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지상파 방송사의 대표 심야 토크쇼 가운데 하나로 꼽혀 온 ‘더 레이트 쇼 위드 스티븐 컬버트’가 2026년 5월을 끝으로 막을 내리게 됐다. CBS의 갑작스러운 결정은 방송·정치·광고 업계를 관통하는 구조적 변화와 맞물려 적지 않은 파장을 낳고 있다.
2025년 7월 19일, 로이터 통신 보도에 따르면 CBS 모회사 파라마운트 글로벌(Paramount Global)은 “어려워진 심야 시간대 수익성”을 공식적인 이유로 들며 프로그램 종영을 발표했다. 이는 방송사 측이 ‘정치적 외압과는 무관한 순수 재무 판단’이라고 강조한 부분이다.
그러나 결정 이틀 전 진행자 스티븐 컬버트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파라마운트 간 합병 승인 로비 의혹을 공개 지적하면서, 프로그램 폐지가 정치적 보복이라는 논란이 급속히 확산됐다.
“스티븐 컬버트, 최고의 심야 토크쇼 진행자가 합병을 비판하더니 며칠 만에 해고됐다. 우연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버니 샌더스(무소속·버몬트) 상원의원
■ 흔들리는 심야 토크쇼 경제학
15년 전만 해도 ‘투나잇 쇼’ 같은 간판 토크 프로그램은 연간 1억 달러(약 1,380억 원) 이상을 벌어들이며 방송사 황금알로 통했다. 하지만 스트리밍·SNS 플랫폼 확산으로 시청자층이 유튜브·틱톡으로 이동하면서 전통 TV 광고 매출이 급감했다. 광고 추적업체 가이드라인(Guideline)에 따르면 ‘더 레이트 쇼’의 광고 수입은 2018년 1억2,110만 달러에서 지난해 7,020만 달러로 40% 급락했다.
시청률도 2017~2018 시즌 평균 310만 명에서 2024~2025 시즌 190만 명으로 추락했다. 내부 소식통은 “최근 프로그램이 연간 4,000만 달러 적자를 기록했다”며 “‘트래커(Tracker)’ 같은 프라임타임 드라마 재방송을 돌리는 편이 제작·출연료보다 훨씬 저렴하다”고 전했다.
■ 모회사 ‘스카이댄스 합병’ 변수
파라마운트는 현재 스카이댄스 미디어(Skydance Media)와 84억 달러 규모 합병을 위해 FCC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이 와중에 컬버트가 “로비 자금은 ‘빅 팻 브라이브’(대형 뇌물)”라고 직격하면서 정치적 긴장감이 고조됐다. 연방정부 규제 절차를 앞두고 ‘비판적 콘텐츠’가 사라진 셈이어서, 전·현직 민주당 인사들과 전미작가조합(WGA)은 즉각 진상 조사를 요구하고 나섰다.
에드워드 마키(민주·매사추세츠) 상원의원은 파라마운트 회장 샤리 레드스톤에게 공개 서한을 보내 “만약 트럼프 행정부가 규제권을 이용해 회사의 편집 결정을 압박했다면 국민은 그 사실을 알 권리가 있다”고 질의했다. 파라마운트 측은 “진행자 해고 권한은 사측에 있다”면서도 외압 의혹은 부인했다.
■ ‘트래디셔널 TV’ 쇠락의 상징
미국 심야 토크쇼는 조니 카슨·제이 레노 시대처럼 ‘취침 전 필수 시청’에서 ‘SNS 클립 소비’로 변모했다. 대학생과 2030 세대는 방송 시간을 기다리지 않고, 짜릿한 3~5분 하이라이트만 유튜브 알고리즘이 추천해 주길 원한다. 전문가들은 “풀(Full) 에피소드보다 클립 소비가 많아지면 TV광고 CPM이 크게 하락하고, 디지털 광고는 단가가 낮아 구조적 수익 공백이 발생한다”고 진단한다.
UCLA 영화·TV학부 톰 누넌 교수는 “창작자·저널리스트가 사는 생태계가 과거와 완전히 달라졌다”며 “컬버트 건은 충격적이지만 놀라운 일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 전문가 시각: ‘TV 저녁 시간대 재편 불가피’
기자는 콘텐츠-플랫폼 다변화가 심야 토크쇼의 ‘고비용 라이브 제작’ 모델과 맞지 않는다고 본다. 스트리밍 경쟁 심화로 시청자 주권이 강화되면서, 방송사는 제작 리스크가 낮은 리얼리티·스포츠·재방송 편성이 가성비가 높다. 결국 세계 최대 TV 시장인 미국에서조차 심야 토크쇼가 비용 대비 수익을 맞추지 못한다면, 아시아·유럽 시장에서도 확장 가능성은 제한적일 것이다.
더불어 ‘정치적 리스크’는 광고주를 위축시켜 매출 하향압력을 가속화한다. 이번 사례는 미디어 기업 거버넌스와 규제 환경이 콘텐츠 편성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향후 방송사들은 단일 스타 파워에 의존하기보다, 멀티 호스트·짧은 숏폼·인터랙티브 포맷으로 분산 투자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심야 토크쇼는 오랫동안 미국 문화의 상징이었지만,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 속에서 그 위상은 시험대에 올랐다. 컬버트의 퇴장은 TV 산업이 디지털 시대로 돌입하며 맞닥뜨린 ‘포맷 진화’의 필연적 결과이자, 규제·정치·경제가 교차하는 복합 위기의 상징으로 남을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