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행정부의 ‘30% 일괄 관세’ 압박… 아일랜드 위스키에서 이탈리아 치즈까지 EU 수출업계 ‘비상’

미국발 고율 관세가 유럽연합(EU) 수출 기업들의 사업 모델을 뿌리째 흔들고 있다. 아일랜드의 프리미엄 위스키·진, 프랑스 전통 리큐어, 이탈리아 경성 치즈 등 고부가가치 식음료 품목은 물론, 독일·프랑스 제조업까지 광범위하게 영향을 받고 있다는 분석이다.

2025년 7월 19일, CNBC 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8월 1일부터 EU 전 제품에 30% 일괄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예고했다. 이는 지난 4월 시행된 10% 기본 관세, 자동차·금속 부문 추가 관세에 이은 세 번째 고율 조치다. EU와 미국 간 막판 협상이 결렬된 가운데, 최소 15~20% 수준의 ‘타협 관세’ 가능성까지 거론되며 불확실성이 극대화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이미지

■ 아일랜드 서쪽 끝, ‘마지막 길’ 위의 증류소가 직격탄

아일랜드 케리주(州) 해안도로 끝자락에 자리한 스켈릭 식스18(Skellig Six18) 증류소는 해풍과 저온 숙성이 빚어내는 위스키·진으로 유명하다. 창립자 준 오코널(June O’Connell) 대표는 2019년 첫 출시 이후 미국 시장을 ‘주요 타깃’으로 삼아 2024년 초 현지 론칭을 완료했다. 그러나 올 들어 관세 이슈가 본격화되자 “수입업체 창고가 가득 차 추가 선적이 중단됐고, 대형 고객만 공급 우선권을 받는 상황”이라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녀는 “이미 10% 관세만으로도 최종 소비자가격이 크게 올라 판매가 둔화됐다”면서 “30% 관세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라고 직설했다.

■ 프랑스 190년 전통 ‘콱’… 통화 약세까지 겹친 삼중고

1834년 설립된 프랑스 콩비에(Combier) 증류소 역시 상황은 마찬가지다. 시그니처 제품인 트리플 섹(Triple Sec)은 마가리타 칵테일의 핵심 재료로, 미국 매출이 전체의 25%를 차지한다. 현재 10% 관세와 달러 약세가 겹쳐 소비자가격이 이미 15% 이상 올랐다. 프랑크 슈아느(Franck Choisne) 사장은 “관세 30%에 환율 효과까지 더하면 최종 부담은 45~50%에 달해 매출이 절반으로 줄 수 있다”며 “결국 양측 모두 패자가 되는 ‘Lose-Lose’ 시나리오”라고 경고했다.

■ 이탈리아 롬바르디아의 거대 치즈, ‘바퀴 멈추나’

연 50만 개 이상의 거대 치즈 휠을 생산하는 가족기업 자네티(Zanetti)도 미국 의존도가 높다. 그라나 파다노·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 등 경성 치즈는 수출 비중이 70%에 달하고, 미국 매출이 전체의 15%를 차지한다. 아틸리오 자네티(Attilio Zanetti) CEO는 “연초 10% 관세와 달러 약세 영향만으로도 미국 소매가가 25% 상승했다”며 “추가 인상 시 판매량이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EU·미국 무역 수치 인포그래픽

‘원산지 규정(Rules of Origin)’이란?

관세를 피하려면 제품이 어느 나라에서 ‘실질적으로’ 생산됐는지 증명해야 한다. 이를 원산지 규정이라고 부르며, 각국 FTA나 양자협정마다 기준이 다르다. 예컨대 독일 기업이 아시아에서 부품을 들여와 영국 공장에서 최종 조립하면, 영국·미국 간 10% 협정 적용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부품 가치·가공 공정 비율 등 까다로운 요건을 충족해야 해 중소기업에는 진입장벽이 높다.

■ EU 기업의 대응 전략

영국 회계법인 러벅 파인(Lubbock Fine)의 파트너 알렉스 알트만(Alex Altmann)은 “일부 EU 제조사는 라인 일부를 영국으로 옮겨 10% 관세를 적용받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전했다. 독일 지멘스(Siemens), 보쉬(Bosch) 등 대기업은 ‘로컬-포-로컬’(현지 생산·현지 판매) 전략을 강화하며 북미 공장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반면 위스키·샴페인·파르마 햄처럼 지리적 표시(Origin Protected) 보호를 받는 제품은 생산지를 이동할 수 없어 대안이 제한적이다.

“700년 역사의 증류주 업계는 인내를 요구한다. 통제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 준 오코널, 스켈릭 식스18 대표

오코널 대표는 “아시아·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 등 신규 시장 개척을 모색 중이지만, 위스키 소비 기반이 약한 지역의 진입 비용이 만만치 않다”고 밝혔다. 콩비에의 슈아느 사장도 “새 시장 안착에는 수년과 막대한 자원이 필요하다”며 미국 시장 정상화를 기대했다.

■ 전문가 시각

무역 전문가들은 EU 식·음료 대미 수출 규모가 연 300억 유로 수준으로, 관세가 현실화될 경우 미국 내 소매가격 상승→수요 감소→수입 축소라는 악순환이 불가피하다고 진단한다. 또한 EU가 보복 관세에 나설 경우 미국 버번 위스키·아몬드·자동차 부품 등이 타깃이 될 가능성이 커 글로벌 공급망 분절이 가속화될 전망이다.


※ 용어 해설
트리플 섹(Triple Sec): 오렌지 껍질을 증류해 만든 프랑스산 투명 리큐어로, 마가리타·코스모폴리탄 칵테일의 핵심 재료다.
지리적 표시(Origin Protected): 특정 지역에서만 전통 방식으로 생산해야 하는 상품에 부여되는 EU 품질 인증. 예) 아일랜드 위스키, 프랑스 샴페인.
Lose-Lose: 협상 당사자 모두 손실을 보는 상황을 가리키는 경제·외교 용어다.