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D.C.—미국 정부가 중국에 대한 첨단 기술 수출 규제를 잠정 보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올해 안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을 성사시키고, 장기화된 무역전쟁을 완화하기 위한 협상 동력을 확보하려는 의도와 맞물려 있다.
2025년 7월 28일, 인베스팅닷컴의 보도에 따르면 미 상무부 산업·안보국(Bureau of Industry and Security, BIS)은 최근 수개월 동안 중국을 대상으로 강력한 수출 통제 조치를 자제하도록 지시받았다. 복수의 전·현직 관리가 파이낸셜타임스(FT)에 밝힌 바에 따르면, 이번 조치는 “진행 중인 고위급 무역협상에 걸림돌이 될 수 있는 요인을 최소화“하기 위한 전략적 판단이다.
양국은 28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경제 담당 수석협상단 회의를 열어, 2018년 이후 이어진 관세 공방·보복 조치 등 누적 갈등 현안을 집중 논의할 예정이다. FT는 미국 측 대표단이 “희토류(rare earth elements)·자석(magnets)·첨단 반도체를 포함한 공급망 안정성”을 핵심 의제로 제시했다고 전했다.
규제 완화의 직접적 수혜 기업: 엔비디아
세계적 GPU(그래픽처리장치) 제조사인 엔비디아(NASDAQ: NVDA)는 이번 완화 조치의 가장 가시적인 수혜자로 꼽힌다. 엔비디아는 이달 초, 자사 H20 GPU를 중국 시장에 재판매하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해당 제품은 4월 트럼프 행정부가 국가안보를 이유로 수출을 차단했던 대표적 인공지능(AI) 칩셋이다.
GPU(Graphics Processing Unit)는 복잡한 연산을 병렬로 처리해 고해상도 그래픽·AI 모델 학습에 필수적이다. 중국 빅테크 기업과 연구소들은 미국산 GPU 의존도가 높아, 수출 통제 여부가 곧 AI 경쟁력으로 직결된다.
“이러한 완화는 AI 분야에서 미국의 경제·군사적 우위를 저해할 수 있는 전략적 오류”라며, 전 백악관 국가안보부보좌관 매트 포팅거를 포함한 20명의 안보 전문가·전직 관리가 28일 상무부 하워드 루트닉 장관에게 공동서한을 발송할 예정이라고 FT는 전했다.
수출 규제와 무역협상의 함수
미국 상무부 BIS는 수출 통제 규정(Export Administration Regulations, EAR)을 통해 첨단 반도체·AI·양자컴퓨팅·항공우주 등 민감 기술을 전략물자로 분류, 행정명령으로 수출을 제한해 왔다. 그러나 이번처럼 협상 기간 중 규제를 유예하는 전례는 극히 이례적이다.
관가 안팎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11월 대선 국면을 앞두고 “미·중 관계 개선 및 증시 부양“이라는 복합 목표를 겨냥해, 일시적으로 ‘당근 정책’을 택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전문가들은 “안보 논리가 후순위로 밀릴 경우, 장기적 기술 패권 경쟁에서 미국이 타격을 입을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
용어 해설
• 희토류(Rare Earth Elements) : 원소주기율표 57~71번 란타넘족과 스칸듐·이트륨을 포함한 17개 원소를 말한다. 스마트폰·전기차·국방장비에서 자석·배터리·레이저 부품으로 사용되며, 중국이 글로벌 공급의 약 60%를 차지해 전략적 중요도가 크다.
• 자석(Magnets) : 네오디뮴 등 희토류를 극소량 합금해 제조한 고성능 영구자석을 가리킨다. 전기차 모터·풍력 터빈·미사일 유도 시스템 등 첨단 산업 전반에 필수다.
• GPU : CPU(중앙처리장치)와 달리 대량의 데이터를 동시에 계산하며, 딥러닝·3D 그래픽 렌더링 등에 최적화돼 있다. AI 경쟁력 척도이자 클라우드·데이터센터의 핵심 부품이다.
전망과 평가
현재로서는 규제 유예가 어느 범위에서, 얼마나 지속될지가 관건이다. FT는 “워싱턴 내부에서도 국가안보 대 무역협상이라는 정책 우선순위를 둘러싼 논쟁이 확산되는 중”이라고 전했다. 스톡홀름 협상의 결과가 구체적 관세 인하·투자 자유화로 이어질 경우, 금융시장에서는 일부 낙관론이 힘을 얻을 수 있다.
반면, 전문가들은 “전략물자 통제가 느슨해질 경우, 중국의 AI·반도체 자급률이 오히려 가속화되어 미국 산업에 역풍“이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는다. 특히 미국 의회 내 초당파적 대중 강경파들은 BIS의 조치가 ‘안전장치 없는 양보’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향후 미·중 정상이 실제로 회동한다면, 반도체 장비·클라우드 컴퓨팅 서비스·바이오 기술 등 추가 영역에서 규제 완화 카드가 재등장할지 주목된다. 이와 관련해 시장 참여자들은 “트럼프 행정부의 정치 일정이 협상 속도의 변수가 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요컨대, 이번 조치는 단순히 수출 허가서 승인·보류의 문제를 넘어, 글로벌 공급망 재편·기술 패권 경쟁·차기 대선이 얽힌 다층적 이슈임이 드러났다. 미국과 중국은 상호 의존적인 경제 구조를 가진 만큼, 협상의 성패가 두 나라뿐 아니라 세계 경제에도 중대한 파급효과를 미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