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CNBC 번역】 미국의 잇단 수출 제재에도 불구하고 중국 통신 장비업체 화웨이가 인공지능(AI) 전 분야에서 중국의 핵심 주자로 조용히 떠올랐다. 심천에 본사를 둔 화웨이는 AI 반도체 분야에서 미국의 Nvidia(엔비디아)에 맞서는 베이징의 대안으로 지목되는 동시에, 산업 현장에서 AI 모델을 가장 먼저 상용화한 기업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2025년 7월 21일, CNBC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폴 트리올로 DGA-올브라이트 스톤브리지 그룹 중국 담당 파트너 겸 수석부사장은 “지난 10년간 외부 압력으로 인해 화웨이는 핵심 사업 영역을 전환·확장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러한 확장은 스마트카·운영체제(OS)·데이터센터·AI용 고급 반도체·대규모 언어모델(LLM)까지 전방위로 이어졌다.
트리올로는 “높은 진입장벽과 복잡성을 지닌 다수의 분야에서 이렇게 유능한 모습을 보인 기술 기업은 화웨이가 유일하다”고 평가했다.
같은 해 엔비디아 젠슨 황 최고경영자(CEO)는 여러 차례 화웨이를 “세계에서 가장 위협적인 기술기업 중 하나”라고 칭하며, 미국이 수출 규제를 지속할 경우 화웨이가 중국 시장에서 엔비디아를 대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엔비디아는 $4조 달러 이상의 시가총액을 기록하며 세계 최고 기업으로 등극했지만, 화웨이의 추격으로 ‘철옹성’이 흔들릴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전화 교환기에서 ‘국가 챔피언’으로
208,000명 이상을 고용하고 170개국 이상에 진출한 화웨이는 1987년 런정페이 창업자가 심천 아파트에서 시작한 소규모 전화 교환기 유통업체였다. 아프리카·중동·러시아·남미 등 신흥시장을 파고든 뒤 유럽으로 확장하며 성장 가도를 달렸고, 2019년에는 전 세계 5G 상용화를 선도할 위치를 확보했다.
동시에 스마트폰 제조 대기업으로 급성장했고, 자회사 하이실리콘(HiSilicon)을 통해 모바일 칩도 자체 설계했다. 그러나 이런 성공은 미국의 안보 우려를 불러왔고, 2019년 화웨이는 미 상무부 ‘실체 리스트’에 올라 미국 기업들과 거래가 중단됐다.
제재 충격으로 화웨이의 최대 수익원이던 소비자 사업부 매출은 2020년 대비 2021년 약 340억 달러 수준으로 반 토막 났다. 그럼에도 화웨이는 2019년 Ascend 910 AI 칩을 선보이며 “풀스택·전(全)시나리오 AI 포트폴리오” 전략을 선언했다.
이 시기 미국의 제재는 중국 내에서 화웨이를 ‘순교자’로 만들었다. 2018년 캐나다에서 이란 제재 위반 혐의로 체포된 멍완저우 CFO(런정페이 딸) 사건은 국민적 동정 심리를 자극했고, 정부 지원까지 더해져 화웨이의 AI 로드맵은 가속화됐다.
트리올로는 “수출 통제가 역설적으로 화웨이를 중국 정부의 품으로 밀어 넣었다”며 “제재가 화웨이 AI 하드웨어·소프트웨어 스택에 ‘스테로이드’ 역할을 했다”고 전했다.
컴백: 5G 칩과 AI 클러스터로 되살아나다
소비자 부문 매출은 2023년 반등했다. 분석가들은 해당 해 출시된 스마트폰에 중국산 7나노(㎚) 5G 칩이 탑재돼 “TSMC 없이 이런 수준을 달성한 것은 충격”이라고 평했다. 화웨이는 미국 블랙리스트에 포함된 SMIC와 협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 Ascend 910B 및 차세대 910C 양산 소식이 전해졌고, 화웨이는 엔비디아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저성능 칩 여러 개를 묶어 고성능 GPU를 대체하는 방식을 택했다. 제프리 타우슨 테크모트 컨설팅 매니징 파트너는 “화웨이가 저가 칩 조합으로 고급 GPU 성능을 복제하는 데 큰 진전을 보였다”고 설명했다.
2025년 4월 화웨이는 데이터센터용 ‘AI CloudMatrix 384’를 발표해 Ascend 910C 칩 384개를 클러스터로 연결했다. 반도체 전문 분석매체들은 이 시스템이 성능 일부 지표에서 엔비디아 GB200 NVL72를 능가한다고 평가했다.
시장조사업체 포레스터는 “화웨이는 AI 인프라의 작동 방식을 재정의하고 있다”며, 칩뿐 아니라 개발자 도구도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화웨이는 엔비디아의 CUDA 생태계에 대응해 자체 소프트웨어 스택 CANN을 구축했지만, 아직 개발자 친화성은 충분히 확보되지 않았다는 분석이다.
※ 용어 설명
CUDA는 엔비디아 GPU를 위한 병렬 컴퓨팅 플랫폼·언어로, AI 모델 학습에 사실상 업계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CANN(Compute Architecture for Neural Networks)은 화웨이 Ascend 칩을 최적화한 유사 플랫폼으로, 향후 생태계 확장이 관건이다.
‘Ascend 생태계 전략’과 산업별 AI 모델
화웨이의 AI 청사진에서 칩은 단초에 불과하다. 화웨이는 칩·컴퓨팅·AI 모델·애플리케이션을 연결한 엔드투엔드 가치사슬을 구축했다. 그 결과 2023년 ICT 인프라 사업 매출은 3,620억 위안으로 그룹 내 최대 부문이 됐다.
클라우드 컴퓨팅 자회사 화웨이클라우드(2017년 설립)가 운영하는 AI 데이터센터에는 Ascend 칩과 CloudMatrix 384 시스템이 투입되고 있다. 이 데이터센터는 화웨이의 산업별 AI 모델 ‘판구(Pangu)’ 시리즈 학습·추론에 필요한 연산력을 제공한다.
판구 모델은 의료·금융·정부·제조·자동차 등 20여 개 산업 현장에 이미 적용됐다. 예를 들어 2025년 5월, 화웨이는 5G·AI·클라우드 기술을 결합해 자율주행 전기 덤프 트럭 100여 대를 내몽고 이민탄광에 투입, 원격으로 석탄·토사를 운반하도록 했다.
잭 천 화웨이 석유·가스·광업 사업부 부사장은 “이 솔루션은 중앙아시아·라틴아메리카·아프리카·아태 지역 등지에서도 대규모로 복제 가능하다”고 말했다.
또한 화웨이는 판구 모델을 오픈소스로 개방하며 ‘Ascend 생태계 전략’을 확장하고 있다. 패트릭 무어헤드 무어 인사이츠 & 스트래티지 CEO는 CNBC ‘스쿼크 박스 아시아’에서 “화웨이는 일대일로(BRI) 참여국을 중심으로 Ascend 기반 시장 점유율을 5~10년 내 본격 확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망과 과제
미·중 기술 패권 경쟁 속에서 화웨이는 정부 지원·자체 설계 칩·산업 특화 모델이라는 3박자를 무기로 글로벌 AI 판도 변화를 노리고 있다. 다만 양산 규모·소프트웨어 생태계·국제 규제 등이 여전히 변수로 지목된다. 그럼에도 과거 통신 장비·스마트폰 시장에서 증명된 추진력을 고려하면, 화웨이를 간과하기 어렵다는 것이 시장의 중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