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로이터] 유로화가 미국과 유럽연합(EU)의 새 무역 합의에 대한 시장의 실망감 속에서 전날 기록한 급락분을 만회하지 못한 채 약세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29일 아시아 시장에서 유로/달러 환율은 소폭 상승했으나, 전날 1.3% 하락하며 두 달 만에 가장 큰 일일 낙폭을 기록한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2025년 7월 29일, 인베스팅닷컴의 보도에 따르면, 투자자들은 이번 합의가 EU 경제의 성장 전망을 ‘실질적으로’ 개선하지 못할 것이라는 판단을 내리고 있다. 프랑스 정부는 이번 잠정 합의를 ‘유럽에 있어 암흑의 날’이라고 표현하며 15%라는 관세율이 사실상 미국 측에 유리하게 설계됐다고 비판했다.
프랑스의 강경한 반발에 이어 독일의 프리드리히 메르츠(Friedrich Merz) 연방총리도 ‘합의된 관세 구조로 인해 독일 제조업과 수출업이 상당한 손실을 입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독일은 EU 최대 수출국이자 유로존 성장의 견인차로 꼽히는 만큼, 메르츠 총리의 발언은 시장의 불안 심리를 더욱 자극했다.
실제로 유로존 국채 금리가 동반 하락하면서 투자자들의 위험회피 성향이 강화됐다. 10년물 독일 국채 수익률은 장중 8bp(베이시스포인트) 가까이 급락해 0.62%선으로 내려앉았고, 같은 만기 프랑스 국채 역시 0.95%까지 후퇴했다. 통화정책 기대가 약해지는 가운데 채권 매수세가 가속화된 셈이다.
유로/달러는 오전 11시 30분(싱가포르 시간) 기준 전일 대비 0.07% 오른 1.1594달러에 거래됐다. 하지만 여전히 1.17달러대 중반에서 1.15달러대 초반으로 떨어진 전날 변동 폭을 전부 회복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평가다.
이번 합의는 ‘헤드라인 관세(headline tariff)’라는 표현으로 요약된다. 헤드라인 관세란 제품별 세부 품목이 아니라 전체 교역액을 기준으로 설정되는 관세를 의미한다. 투자은행들은 ‘미국의 평균 15%~20% 관세 부과 방침이 4월에 발표된 광범위한 10% 기준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라고 분석했다. 이에 따라 유럽 기업들은 미국 시장 접근 비용이 높아져 수익성 악화가 예상된다.
국가별 논란과 별개로, 외환시장은 달러 강세로 즉각 반응했다. 달러 인덱스는 전 거래일 1% 급등한 뒤 98.67에서 보합권을 유지하고 있으며, 영국 파운드/달러는 1.3349달러로 2개월래 최저치를 기록했다. 엔화는 달러당 148.49엔으로 소폭 강세를 보였다.
Ray Attrill 호주국립은행(NAB) 외환리서치 총책임자는 ‘표면적으로는 상대적으로 좋은 뉴스처럼 들리지만, 절대적인 의미에서는 앞으로 몇 분기 동안 유로존 성장에 부정적’이라며 ‘프랑스뿐 아니라 독일 정부도 수출 타격을 우려하고 있어 투자심리가 빠르게 얼어붙었다’고 지적했다.
맥쿼리그룹의 글로벌 외환·금리 전략가 티에리 위즈먼(Thierry Wizman)은 ‘달러 강세는 이번 합의가 미국에 더 유리하게 짜였다는 인식뿐 아니라, 미국이 동맹과 재협상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는 사실을 반영한다’고 분석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개별 협정 없이 버티는 교역 상대국에는 15%~20%의 관세가 곧 적용될 것’이라고 밝혀, 향후 글로벌 교역 환경이 더욱 불확실해질 가능성을 시사했다.
원자재 통화도 부진했다. 호주 달러는 0.6518달러로 0.05% 하락했고, 뉴질랜드 달러는 0.5972달러 부근에서 보합세를 유지했다. 역외 위안화(USD/CNH)는 7.1813위안에 근접해 변동폭이 제한됐다.
한편, 29일 스톡홀름에서는 미·중 간 고위급 경제회담이 5시간 넘게 진행됐다. 양측은 관세전쟁으로 불거진 구조적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휴전 기간을 3개월 연장하는 방안을 논의했으나 구체적인 합의안 발표는 없었다.
무역 이슈와 동시에 시장의 시선은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와 일본은행(BOJ)의 이번 주 통화정책 회의로 옮겨가고 있다. 두 기관 모두 기준금리를 동결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정책결정자 발언의 ‘톤’과 ‘시점’이 향후 통화 경로를 가늠할 핵심 변수로 꼽힌다.
용어 풀이와 시장 영향
달러 인덱스(Dollar Index)는 미국 통화의 상대 가치를 측정하기 위해 6개 주요 통화(유로, 엔, 파운드, 캐나다 달러, 스웨덴 크로나, 스위스 프랑)를 가중 평균한 지표다. 지수가 상승하면 달러 가치가 전반적으로 강세임을 뜻한다. 최근 100선 근처까지 상승한 것은 글로벌 투자자들이 안전자산 성격의 달러 현금 보유를 늘리고 있음을 반영한다.
역외 위안화(Offshore Yuan)는 중국 본토 외 지역, 주로 홍콩과 싱가포르 시장에서 거래되는 위안화를 말한다. 본토 위안화(CNY)보다 환율 변동성이 높아 글로벌 투자자들의 심리를 민감하게 반영한다. 7.18위안대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미·중 회담에도 불구하고 불확실성이 여전함을 시사한다.
시장 전문가들은 ‘올해 하반기 유럽의 경기 반등이 지연될 경우, 유로/달러 환율이 1.12달러선까지 추가 하락할 수 있다’고 진단한다. 특히 독일 제조업지수가 부진하고, 프랑스의 정치적 반발이 커질 경우 ECB(유럽중앙은행)에 대한 완화적 정책 기대가 커져 유로 약세를 부추길 수 있다는 설명이다.
반면 미국의 경우, 견고한 소비와 서비스 부문 고용 호조가 이어지면서 연준이 ‘더 오래, 더 높은’ 금리를 유지할 여지가 있다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이러한 정책 괴리는 중장기적으로도 달러 우위 구도를 지지할 가능성이 크다.
결과적으로, 미·EU 무역합의는 표면적으로 양측의 긴장 완화를 의미하지만, 내재된 관세 구조가 EU 수출경제의 부담을 키우는 만큼 중장기적으로는 유로존 성장률을 0.2~0.3%p 끌어내릴 수 있다는 분석이 제시되고 있다.
외환시장 참가자들은 Fed·BOJ 회의 결과 발표 전까지 관망세를 유지하되, 1)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집행 속도, 2) 프랑스·독일 등 유럽 핵심국의 대응 수위, 3) ECB의 추가 부양책 가능성 등을 중심으로 매매 전략을 조정할 것으로 예상된다.
※ 본 기사는 로이터 원문을 번역·편집한 것으로, 모든 수치는 작성 시점 기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