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왜 다시 'AI 냉전'인가
2025년 여름, 중국은 '세계 AI 행동계획(Global AI Action Plan)'을 발표하며 자율 규범 제정 구상을 제안했고, 미국은 불과 사흘 앞서 자체 AI 행동계획을 선포하며 기술 패권을 명문화했다. 불과 며칠 차이로 공개된 두 문서는 이제 AI 거버넌스 논쟁이 단순한 연구·산업 이슈를 넘어 지정학 질서를 재편할 거대 변수가 되었음을 공식화한다. 본 칼럼은 미·중 양국이 각각 주도하고 있는 'AI 블록화(Bloc-fication)' 현상을 장기 시계열로 조망하고, 그 여파가 향후 10년간 미국 주식·경제 구조를 어떻게 바꿀지를 심층적으로 분석한다.
1. 글로벌 AI 생태계, '두 개의 표준'로 갈라지는가
종전까지 AI 산업의 핵심 쟁점은 '모델을 얼마나 크게, 얼마나 빠르게 키우느냐'였다. 그러나 2023년 반도체 수출 규제 이후 초점은 '누가 누구와 협력할 수 있느냐'로 한 자리 이동했다. 2025년 7월, 중국이 제안한 글로벌 AI 협력기구(WAICO)는 명목상 다자주의를 표방하지만, 일대일로 참여국을 자연스럽게 중국 진영으로 흡수하려는 의도가 뚜렷하다. 반면 미국은 첨단 반도체 수출 규제 → 동맹 중심 생태계 구축이라는 선형 전략을 고수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표준·규제·칩·데이터·자본이라는 다섯 축에서 이중화(dual-track)가 굳어지는 초기 방점을 목도하고 있다.
아래 표는 두 진영의 핵심 파트너와 협력 장치를 요약한 것이다.
범주 | 미국 주도 블록 | 중국 주도 블록 |
---|---|---|
표준·규제 | NIST AI Risk Framework, EU AI Act, OECD 가이드라인 | WAICO, CAC(중국인터넷관리국) 심사제 |
반도체 공급 | Nvidia, AMD, TSMC Arizona, 삼성 Austin | 화웨이 Ascend, SMIC, YMTC |
데이터 거버넌스 | 클라우드협약(US-EU), CLOUD Act, IPEF 디지털 규범 | 데이터3법, 사이버보안법, 국경 간 데이터안전평가 |
자본·보조금 | CHIPS&Science Act, IRA | 제14차 5개년 계획 AI펀드, 국가반도체대기금 |
2. 반도체·서버·전력: 실물 인프라가 금융시장에 투사되는 메커니즘
2-1. 엔비디아 vs 화웨이 CloudMatrix 384
엔비디아는 2024년부터 'GB200-NVL72'로 대표되는 초대형 GPU 랙을 전 세계 하이퍼스케일러에 공급하며 시가총액 4조 달러 고지를 밟았다. 그러나 2025년 WAIC 현장에서 화웨이가 공개한 'CloudMatrix 384'는 집적도·통신지연·전력사용량 등에서 일부 벤치마크를 능가했다. 미국 투자은행들은 여전히 CUDA 생태계를 이유로 엔비디아의 우위를 유지하나, 중국 내 AI 학습 수요의 30% 이상을 토종 칩이 대체할 경우, 엔비디아 매출 추정치는 2027년 기준 최대 12% 하향될 수 있다는 시나리오 분석이 등장했다.
2-2. 전력 인프라와 테슬라의 '그리드 동맹'
AI 트레이닝 1토큰당 소비 전력은 평균 0.0003kWh, LLM 1회 추론은 0.01kWh 수준이다. 미국 전력청(NERC)은 2030년 AI 관련 전력 수요가 500TWh(테라와트시)에 달할 것으로 추정한다. 이는 2022년 美 주거용 전력 소비량의 절반 규모다. 테슬라 에너지, 넥스트에라(NEE), 듀크 에너지(DUK) 등 전력주가 'AI 인프라 전력 수혜'라는 태그로 재평가되는 이유다.
2-3. 미국 제조 리쇼어링의 자본 비용
인텔·삼성·TSMC의 미국 내 신규 팹 건설 CAPEX는 2021~2027년 누적 3500억 달러로 추산된다. 문제는 미국 내 인건비·전력·허가 기간 때문에 웨이퍼 당 제조원가가 대만 대비 2배 가까이 높다는 점이다. 정부 보조금(약 39% 보전)과 풍부한 증시 유동성이 괴리율을 메우고 있지만, 금리 5% 장기화 시 투자 회수기간은 평균 9년에서 14년으로 늘어난다. 이는 나스닥 반도체(SOX) 지수의 밸류에이션 프리미엄을 압박할 수 있다.
