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맨해튼 연방법원의 폴 엥겔마이어(64) 판사가 제프리 에프스타인 사건과 관련된 대배심 녹취록 공개 여부를 심리하게 됐다. 그는 앞서 ‘도지(DOGE) 판결’로 알려진 엘론 머스크 정부 자료 접근 금지 결정으로 공화당 일각에서 탄핵 요구까지 받았던 인물이다.
2025년 7월 21일, 인베스팅닷컴 보도에 따르면, 맨해튼 연방법원은 맥스웰 사건 1심을 담당했던 앨리슨 네이선 판사가 항소법원으로 승진한 뒤 공석이 된 재판부에 엥겔마이어 판사를 배정했다.
앞서 미 법무부(DoJ)는 7월 18일(현지시간) 에프스타인 및 크리스레인 ‘기슬레인’ 맥스웰 형사사건과 관련된 대배심 증언 녹취록을 공개해 달라는 요청서를 법원에 제출했다. 법무부는 “사건의 성격과 국민적 관심을 고려할 때 대배심 증언록을 공개하는 것이 공익에 부합한다”고 주장했다.
“에프스타인 및 맥스웰 형사 사건은 미국 사회 전반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사건 경위와 수사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 법무부 제출서류 중
대배심(Grand Jury) 제도는 중범죄 혐의에 대해 기소 여부를 결정하는 미국 특유의 사법 절차다. ※참고: 우리나라의 검찰수사심의위원회와는 성격이 다르다. 대배심 증언은 통상 비공개가 원칙이지만, 공공의 이익이 인정되면 예외적으로 공개가 허용된다.
에프스타인은 2019년 8월 뉴욕 메트로폴리탄 교정센터에서 성매매·성착취 혐의로 재판을 기다리던 중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결론이 났다. 그러나 사망 경위를 둘러싼 각종 음모론이 끊이지 않아 이번 녹취록 공개에 여론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한편, 트럼프 전 대통령도 이번 사안과 간접적으로 얽혀 있다. 같은 날 마이애미 연방법원은 대런 게일스(58) 판사를 ‘월스트리트저널(WSJ)’ 명예훼손 소송 담당 재판장으로 지정했다. 트럼프는 2003년 에프스타인 생일에 ‘음란한 축하 영상을 제작했다’는 WSJ 보도가 허위라며 100억 달러(약 13조 원)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WSJ를 발행하는 다우존스(News Corp 자회사)는 “보도 과정의 철저성과 정확성을 확신한다”며 맞대응을 예고했다. 루퍼트 머독 회장과 뉴스코프 본사도 공동 피고로 이름을 올렸다.
공화당의 탄핵 압박도 여전히 진행형이다. 위스콘신주 공화당 하원의원 데릭 밴 오던은 2월 엥겔마이어 판사가 머스크 산하 ‘정부 효율성 부’(Department of Government Efficiency)의 재무부 시스템 접근을 일시 제한하자 “대통령과 7,400만 유권자에 대한 명백한 편향”이라며 탄핵 필요성을 공개 주장했다. 미국 연방판사 탄핵은 흔치 않은 절차이며, 통상 직무상 중대한 비위가 있는 경우에만 추진된다.
전문가 시각: 사법부·행정부 갈등과 향후 파장
사법부와 행정부 간 긴장이 점증하고 있다. 법원이 민감한 정부 기록 접근을 제어하는 모습은 정보 자유(Freedom of Information)와 국가 안보 사이의 균형 논쟁을 재점화할 수 있다. 특히 대선을 앞두고 머스크 행정부가 추진 중인 재무부·국방부 ‘슬림화’ 계획은 법원 제동에 따라 지연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의회에서도 엥겔마이어 판사의 결정이 ‘사법권의 월권’인지, 혹은 ‘권력분립의 정상적 기능’인지 논쟁이 뜨겁다. 민주당은 “사법부의 독립성”을 강조하지만, 일부 공화당 의원은 “행정부 발목잡기”라고 비판한다.
이번 맥스웰 사건 녹취록이 공개되더라도 대대적인 삭제(레다액션)가 이뤄질 전망이다. 사생활 침해, 증인 보호, 국가안보 요소가 이유다. 그러나 음모론 확산을 우려하는 측은 “부분공개는 오히려 의혹을 키울 것”이라고 지적한다.
트럼프 vs 언론: 또 다른 ‘가짜뉴스’ 공방
게일스 판사가 맡은 WSJ 명예훼손 소송은 트럼프가 2023년 마이클 코언을 상대로 제기한 5억 달러 소송에 이어 두 번째다. 코언 소송은 6개월 만에 트럼프 측이 자진 취하했지만, 이번에는 거액(100억 달러)과 주요 언론사를 상대로 한 만큼 장기전이 예상된다.
백악관 대변인 캐롤라인 레빗은 “WSJ가 허위 보도로 대통령을 모욕했다”고 비판하며 7월 25~29일 예정된 스코틀랜드 순방 기자단에서 WSJ를 제외했다. 이에 대해 다우존스는 별다른 논평을 내지 않았으나, 언론단체들은 “언론 자유 침해”라고 반발했다.
판사 인선: 오바마·클린턴 지명 판사들이 열쇠
엥겔마이어와 게일스 판사는 모두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지명했으며, 리처드 버먼 판사(빌 클린턴 지명)가 에프스타인 녹취록 공개 요청을 최종 감독한다. 정치적 중립성을 표방하는 연방법원이지만, 지명 대통령에 따른 ‘성향 낙인’이 사법 신뢰도 논란을 부추기고 있다.
게일스 판사는 2014년 상원 인준 당시 98대 0이라는 압도적 찬성으로 통과한 인물이다. 그는 공정한 재판 진행을 중시한다는 평가를 받지만, 트럼프 지지층에서는Democratic 임명이라는 이유로 이미 불신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향후 전망
에프스타인·맥스웰 대배심 녹취 공개 여부 결정은 수개월 이상 걸릴 전망이다. 이후 항소 가능성까지 고려하면 사건이 완전히 마무리되기까지 수년이 소요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사법 투명성과 개인 정보 보호라는 두 가치가 정면충돌할 것”이라며 결과에 따라 유사 사건 공개 기준이 달라질 수 있다고 내다본다.
트럼프-WSJ 명예훼손 소송 역시 장기전이 불가피하다. 만약 트럼프가 승소한다면 언론사들의 ‘정치인 사생활 보도’ 관행에 적잖은 위축이 예상된다. 반대로 WSJ가 승소할 경우, 트럼프 측의 ‘가짜뉴스’ 프레임이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