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는 세계 반도체 수요지표, TI 실적 가이드
미국의 아날로그 반도체(신호를 디지털로 변환하지 않고 전압·전류의 연속적인 변화를 처리하는 칩) 선두업체인 텍사스 인스트루먼트(Texas Instruments, 이하 TI)가 3분기 실적 전망을 시장 기대치보다 낮게 제시하며 기술주 투자심리에 냉기를 불어넣었다.
2025년 7월 22일, 로이터 통신의 보도에 따르면 TI는 3분기(7~9월) 주당순이익(EPS)을 $1.36~$1.60으로 예상했다. LSEG(구 레피니티브) 집계 월가 컨센서스 $1.49의 중간값을 소폭 하회하는 수준이다. 이 소식이 전해진 직후 TI 주가는 시간외 거래에서 8% 급락했다.
이번 가이던스 하향은 도널드 트럼프 전 행정부가 촉발한 미·중 무역 갈등과 글로벌 공급망 재편 속에서 반도체 기업 전반이 겪는 불확실성을 여실히 드러낸다. TI는 아날로그·임베디드 칩을 자동차, 산업용 기계, 소비자 가전 등 광범위한 분야에 공급하기 때문에 ‘산업 수요의 바로미터’로 불린다.
CAPEX 확대에 ‘투자 부담’ 커져
TI는 생산 효율이 높은 300 mm(12 인치) 웨이퍼 공정 확대를 위해 공격적인 설비투자에 나서고 있다. 회사 측은
“미국 내 제조 기반을 강화하기 위해 $600억(약 78조 원) 이상을 투입할 계획”
이라고 밝혔다. 올해 2분기(4~6월) 자본적지출(CAPEX)은 $13.1억으로 전년 동기 대비 22% 넘게 증가했다.
300 mm 웨이퍼란 반도체를 생산할 때 사용하는 실리콘 원판의 지름이 300 mm에 달하는 대형 기판을 의미한다. 동일한 설비 면적에서 더 많은 칩을 찍어낼 수 있어 단가 절감과 수율 개선에 유리하지만, 초기 투자비가 막대해 단기적으로 수익성을 압박한다.
실적 현황과 3분기 전망
TI는 2분기 매출이 $44.5억으로 시장 예상치 $43.6억을 소폭 상회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3분기 매출 전망은 $44.5억~$48.0억으로 제시돼, 컨센서스(평균 $45.9억)를 하단에서 간신히 웃도는 수준이다.
회사는 “자동차·산업용 부문 수요는 견조하지만, 소비자 전자와 통신장비 시장이 약세를 보이고 있다“며 보수적인 가이던스 배경을 설명했다.
전문가 시각과 시장 파급효과
월가 애널리스트들은 TI의 CAPEX 증대와 지정학적 리스크가 단기간 마진률을 압박할 가능성을 제기한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미국 내 생산 확대와 300 mm 공정 전환이 공급 안정성과 비용 경쟁력을 동시에 끌어올릴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특히 미국 정부가 추진하는 ‘반도체 CHIPS 법’ 인센티브와 맞물려 TI의 공격적 설비투자가 성공적으로 안착할 경우, 기업가치 재평가의 촉매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다만 중국향 매출 비중이 높은 글로벌 반도체 업계 특성상, 향후 미·중 갈등이 격화될 경우 추가 수출 규제로 인한 수요 둔화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용어 설명 및 배경
아날로그 칩은 온도, 압력, 소리, 빛 등 실세계에서 연속적으로 변화하는 아날로그 신호를 디지털 신호로 변환하거나 그대로 증폭·처리하는 반도체를 말한다. 스마트폰, 전기차, 공장 자동화 설비 등 거의 모든 전자기기에 들어가며, 경기 변동에도 상대적으로 수요가 견조하다는 특징이 있다.
웨이퍼(Wafer)는 실리콘으로 만든 원형 기판으로, 반도체 칩을 대량 생산하기 위한 재료다. 지름이 커질수록 한 번에 생산할 수 있는 칩 수량이 늘어나 제조원가가 내려간다. 300 mm는 현재 상용화된 최대 직경으로, 200 mm 공정보다 제조 단가가 약 30%가량 낮다는 평가를 받는다.
향후 관전 포인트
TI는 업계에서 가장 먼저 분기 실적을 공개하기 때문에, 자동차·산업용·소비자 전자 등 실물경제 전반의 수요 흐름을 가늠할 수 있는 ‘선행지표’로 주목받는다. 투자자들은 3분기 TI 실적 발표(10월 말 예정)에서 매출 가이던스 상단 상향 여부와 CAPEX 집행 속도, 재고 수준 등을 주요 체크포인트로 삼고 있다.
한편, TI 주가 급락은 필라델피아 반도체 지수(SOX) 및 경쟁사인 아날로그디바이스(ADI), 온세미컨덕터(ON) 등에 단기적 압박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중장기적인 공급망 재편과 미국 제조 인센티브의 수혜를 고려하면, 변동성이 확대된 현 시점이 장기 투자자에게는 분할 매수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의견도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