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4대 은행 중 하나인 내셔널오스트레일리아은행(NAB)의 최고경영자(CEO) 앤드루 어바인(Andrew Irvine)이 최근 불거진 음주·리더십 논란과 관련해 “언론 보도만 잘 버티면 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2025년 7월 23일, 인베스팅닷컴의 보도에 따르면 어바인 CEO는 시드니에서 열린 호주은행협회(Australian Banking Association·ABA) 주최 콘퍼런스 기조연설에서 자신과 가족이 겪은 고충을 공개하며 이같이 말했다.
어바인은 “언론이 개인적인 부분까지 공론화하면 힘들 수밖에 없다”면서도 “공인(公人)은 검증을 감수해야 하며, 결국 나는 이 상황을 극복하고 앞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가 하는 일은 사람들이 금융 생활을 꾸려가는 데 도움을 주는 ‘고귀한 사명(noble purpose)’이며, 그 사명 덕분에 에너지를 얻는다”고 덧붙였다.
■ 논란의 발단 — 6월 투자자 오찬
이번 논란은 2025년 7월 15일자 오스트레일리언파이낸셜리뷰(AFR) 보도로 촉발됐다. AFR은 “지난달(6월) 열린 주요 기관투자자 오찬에서 일부 투자자들이 어바인 CEO의 리더십 역량 강화와 공식 행사 음주 절제를 요청했다”고 전했다. NAB 이사회는 즉각 사태 수습에 나서며 어바인에게 멘토링과 리더십 개발 프로그램을 추가 제공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이사회는 동시에 “어바인을 전적으로 지지한다”는 공식 입장을 냈다. NAB는 자산 규모 기준 호주 최대 기업대출 기관이자 세 번째로 큰 모기지 공급 은행이다. 어바인은 2024년 4월 CEO로 취임했으며, 취임 초기부터 ‘현장 중심 경영’을 내세워 고객·투자자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석해 왔다.
■ 어바인 CEO의 발언 전문
“솔직히 말해, 매우 개인적이고 공개적인 언론 보도는 나와 가족 모두에게 힘든 일이었다. 그러나 공인은 감시와 비판을 받아들여야 한다. 나는 이를 받아들이되, 결국 이 과정을 이겨내 나아갈 것이다.”
어바인은 발언 말미에 “금융 산업 종사자로서 고객의 재정적 안정을 돕는 것이 곧 사회적 가치”라며, 자신과 NAB 임직원이 ‘금융 파트너’로서 책임을 다하겠다고 재확인했다.
■ 호주 CEO 스캔들 잇단 도마 위… 배경은?
최근 호주 내 최고경영자 평판 관리가 한층 강화되는 추세다. 지난해 물류 소프트웨어 기업 와이즈테크(Wisetech)의 리처드 화이트 CEO가 사생활 논란으로 사임했다가 곧바로 이그제큐티브 체어(Executive Chair)로 복귀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광산 서비스 기업 미네랄리소스시스(Mineral Resources)도 2024년 말 내부 조사 결과 창업주 크리스 엘리슨이 회사 자원을 사적으로 사용하고 세금을 회피했다는 의혹이 드러나면서 18개월 이내 퇴진을 발표한 바 있다.
시장 전문가들은 기업 거버넌스(지배구조) 강화와 환경·사회·지배구조(ESG) 열풍이 CEO 리스크에 대한 ‘제로 톨러런스(zero tolerance)’ 기류를 확산시키고 있다고 해석한다. 맥쿼리대학 금융연구소의 마크 존스 교수는 “기관투자자들은 재무 성과뿐 아니라 리더의 윤리·행동까지 투자 판단 기준으로 삼는다”고 분석했다.
■ ABA, 어떤 조직인가?
호주은행협회(ABA)는 호주 소재 시중·지방은행 20여 곳이 가입한 업계 단체로, 금융 규제·소비자 보호·산업 혁신 등 공동 이슈를 다룬다. 현재 의장직(Chair)을 맡고 있는 인물이 바로 NAB의 어바인 CEO다. 그는 이날 콘퍼런스에서 ‘디지털 전환과 소비자 신뢰’를 주제로 기조연설을 진행하기도 했다.
■ 기자 해설 — 여론전(輿論戰)과 실적전(實績戰)의 갈림길
호주 금융권은 세계적 트렌드와 마찬가지로 대형은행 CEO의 사생활·행동을 기업 가치와 직결되는 리스크로 인식한다. 어바인 CEO 사례는 “실적이 좋으면 된다”는 옛 사고방식이 통하지 않는다는 점을 다시 한 번 각인시킨다. NAB는 올 1분기 기준 기업 대출 부문에서 4.3%의 시장점유율 상승세를 기록하며 탄탄한 실적을 내고 있다. 그러나 현시점에서 더 중요한 것은 ‘신뢰 자본(Trust Capital)’을 지키는 일이 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호주 규제 당국(ASIC·APRA)은 2018년 ‘왕립위원회(Royal Commission)’ 이후 금융사 최고경영진의 책임 회피에 단호한 입장을 보여 왔다. 어바인 CEO가 멘토링·리더십 프로그램을 수용한 것은 이사회뿐 아니라 규제기관·투자자와의 신뢰 회복을 위한 ‘선제적 방어막’으로 풀이된다.
한편 NAB 내부에서는 “사적인 자리에서의 음주가 공식 업무에까지 영향을 미쳤는지 여부”가 핵심 쟁점이라는 목소리도 있다. 은행권 복수 지점장들은 “CEO가 고객 행사에서 설령 술잔을 기울였더라도, 계약·대출 심사 등 정책 결정 과정에 문제가 없었다면 과도한 비판은 경계해야 한다”고 토로했다.
■ 향후 전망
시장 관측통은 두 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한다. 첫째, 어바인 CEO가 ‘낮은 자세’로 이사회·투자자·직원 소통을 확대하고 ESG 경영을 강화해 신뢰를 회복하는 시나리오다. 이 경우 NAB의 중장기 주가 및 기업 이미지는 안정될 가능성이 크다. 둘째, 논란이 장기화돼 추가 폭로나 내부 고발이 이어질 경우다. 이 경우 이사회는 리더십 교체 옵션까지 검토할 수 있다. 실제로 호주 주요 슈퍼애뉴에이션(퇴직연금) 펀드는 ‘지배구조 리스크’를 이유로 일부 은행·자원기업 CEO를 해임시킨 전례가 있다.
현재로서는 첫 번째 시나리오에 무게가 실린다. 이사회가 이미 “CEO를 지지한다”는 의사를 공식 표명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장은 행동으로 보여지는 변화를 요구하고 있으며, 어바인 CEO는 ‘행동 변화를 통해 신뢰 회복’이라는 숙제를 안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