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 중국용 H20 AI 칩 공급 재개 가로막는 생산 차질

엔비디아(Nvidia)가 중국 고객사에 제공하기로 했던 H20 인공지능(AI) 칩의 물량이 극도로 제한적이며, 추가 생산을 재개할 계획이 없다는 내부 방침을 전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2025년 7월 19일, 로이터 통신 보도에 따르면, 엔비디아는 최근 중국 파트너사들에 “H20 재고가 매우 부족하며 당분간 제조 라인을 다시 가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공식 통보했다. 이로써 미국 정부의 수출 규제 속에서 어렵게 승인된 ‘최고 성능’ 중국향 AI 칩이 실질적으로 시장에 공급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전망이다.

H20는 엔비디아가 2023년 말 공개한 ‘하퍼(Blackwell 이전) 아키텍처 기반’ AI 가속기 가운데 미국 수출 통제 기준을 충족하면서도 최대한의 연산 성능을 끌어올린 제품이다. 그러나 2024년 4월 미국 상무부가 발표한 대(對)중국 규제 강화안으로 H20 역시 판매 허가가 갑작스레 취소돼, 이미 접수된 중국 고객 주문과 칩 생산 슬롯(slot)이 모두 무효화됐다.


생산 차질의 핵심 원인 ·· TSMC 라인 취소

로이터는

“엔비디아는 H20를 대량 생산하기 위해 대만 TSMC(Taiwan Semiconductor Manufacturing Company)의 5나노 공정 라인을 예약했지만, 미국 정부 지침 이후 해당 생산량을 전면 취소했다”

고 복수의 익명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TSMC 라인은 수개월 전부터 ‘파운드리 캘린더’에 따라 가동 순서를 정해 놓기 때문에, 한 번 취소된 슬롯을 되찾으려면 최소 3~6개월 이상 대기해야 한다. 이 때문에 엔비디아는 당장 중국 고객에게 인도할 물량을 새로 찍어내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엔비디아는 이번 주 초 투자자 대상 설명회에서 “H20을 포함해 중국에 판매 가능한 모든 제품 라인을 조정 중이며, 연내 출하 재개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으나, 실제로는 제조 라인 재확보와 허가 절차 재개까지 상당한 리스크가 남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H20 칩이 중요한 이유

H20는 고성능 데이터센터·클라우드 환경에서 대규모 언어 모델(LLM)·생성형 AI 학습에 특화된 ‘HBM3 고대역폭 메모리’를 탑재했다. 동시 계산 성능(TFLOPS)은 미국 정부가 허용한 최대치에 근접하지만, 연산 밀도와 메모리 대역폭을 미세하게 조정해 수출 규제의 임계값을 넘지 않도록 설계됐다. 이에 따라 중국 빅테크들은 H20을 ‘A100·H100을 대체할 사실상 유일한 합법적 옵션’으로 평가해 왔다.

엔비디아도 중국 AI 인프라 수요를 고려해 2025 회계연도 매출 가이던스에 H20 판매량 일부를 포함시켰지만, 이번 생산 차질로 해당 예측을 재검토해야 할 가능성이 커졌다.


미·중 기술분쟁이 불러온 복합적 불확실성

이번 상황은 미국·중국 간 첨단 반도체 주도권 경쟁이 실제 기업 생산·수요·주가에 직격탄을 날리는 대표 사례로 분석된다. 미국 정부는 ‘국가 안보’를 명분으로 AI·슈퍼컴퓨팅 연산량 제어를 강화했고, 중국 정부 역시 자국 반도체 자립을 위한 지원을 확대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글로벌 공급망에는 장기적인 수급 불균형·가격 변동·투자 지연 등이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전문가 의견도 엇갈린다. 한 애널리스트는

“엔비디아는 중국 매출 의존도를 낮추면서 고수익 미국·유럽 고객에 집중할 명분을 얻게 될 것”

이라고 평가한 반면, 얼마 남지 않은 중국 내 합법적 AI 칩 시장을 놓치면 중장기 성장이 제한될 수 있다는 견해도 나온다.

또 다른 업계 전문가는 “TSMC의 생산 캘린더가 이미 포화 상태라 다른 고객 물량을 밀어내고 H20를 다시 투입하기 쉽지 않다”면서, “삼성전자·인텔 파운드리 등 대체 옵션을 검토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전망했다.


용어·배경 설명1)

1)파운드리(Foundry)는 반도체 설계 업체로부터 설계를 위탁받아 제조만 담당하는 공장·회사를 말한다. 엔비디아처럼 ‘팹리스(Fabless)’ 기업은 자체 공장을 보유하지 않고, TSMC·삼성전자 파운드리에 칩 생산을 위탁한다.

2)HBM(High Bandwidth Memory)는 칩 위에 3차원 적층 구조로 메모리를 쌓아 대역폭을 크게 확장하는 차세대 메모리 기술이다. AI·고성능 컴퓨팅(HPC) 분야에서 필수 부품으로 인식된다.


© 2025 Reuters.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