 은퇴와 조직 개편은 인텔이 “메타모포시스(변신) 단계”에 진입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과연 립부 탄 CEO가 과감한 칼질로 ‘공룡 인텔’을 민첩한 조직으로 재탄생시킬지, 아니면 인력 유출·리더십 공백이라는 부작용에 직면할지는 향후 6~12개월 내 나타날 공정 수율·재무 지표가 가늠자가 될 전망이다.
금일 공표된 인사 소식은 단순한 세 임원의 은퇴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인텔이 ‘제조 리더십 재탈환’이라는 숙제를 안고 파운드리와 IDM 모델의 균형점을 찾는 과정에서, 기술·인력·조직 삼박자를 동시에 재배열하는 강도 높은 혁신 행보가 본격화됐음을 시사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