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인도네시아 국부펀드 다난타라(Danantara)가 미국 엔지니어링 기업 KBR Inc.뉴욕증권거래소: KBR와 총 80억 달러(약 10조 5,000억 원) 규모의 엔지니어링·조달·시공(EPC) 계약을 체결해 17기의 모듈형 정유시설을 건설할 계획인 것으로 확인됐다.
2025년 7월 22일, 로이터통신 보도에 따르면, 이번 계약 추진 사실은 인도네시아 경제조정부가 국내 재계 리더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비공개 브리핑 자료에서 처음으로 공개됐다. 로이터는 해당 프레젠테이션과 사안을 잘 아는 두 명의 관계자 발언을 인용해 관련 내용을 단독 보도했다.
계약의 핵심은 총 17기의 모듈형 정유시설(modular refinery)을 설계·조달·시공(EPC) 방식으로 건설하는 것이다. 전체 공정은 KBR이 주관하고, 다난타라가 자금 조달과 프로젝트 관리를 담당한다. 계약 금액은 80억 달러로, 이는 인도네시아 에너지·인프라 투자 가운데 단일 계약 기준 역대 최대 규모 중 하나다.
다난타라와 KBR 양사는 로이터의 논평 요청에 즉각적인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그러나 비공개 자료에 따르면 양측은 2025년 하반기까지 세부 설계와 파이낸싱 구조를 확정하고, 2026년 초 공사를 시작해 단계별로 모듈형 정유시설을 가동할 계획이다.
무역 협정과 관세 인하
이번 EPC 계약 추진은 지난주 체결된 미국-인도네시아 무역 협정의 후속 조처로 파악된다. 협정 체결 직후 미국 정부는 인도네시아산 일부 수입품에 부과할 예정이었던 32%의 관세를 19%로 낮추기로 결정했다. 인도네시아 측 주요 협상단장인 에어랑가 하르타르토 인도네시아 경제조정장관은 “관세 인하와 함께 에너지·인프라 분야 협력 프로젝트가 동시에 가속화되는 구조”라고 기업인들에게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모듈형 정유시설 프로젝트는 미국과의 전략적 에너지 파트너십을 상징하는 사업”
— 인도네시아 경제조정부 브리핑 자료 중
모듈형 정유시설이란?
모듈형 정유시설은 기존 대형 정유공장과 달리 컨테이너 단위의 모듈을 공장에서 미리 제작해 현장에 운송·조립하는 방식이다. 건설 기간과 비용을 단축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신흥국 에너지 공급망 구축에 유리하다. 업계에서는 일반적으로 동일 규모의 전통적 정유시설 대비 최대 30% 수준의 초기 건설비 절감 효과가 있는 것으로 평가한다.
EPC 계약은 Engineering·Procurement·Construction의 약자로, 설계·조달·시공을 일괄로 수행하는 프로젝트 계약 형태다. 발주처는 공사 완료 후 결과물을 인수하며, 비용·일정·품질에 대한 책임이 EPC 사업자에게 집중된다. KBR은 100여 년 역사를 지닌 미국 휴스턴 기반 엔지니어링 기업으로, 석유·가스 플랜트와 국방·항공우주 부문에서 다수의 대형 EPC 실적을 보유하고 있다.
계약의 경제적·지정학적 함의
전문가들은 이번 계약이 인도네시아 석유제품 수급 구조를 획기적으로 개선하고, 자국 내 원유 정제 역량을 강화해 에너지 수입 의존도를 낮출 잠재력을 지닌다고 본다. 동시에 미국 기업 참여를 통해 서방 자본·기술이 인도네시아 에너지 인프라에 대규모로 진출하는 첫 사례라는 상징성도 크다.
또한 관세 인하와 EPC 계약이 연계된 점은 공세적 통상 전략으로 해석된다. 미국은 인도네시아의 대체 공급망 구축을 지원함으로써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 의존도를 낮추려는 의도가, 인도네시아는 관세 부담을 줄이며 첨단 플랜트 기술을 조달하려는 목적이 뚜렷하다는 평가다.
향후 일정 및 관전 포인트
비공개 문건에 명시된 프로젝트 로드맵에 따르면, 양측은 올 3분기 내 기본 설계를 확정하고, 연말까지 금융주선단을 구성할 예정이다. 2026년 상반기 첫 모듈형 정유시설 착공이 이뤄질 경우, 2028년 이후 본격적인 상업 가동에 들어갈 가능성이 제기된다.
시장에서는 인도네시아 국내·외 채권·펀드뿐 아니라 다자개발은행(MDB)의 참여 여부가 자금 조달의 핵심 변수로 꼽힌다. 아울러 사업이 성공적으로 진행될 경우, 동남아 주변국에서도 모듈형 정유시설 수요가 확대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정리: 다난타라와 KBR의 80억 달러 EPC 계약 추진은 관세 인하라는 통상 성과와 에너지 인프라 확충이라는 산업 목표가 결합된 사례다. 향후 세부 계약 서명과 자금 조달 구조 확정, 그리고 실제 공사 착수 시점이 투자자·정책 담당자들의 주요 모니터링 포인트가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