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 전 일본은행(BOJ) 부총재인 나카소 히로시가 달러화의 절대적 지위에 ‘균열’이 나타나고 있다고 진단하며, 글로벌 투자자들이 자산을 다른 통화로 다변화하려는 움직임이 장기적으로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2025년 7월 29일, 로이터 통신 보도에 따르면 나카소 전 부총재는 “달러를 대체할 만한 통화가 당장 존재하지는 않지만, 지난 4월 ‘해방의 날(Liberation Day)’ 직후 시장이 보여준 급격한 자금 유출은 달러 무적론에 금이 가고 있음을 시사한다”라고 말했다.
달러 패권의 현주소와 ‘해방의 날’ 충격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4월 2일 대규모 관세 부과 방안을 발표하면서 ‘해방의 날’이라고 선언하자, 일부 투자자들은 미국 자산에서 대거 이탈했다. 당시 시장 불안은 미 달러화에 대한 신뢰 약화를 반영했으며, 이후 트럼프 대통령이 일본과의 무역 합의를 체결하면서 관세를 일부 완화해 진정 국면에 들어갔다.
BOJ의 통화정책 전망
나카소 전 부총재는 “미국 관세의 실물경제 충격이 어느 정도인지 불확실성이 해소되면, BOJ는 금리인상을 재개할 가능성이 높다”라며, 명목 금리가 올라가더라도 실질 금리는 여전히 음(−)의 영역에 머무를 것이므로 일본의 통화 여건은 완화적 기조를 유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물가 상방 위험
그는 “일본 기업들이 임금과 가격 인상에 적극적이어서 헤드라인 지수보다 더 빠른 속도로 생활밀착형 식료품 가격이 오르고 있다”라며, 인플레이션 기대가 목표치를 초과할 위험을 경고했다.
“통화정책은 물가 상승 리스크에도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하며, 타이밍을 놓치면 뒤처질 수 있다.” — 나카소 히로시
BIS·G7의 역할
나카소 전 부총재는 2008년 리먼 브러더스 사태 이후 달러 유동성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BIS(국제결제은행) 시장운영위원회 의장으로서 달러 스왑 라인 구축에 참여한 경험을 언급했다. 그는 “향후 위기 상황에서도 BIS와 G7 같은 다자 협의체가 핵심 역할을 할 것”이라며, 국제 공조의 중요성을 재확인했다.
달러 패권 약화의 구조적 배경
나카소 전 부총재는 “글로벌화가 미국 경제에 가져온 피해를 트럼프 행정부가 인정하면서 기존 자유무역·다자주의 질서를 자국 우선 체제로 대체하려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러한 정책 전환은 세계 경제를 다극화·분절화(fragmantation) 시키고 있으며, 달러의 지위에도 장기적 도전을 가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알아두면 좋은 용어
BIS는 60여 개 중앙은행이 회원으로 있는 국제 금융기구로, 위기 시 통화 스왑을 조정하고 금융 규제를 논의한다. G7은 미국·일본·독일 등 7개 선진국으로 구성된 협의체다. ‘달러 스왑 라인’은 두 중앙은행이 자국 통화를 담보로 달러를 맞교환해 시중은행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제도다.
시장 영향 및 전망
이번 발언은 외환시장 참가자들에게 달러 일극체제의 구조적 변화 가능성을 다시 환기시켰다. 실제로 4월 이후 일부 중앙은행과 국부펀드는 유로화·위안화·엔화를 소폭 확대 편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글로벌 준비통화 포트폴리오의 미세 조정이 향후 5~10년에 걸쳐 점진적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평가한다.
나카소의 이력
나카소 히로시는 2013년부터 2018년까지 BOJ 부총재를 역임했으며, 현재 일본 다이와연구소 이사장으로 활동 중이다. 40년간 금융시장·국제협력 부문을 담당해 온 그는 정책당국과 시장 양측에서 신뢰를 얻고 있다.
전문가 시각
기자는 나카소 전 부총재의 발언이 단순한 경고를 넘어, 정책 공백을 최소화하려는 일본 금융당국의 메시지일 가능성에 주목한다. 일본은 2024년 이후 두 차례의 소폭 금리 인상에도 불구하고, 엔화 약세와 수입물가 상승이 소비자물가를 자극하는 상황이다. BOJ가 시장 신뢰를 유지하려면, 투명한 커뮤니케이션과 ‘포워드 가이던스’ 강화가 필수적이다. 또한 달러 패권 균열을 현실로 받아들인다면, 아시아 역내 통화 간 협력체제(RCEFRegional Currency Exchange Framework) 같은 새로운 안정망 구축 논의도 속도를 낼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