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GRAR, Italy – 유로화 강세와 경기 둔화라는 이중 압박에 시달리던 이탈리아 발폴리첼라(Valpolicella) 지역의 와인 생산자들이 미국발 관세 변수까지 떠안게 됐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이 28일(현지시간) 타결한 무역 합의문에서 와인·주류 부문이 면세 목록에서 제외되면서 업계 전반에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
2025년 7월 28일, 로이터 통신의 보도에 따르면 미국은 EU산 대부분의 상품에 대해 15%의 관세를 부과하기로 했으나 와인과 증류주에 대한 최종 결정은 아직 미뤄진 상태다. EU 집행위원회 고위 관계자는 “관세 면제 범위를 두고 추가 협상이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발폴리첼라 지역 생산자들은 달러 가치 하락이라는 구조적 악재가 이미 수출 채널을 흔들고 있다고 토로한다. 올해 들어 달러는 유로 대비 12% 이상 가치가 하락해, 미국 소비자 입장에서는 유럽산 와인이 상대적으로 비싸졌다. 이 상태에서 관세까지 덧붙을 경우 가격 경쟁력은 더 악화될 전망이다.
“상황이 이미 상당히 좋지 않다.”
1898년 설립된 Sartori 와이너리의 4세 경영인 안드레아 사르토리(Andrea Sartori) 회장은 “과거 위기 국면에서도 확인했듯, 경제가 위축되면 와인 소비는 정체되기 마련”이라며 “이번 관세가 도미노처럼 와인 무역 전반을 흔들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미국은 이탈리아 와인·주류 업계의 최대 수출 시장이다. 업계 단체인 페데르비니(Federvini)에 따르면 2024년 기준 미국 시장 매출은 20억 유로(약 2억3,000만 달러)로, 전체 해외 매출의 4분의 1을 차지한다. UIV(Unione Italiana Vini) 회장 람베르토 프레스코발디(Lamberto Frescobaldi)는 “15% 관세가 실제로 부과될 경우 향후 12개월 동안 3억1,700만 유로(약 3억7,263만 달러)의 매출 손실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내수 환경도 밝지 않다. 이탈리아 통계청(ISTAT)은 올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0.6%로 전망했다. 다만 사르토리 회장은 “소득 탄력성이 낮은 고급 와인 부문은 상대적으로 방어력이 높다”며 고급 제품군인 아마로네(Amarone)를 예로 들었다.
“아마로네는 이미 높은 가격대에 형성된 프리미엄 와인이어서 관세 충격이 비교적 제한적일 것이다. 다만 주요 수출량을 차지하는 발폴리첼라(Valpolicella) 일반 와인과 리파소(Ripasso)는 중간 가격대라 가격 인상에 민감하다.”
사르토리 회장은 “해당 제품군에 대한 관세 부과는 매출 감소로 직결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 용어 풀이
• 아마로네(Amarone) – 발폴리첼라 지역에서 재배한 포도를 햇볕과 바람에 수주 간 건조한 뒤 양조하는 고알코올·고농축 레드 와인이다. 장기 숙성에 적합해 희귀성과 품질을 동시에 인정받으며 ‘발폴리첼라의 보석’으로 불린다.
• 리파소(Ripasso) – 아마로네 양조 후 남은 포도 찌꺼기를 일반 발폴리첼라 와인에 다시 첨가해 재발효하는 방식으로 만든다. 풍미와 복합성이 한층 깊어지지만 아마로네보다는 합리적인 가격대여서 글로벌 시장에서 대중적 수요가 높다.
• 페데르비니(Federvini) – 이탈리아의 와인·증류주·식초 생산자 연합회로, 국내외 시장 통계를 집계하고 정책 대응 창구 역할을 맡는다.
• UIV(Unione Italiana Vini) – 1895년 창립된 이탈리아 최대 와인 생산자 협회로, 회원사는 1,500곳 이상이다.
🔍 업계 관전 포인트
와인 업계 관계자들은 향후 EU·미국 간 협상 결과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관세가 현실화될 경우 업체들의 미국 시장 전략은 가격 인상 → 물량 감축 → 브랜드 포지셔닝 재정립이라는 수순을 밟을 가능성이 크다. 특히 달러 약세가 지속된다면 이중 부담으로 인해 중소 와이너리의 채산성 악화가 심각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금융·통화 요인도 변수다. 현재 유로존의 물가 둔화와 ECB(유럽중앙은행)의 제한적 통화 완화가 맞물릴 경우, 환율 변동성이 한층 커질 여지가 있다. 업계 전문가는 “달러당 1.15유로 수준이 장기화되면 미국 수입업체들이 칠레·아르헨티나 등 대안 산지를 확대할 공산이 크다”고 내다봤다.
한편 일부 이탈리아 생산자들은 미국 외 시장 다변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사르토리 회장은 “아시아·중동 고소득 소비층을 공략해 리스크 헤지(위험분산)를 강화할 것”이라며, “브랜드 스토리텔링과 지속가능성(탄소 저감·친환경 포장)을 내세운 프리미엄 전략”을 병행하겠다고 전했다.
관세 협상이 최종 타결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전망이다. EU 집행위 관계자는 “9월 중 추가 라운드를 열어 와인·주류 항목의 관세율을 조정할 가능성을 검토 중”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발폴리첼라를 포함한 이탈리아 와인산업의 하반기 실적은 협상 테이블의 향방에 크게 좌우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