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법원, 320억 달러 시가총액 폭락 관련 인텔 주주 소송 기각

미국 캘리포니아주 북부 연방지방법원이 인텔(INTC)을 상대로 제기된 증권 사기 소송을 최종 기각했다. 원고인 주주들은 회사가 외부 고객용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부문의 어려움을 은폐해 주가가 급락했다고 주장했으나,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2025년 7월 24일, 인베스팅닷컴의 보도에 따르면 트리나 톰프슨(Trina Thompson) 판사는 21쪽 분량의 판결문에서 인텔이 2023 회계연도에 발생한 70억 달러(약 9조4,000억 원) 규모의 파운드리 영업손실을 너무 늦게 공시했다는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톰프슨 판사는 “원고의 불만을 이해한다”면서도, 인텔이 이미 2024년까지 파운드리 실적이 ‘가려질(obscured)’ 것이라고 공지했으므로 이전 공시는 허위·오해의 소지가 없었다고 판단했다. 또한 “시도와 오류(trial-and-error)를 수반하는 신규 사업 영역에서 미확정·미감사 데이터를 조기에 공개하면 투자자에게 더 큰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정책적 고려도 강조했다.


Intel Logo

2024년 8월 2일 인텔 주가는 하루 만에 26% 폭락해 시가총액이 320억 달러 증발했다. 전날 회사는 1만5,000명 이상 인력 감축과 배당 중단, 2025년까지 100억 달러 비용 절감 계획을 발표한 직후였다.

인텔은 2021년부터 아마존닷컴(AMZN), 퀄컴(QCOM) 등 외부 고객을 겨냥한 파운드리 사업부를 신설했다. 이는 파운드리(foundry)가 컴퓨터 설계사가 아닌 대형 반도체 공장(팹)을 보유한 업체가 다른 회사의 설계를 대신 제조해 주는 사업 모델임을 의미한다.

그러나 팹 증설·설비투자 비용이 불어나면서 2023년 70억 달러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톰프슨 판사는 “회사가 이미 ‘2024년부터 구체적 수치를 별도로 공개하겠다’고 예고한 만큼, 2023년 적자 규모를 늦게 알렸다고 해서 곧바로 사기 행위로 볼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잠정적·미감사 수치를 조기 공시했다면 투자자 혼란으로 이어져 회사와 시장에 더 큰 피해를 줄 수도 있었다.”
— 트리나 톰프슨 판사 판결문 중

법원은 이미 2025년 3월 1차 기각 결정을 내렸고, 이번에는 ‘각하 후 종결(dismissed with prejudice)’ 처분을 내려 주주들이 동일 사안을 다시 제소할 수 없게 했다.


주주 측은 인텔이 2024년 1월 25일부터 8월 1일 사이 주가를 인위적으로 부풀렸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해당 기간 회사가 공개한 정보는 신규 사업의 위험성과 불확실성을 꾸준히 포함하고 있었다”고 봤다.

로펌 측은 24일(현지시간) 논평 요청에 즉각 응답하지 않았다. 인텔 및 자문 변호인단 역시 답변을 내지 않았다.

시장 경쟁 구도도 거론됐다. 인텔은 최근 AI 수요 확대로 반사이익을 누리는 엔비디아(NVDA), AMD(AMD), 삼성전자(005930.KS), 대만 TSMC 등과 경쟁에서 열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실제로 인텔은 2024년에 188억 달러 순손실을 기록, 1986년 이후 첫 연간 적자 전환이라는 불명예를 안았다.

이번 사건의 공식 명칭은 ‘In re Intel Corp. Securities Litigation’이며, 사건번호는 No. 24-02683이다. 관할 법원은 미국 캘리포니아 북부지방법원 산호세 지부다.

trial-and-error란 ‘시행착오’ 방식으로, 기업이 새로운 사업 모델을 구축할 때 실험적 접근을 통해 개선·보완을 거듭하는 전략을 의미한다. 법원은 이런 특성상 잠정 수치를 조기 공시하면 시장이 오히려 혼란스러울 수 있다고 설명했다.

법조계에 따르면, 이번 판결은 기술기업의 신규 사업 리스크 공시와 관련해 중요한 판례로 남을 전망이다. 기업이 ‘재무 정보 공개 시점’과 ‘투명성’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을지 가이드라인을 제공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일각에서는 “주주가치 제고보다 거대한 설비투자에 집중한 인텔의 경영 전략이 결국 장기적 성패를 결정할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다만 이번 소송 기각으로 단기 법적 불확실성은 해소됐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향후 과제로는 ▲AI 반도체 설계 경쟁력 강화 ▲파운드리 고객 다변화 ▲비용 절감 목표 달성 등이 거론된다. 특히 2025년 100억 달러 절감 계획 이행 여부가 투자자 신뢰 회복의 핵심이 될 전망이다.

인텔이 실제로 배당 재개 시점파운드리 손익분기점 달성 계획을 언제 제시할지 시장의 관심이 쏠린다.

이번 판결은 소송 남발 방지투자자 보호 사이에서 미국 증권사기 소송 제도의 균형점을 다시 한 번 확인한 사례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