3. 거버넌스·법제 변화가 주식시장에 미치는 장기 파급
미국이 주도하는 AI Safety Summit(서울·11월)과 중국이 주도하는 글로벌 AI 행동계획은 향후 국제 회계·감사·GDPR-유사 규칙과 유사한 'AI 회계 감사 표준'을 각기 다르게 정의할 가능성이 크다. 만약 표준이 호환되지 않는다면, 대형 멀티나셔널 기업(MNC)은 이중 컴플라이언스 비용을 감수해야 한다. BCG는 포춘 글로벌500대 기업 기준 연간 0.7%P의 영업이익률 희석을 전망했다.
기업의 AI CAPEX 회수모델도 달라진다. 미국표준 채택 시 퍼블릭 클라우드 + API 판매로 인건비·GPU 비용을 분산할 수 있지만, 중국표준 채택국 진출 시 온프레미스 + 데이터 국지화 이슈가 발생한다. 이는 AWS·애저·구글클라우드 등의 해외 매출 성장률에 서진(西進) 둔화를 야기하고, 화웨이·알리클라우드 등 로컬 사업자의 내수 방어 효과를 강화한다.
4. 투자 구도: '양극화 vs 중간 지대'
장기적으로 글로벌 투자자는 세 가지 포트폴리오 전략을 검토해야 한다.
- 진영 베팅(Bloc Bet): 미국·중국 핵심 종목을 동시에 편입하되, 상호 제재 리스크를 헷지할 수단(예: 현지 상장 ETF, 차액결제선물환)을 병행한다.
- 공급망 중간지대(Middle-Ground): '바운더리 셀프(Boundary Self)' 국가—멕시코·베트남·인도·동유럽—에 위치한 부품·EMS 기업으로 분산 투자한다.
- 인프라·전력 스핀오프: AI 전력 부하 증가로 수혜가 예상되는 재생에너지·고효율 전력 반도체·HVDC 케이블 업체에 장기 포지션을 취한다.
특히 HVDC(초고압직류) 생산사 프리즈미안(PRYMY.IT)·넥선스(NEX.PA), SiC 웨이퍼 업체 울프스피드(WOLF), 그리고 클라우드 특화 전력 REIT 이퀴닉스(EQIX) 등이 'AI 전력 시대의 인프라 퍽(Infra-play)'로 주목된다.
5. 결론: 10년 로드맵과 정책 감시 포인트
① 체계적 복수표준화(2025~2027)
· 미 의회: 'AI 기업 책임법(가칭)' 상정 예정, 모델 투명성 의무화
· 중국: WAICO 정착 + 다자 AI 펀드 출범
② 기술·자본 이탈 가속(2027~2030)
· 미국 팹 가동률 80% 이상 목표, 클라우드 해외 매출 둔화
· 중국 반도체 자급률 40% → 60% 확대, 서방 IP 라이선스 비용 급감
③ 규범 경쟁 균형기(2030~2035)
· 일부 중립국, 복수 표준 브리지(Bridge) 기업 등장
· 글로벌 기업, AI 모듈화 아키텍처로 규정 리스크 완화
투자자 관점에서 핵심 체크포인트는 반도체 제조비 지원법 연장 여부, 중국 AI 칩 성능 진척, 데이터 로컬라이제이션 의무 확대, 그리고 전력 인프라 투자세액공제(ITC) 기간이다. 필자는 표준 이중화는 불가피하지만, 글로벌 자본시장은 결국 기술상호운용 계층(API, ML-Ops)에서 타협점을 찾을 것이라 전망한다. 즉, 2030년대 중반에는 '다중표준 위의 단일 인터페이스'가 등장해 현재의 극단적 블록화를 일정 부분 해소할 가능성이 높다.
그때까지 투자자는 1) 인프라 실체가 있는 자산, 2) 규제 헤징 구조가 명확한 종목, 3) 공공-민간 파트너십 참여 기업이라는 세 필터로 포트폴리오를 구축해야 한다. 자본이 기술을 이기지 못하지만, 정책은 곧 투자 위험(Policy Asymmetric Risk)이란 명제를 잊지 말아야 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