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주 항소법원이 2022년 5월 버펄로 슈퍼마켓에서 발생한 인종증오 범죄와 관련해 페이스북·인스타그램·유튜브·레딧 등 주요 소셜미디어 기업이 법적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고 판결했다다. 총 10명의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희생된 대형 참사였지만, 법원은 연방 통신품위법 제230조(Section 230)가 온라인 플랫폼을 사용자 콘텐츠로부터 보호한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2025년 7월 25일, 인베스팅닷컴 보도에 따르면 뉴욕주 로체스터 소재 주(州) 항소법원(Appellate Division)은 3 대 2로 하급심 결정을 뒤집고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플랫폼 설계 결함”을 주장한 유족·생존자 측의 청구를 기각하며, 해당 기업들이 연방법이 보장하는 면책 특권을 누릴 자격이 있다고 판시했다.
이번 소송에는 메타(Meta Platforms) 산하 페이스북·인스타그램, 알파벳(Alphabet) 산하 유튜브, 아마존(Amazon) 산하 트위치(Twitch) 외에도 레딧(Reddit), 스냅(Snap), 디스코드(Discord), 4chan 등 총 10여 개 플랫폼이 피고로 이름을 올렸다.
다수 의견을 작성한 스티븐 린들리(Stephen Lindley) 판사는 “플랫폼을 일일이 책임 대상으로 삼는다면 인터넷의 혁신과 경쟁 환경이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될 것”이라고 강조하며, “이로 인해 ‘오늘날 우리가 아는 인터넷’이 사실상 종말을 맞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 ‘섹션 230’(Section 230)이란?
해당 조항은 1996년 제정된 통신품위법(CDA)의 핵심 조항으로, 온라인 플랫폼이 이용자가 게시한 콘텐츠에 대해 법적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원칙을 담고 있다. 본래 취지는 ‘미국 내 인터넷 산업의 성장과 표현의 자유’를 보호하려는 것이지만, 대량 살상이나 허위정보 유포 사건이 잇따르며 최근 몇 년간 격렬한 사회·정치적 논쟁거리로 부상하고 있다.
반대 의견을 낸 트레이시 배니스터(Tracey Bannister)·헨리 노왁(Henry Nowak) 판사는 “플랫폼들은 자사 알고리즘으로 사용자가 좋아할 만한 콘텐츠를 실시간 푸시해 이른바 ‘강제 급식’(force-feeding) 구조를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두 판사는 강아지·요리 영상이든 백인 우월주의 영상이든 사용자 몰입도를 높이기 위해 공격적으로 추천된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실제 범행을 저지른 페이튼 젠드런(Payton Gendron)은 범행 전부터 각종 플랫폼에서 백인우월주의‧극단주의 콘텐츠를 소비·공유해 온 것으로 파악됐다. 그는 2023년 2월 뉴욕주 법정에서 인종 증오 살인·테러 혐의를 인정하고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선고받았으며, 연방 차원에서 사형까지 고려될 수 있는 추가 기소가 진행 중이다. 배심원 선정 절차는 2026년 8월로 예정돼 있다.
전문가 시각으로 볼 때, 이번 판결은 증오 범죄와 알고리즘 책임 논란을 둘러싼 미국 사법부의 최근 흐름을 보여 준다. 연방대법원도 2023년 ‘트위터·구글 테러지원 책임’ 사건에서 섹션 230 면책 범위를 넓게 인정한 바 있어, 하급심 역시 일관된 기조를 보인 셈이다. 다만 소수의견은 “플랫폼이 단순 호스팅을 넘어 능동적으로 콘텐츠를 증폭한다”는 점을 강조해, 향후 의회 차원의 법 개정 혹은 대법원 재검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이 나온다.
법률전문가 세라 리(Sarah Lee) 변호사뉴욕주는 “이번 결정은 피해자 구제보다는 산업 보호 논리가 우세했음을 보여 준다”며 “유가족 입장에선 민사적 책임 추궁이 사실상 봉쇄된 것과 다름없다”고 분석했다. 반면 인터넷 기업들은 “알고리즘 추천이 표현의 자유이자 산업 경쟁력”이라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미 의회는 2024년 이후 공화·민주 양당 모두 섹션 230 개혁안을 다수 발의했으나, 표현의 자유 vs. 플랫폼 책임이라는 가치 충돌로 번번이 난항을 겪었다. 금번 뉴욕주 판결 역시 입법과 사법의 파워게임에 불을 지필 가능성이 높다.
◆ 실무·투자 관점
미국 기반 소셜미디어·빅테크 기업들은 잠재적 손해배상 리스크를 한층 가볍게 되돌려 받았다는 평가다. 특히 메타·알파벳·아마존·스냅 등 주가는 면책 확정 여부에 민감하게 움직일 수 있다. 반대로, 규제 리스크는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에 현지 정책 변화를 모니터링해야 한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측면에서도 증오 발언‧폭력 조장 방지에 대한 주주 압력이 강화되고 있어, 기업들은 자율규제를 통한 ‘소프트 리스크’ 관리에 집중할 전망이다.
향후 전망으로, 피해자 측은 연방 대법원에 상고 가능성이 열려 있다. 다만 “섹션 230 면책은 거의 절대적”이라는 학계·업계 컨센서스가 있어, 실질적 판례 변화가 나오려면 의회의 입법적 가위질이 필요하다는 것이 법조계 일반적 관측이다.
이번 판결은 인터넷 시대 알고리즘·콘텐츠 책임론의 교차로에서, 표현의 자유라는 ‘구(舊) 가치’와 온라인 플랫폼이 창출한 ‘신(新) 위험’ 간 균형점이 어디인지 다시 한번 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