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연방준비제도, 포괄적 은행 규제 개편 논의 본격화
워싱턴 D.C.에 위치한 연방준비제도(Fed) 본부에서 23일(현지시간) 하루 일정으로 은행 자본규제 개편을 주제로 한 대규모 회의가 열렸다. 이번 행사에는 연준 고위 인사, 대형 은행 경영진, 업계 변호사, 학계 및 정책 연구자 등 100여 명이 참석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마련된 각종 자본·유동성 규제의 개선 방향을 집중적으로 논의했다.
2025년 7월 22일, 로이터 통신 보도에 따르면 이번 논의는 규제 완화가 대형은행의 자본 부담을 수십억 달러 줄여 추가 대출 여력을 확보하게 해줄 수 있다는 기대와, 반대로 은행 시스템의 충격 흡수 능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공존하는 가운데 진행됐다. 특히 ‘레버리지 비율(Leverage Ratio)’, ‘글로벌 시스템적 중요 은행에 대한 추가 부담금(G-SIB Surcharge)’, ‘연례 스트레스 테스트(Stress Test)’ 등 핵심 규제 항목이 테이블 위에 올랐다.
제롬 파월(Fed 의장)은 개회사에서 “
자본 프레임워크의 모든 구성 요소가 유기적으로 작동해야 한다. 이를 통해 안전하고 건전하며 효율적인 은행 시스템을 유지하는 것이 국민 경제에 이롭다
”고 강조했다.
이번 회의는 지난해 6월 연준 부의장(은행 감독 담당)으로 취임한 미셸 보우먼(Michelle Bowman)의 강력한 추진으로 성사됐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지명으로 2018년부터 연준 이사진으로 활동해 왔으며, 취임 후 ‘규제 체계 전면 재검토’를 핵심 과제로 제시해 왔다.
주요 규제 항목별 논의 내용
① 레버리지 비율 – 은행 총자산 대비 최소 자기자본 비율로, 위험가중치가 반영되지 않아 단순하지만 경기 확장기에는 대출 확대를 제약한다는 지적이 많다. 주요 은행들은 “총자산이 커질수록 굳이 위험하지 않은 자산에도 과도한 자본을 묶게 된다”고 주장했다.
② G-SIB 추가 부담금 – 글로벌 시스템적 중요 은행(G-SIB)에 부과되는 추가 자본요건으로, 규모·상호연계성·복잡성 등을 고려해 1~3.5%p의 할증이 붙는다. 업계는 “할증 기준이 시대착오적이고 투명성이 부족하다”며 조정 필요성을 제기했다.
③ 스트레스 테스트 – 연준이 매년 시나리오를 제시해 대형은행의 자본건전성을 점검하는 제도다. 은행들은 시나리오가 과도하게 보수적이며, 결과 변동성이 커 자본계획 수립에 불확실성을 키운다고 지적했다.
업계·규제 당국 시각차
골드만삭스 최고회계책임자(CAO) 시어라 프레드먼(Sheara Fredman)은 패널토론에서 “경제 성장과 건전성 확보 간 균형이 핵심”이라며 “규제가 지나치게 경직되면 자본시장 활동이 은행권 밖 ‘그림자금융(shadow banking)’으로 이동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일부 학계 전문가들은 “위기 후 도입된 규제 덕분에 2020년 팬데믹과 2023년 지역은행 연쇄 부실 때 대형은행은 비교적 안정적이었다”며 규제 완화는 장기적으로 금융시스템 위험을 키울 수 있다고 경고했다.
‘바젤Ⅲ 엔드게임’ 좌초 이후 새 해법 모색
지난해 업계는 ‘바젤Ⅲ 엔드게임(Basel III Endgame)’이라 불린 자본비율 개편안을 사실상 무력화하며 큰 승리를 거뒀다. 해당 안은 위험가중자산(RWA) 산정 방식을 강화해 대형은행 자본요건을 최대 20% 높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으나, 업계의 전방위 로비로 잠정 보류됐다. 당시 개편안을 주도한 인사는 마이클 바(Michael Barr) 전 연준 부의장이었다.
이날 회의에서는 ‘완화된 새 바젤 프레임워크’가 언급됐다. 요지는 위험 측정 방법론의 국제적 정합성을 유지하되, 미국 대형은행의 자본 증액 폭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수정한다는 구상이다. 연준 관계자는 “여전히 협의 초기 단계”라고 선을 그었지만, 업계는 개정안이 향후 몇 년간 자본전략의 최대 변수라며 촉각을 곤두세웠다.
전문가 해설: 레버리지·스트레스 테스트란?
레버리지 비율(Leverage Ratio)은 은행 총자산 대비 기본자본(Tier 1 Capital) 비율을 뜻한다. 위기 전까지는 위험가중자산(RWA) 기반 비율이 주로 사용됐으나, 2008년 사태 후 복잡한 자산평가모형이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는 반성이 제기되며 도입됐다.
스트레스 테스트는 일정 기간 경기침체·실업률 급등·자산가격 폭락 등 가상의 충격 시나리오를 적용해 은행의 손실 흡수 능력을 점검하는 제도다. 미국에서는 2010년 ‘도드-프랭크법’에 따라 의무화됐다.
향후 일정 및 시장 파급
연준은 이번 회의에서 나온 의견을 종합해 올해 말까지 공개 협의안(ANPR)을 제시하고, 내년 상반기 중 최종 규칙을 확정한다는 일정표를 검토 중이다. 그러나 이해관계가 첨예해 외부 청문 및 로비 과정에서 수정·지연 가능성이 높다.
월가 애널리스트들은 “규제 완화 폭이 클수록 대형은행 평균 자기자본이익률(ROE)이 0.8~1.2%p 개선될 수 있다”는 계산을 내놓고 있다. 반면 국제통화기금(IMF)은 최근 보고서에서 “완화 폭이 과도하면 글로벌 금융안정 리스크가 커질 수 있다”며 균형 있는 접근을 주문했다.*IMF Global Financial Stability Report, 2025년 4월호
기자 견해 및 시사점
이번 회의는 미 금융규제의 ‘리셋 버튼’이 될 잠재력을 지닌다. 팬데믹 이후 금융·통화 환경이 급변한 만큼, 2008년식 규제가 현실과 맞지 않는다는 주장에는 일리가 있다. 다만 자본 여유가 늘수록 주주환원·주식자사주 소각 등 단기 주주이익으로 흘러갈 가능성도 정치권의 견제를 불러올 수 있다. 추후 공개될 세부 개정안을 면밀히 따져보며, 자본적정성·수익성·배당정책 mix 변화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