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15% 일괄 관세로 美와 타협…‘최소한의 수용’ 선택

LONDON/브뤼셀—유럽연합(EU)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와의 긴장 속에 결국 미국에 유리하게 기울어진 15% 일괄 관세에 합의하며 자국 요구를 관철하지 못한 채 타협했다.

2025년 7월 27일, 인베스팅닷컴의 보도에 따르면 이번 합의는 27개 회원국으로 구성된 EU가 ‘경제 대국’으로서 미국이나 중국과 대등하게 맞선다는 포부에 차가운 현실을 안긴 사례로 평가된다.

그동안 EU는 스스로를 ‘수출 초강국’이자 규칙 기반(global rules-based) 무역 시스템의 수호자로 묘사해 왔다. 그러나

“결국 협상 지렛대가 부족했다”

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관세전쟁 회피를 위한 ‘차악(次惡)’ 선택을 하게 됐다는 것이 외교가의 중론이다.

이번에 결정된 15% 관세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불과 며칠 뒤 발효를 예고했던 30% ‘보복 관세’보다는 훨씬 낮다. 그 결과 유럽이 경기 침체(recession)를 피할 가능성은 커졌지만, 경기 둔화는 불가피하다는 분석이다.

유럽중앙은행(ECB)은 지난달 두 가지 관세 시나리오를 제시하며, 15% 관세는 올해 EU 경제성장률을 0.5~0.9%로 낮출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는 무역 갈등이 전혀 없을 경우 예상됐던 1%대 초반 성장률에 비해 뒤처지는 수준이다.

EU-US Tariff Chart

트럼프 2.0 시대 이전, 글로벌 평균 관세가 1.5% 수준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현재 15%는 상상하기 힘들었던 ‘뉴 노멀’로 자리 잡았다. 영국이 올해 5월 미국과 10% 관세로 타결했을 때만 해도, EU 협상단은 “우리는 더 나은 조건을 얻을 수 있다”며 ‘제로 대 제로(zero-for-zero)’를 고집했으나 결국 현실에 직면했다.

용어 설명: ‘제로 대 제로’ 관세란 양측이 서로 모든 상품에 대해 관세를 완전히 철폐하자는 제안으로, 전통적으로 자유무역협정(FTA)의 이상적 목표로 간주된다.

EU는 협상 첫 주 만에 ‘10%도 최선’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고, 이후 일본과 미국이 이미 합의한 15% 기준선을 받아들이는 수순을 밟았다. 한 유럽 수도의 고위 관계자는 “EU가 미국보다 더 큰 협상력(leverage)을 갖고 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었다”고 전했다.

협상 타결 압력은 핀란드 Nokia통신장비, 스웨덴 SSAB철강수출 지향적 기업에서 시작됐다. 이들 기업은 “불확실성이야말로 가장 큰 비용”이라며 조속한 타결을 EU 집행위원회에 촉구해 왔다.

“나쁜 패를 받고도 그나마 최선의 한 수를 둔 것”

이라는 EU 외교관의 평가처럼, 이번 합의에는 상호주의(reciprocity)보다 불확실성 해소가 더 큰 비중을 차지했다.

‘비대칭(asymmetry)’이 남긴 흔적

합의문이 구체화될수록 EU와 미국 간 ‘비대칭’은 더욱 뚜렷해졌다. EU는 보복 관세 계획을 철회하고 6000억 달러(약 6000억 달러) 규모의 對미국 투자를 약속했지만, 투자 시기·방식 등 세부 사항은 불투명하다.

EU가 검토했던 932억 유로 상당의 보복 패키지는 EU의 對미국 상품수지 흑자(약 2000억 유로)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서비스 부문(작년 미국 750억 달러 흑자)을 겨냥한 ‘대(對)강제 조치(anti-coercion)’도 논의됐으나, 넷플릭스·우버·마이크로소프트미국산 디지털 서비스 의존도가 높아 공감대를 얻지 못했다.

배경 설명: ‘대강제 조치’란 특정 국가가 무역 압박을 가할 때, 이를 상쇄하기 위해 서비스·투자·공급망 등 다양한 영역에서 보복 수단을 발동하는 EU의 잠정적 법적 장치를 말한다.

Digital Services Dependency

향후 관건은 EU가 그동안 ‘구호’로만 외쳤던 무역 다변화(diversification)산업 경쟁력 강화를 얼마나 빠르게 실천하느냐 여부다. 전문가들은 “환율·친환경 규제·기술표준 등 내부 장애를 제거해야 아시아·남미와의 FTA 확대도 의미가 있다”고 지적한다.

독일 BGA 도매·수출협회는 이번 합의를 “회원사 다수에게 ‘존립 위협’이 되는 뼈아픈 절충”으로 규정했다. BGA의 디르크 얀두라 회장은 “지금이야말로 유럽이 전략적 대비를 강화해야 할 때”라며 “세계 주요 제조강국과 신규 무역협정을 맺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문가 시각 및 향후 전망

시장 전문가는 “15% 관세는 단기적으로 유럽 제조업 마진을 악화시킬 수 있으나, 달러 강세가 완충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분석한다. 동시에, 미국 또한 고관세로 수입물가 상승에 직면할 가능성이 있어 협정 지속성이 시험대에 오를 전망이다.

현재 합의문에는 3년 주기 재검토(claw-back clause) 조항이 잠정 포함돼 있어, 양측은 글로벌 경기와 공급망 재편 상황에 따라 점진적 관세 인하를 협의할 여지를 남겼다. 그러나 구체적 조건이 공개되지 않아, 실효성은 미지수다.

결론적으로, EU는 ‘수출 초강국’으로서의 자신감을 근거로 강수를 두려 했으나, 경제 규모 대비 협상 지렛대의 한계와 내부 정치적 분열로 인해 ‘최소한 감내 가능한 선택’에 머물렀다. 향후 산업정책·공급망 안정화·통상 규범을 둘러싼 구조적 과제에 직면할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